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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이슈 [연재] 스포츠서울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

[고진현의 창(窓)과 창(槍)]역사의 교훈에 왜 귀를 닫으려는가…굴곡진 KOC의 서글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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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영국의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설파했다. 그렇다. 축적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를 비춰보는 거울이 바로 역사인 셈이다.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시간의 대화’에서 웅변된 울림있는 교훈이 현재는 물론 미래의 타산지석(他山地石)이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될 수 있기 때문일 게다.

KOC(대한올림픽위원회) 논쟁이 화끈하게 불 붙었다. 중앙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여권의 체육실세가 KOC 분리를 주도하고 있고,대한체육회를 비롯한 제도권 체육계는 반대진영을 구축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내년 2월로 다가온 대한체육회 선거전까지 더해져 KOC 분리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KOC 분리·통합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단선적인 분석은 자칫 그릇된 판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고 보면 이 문제는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함께 바라보는 입체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KOC는 해방이후 한국의 올림픽 참가라는 현실적 이유에서 출범했다. 해방과 함께 1945년 11월 26일 재발족한 조선체육회는 1948런던올림픽 출전을 위해 1946년 7월 15일 체육회내에 올림픽대책위원회를 설치했는데 이게 바로 KOC의 모태다. 올림픽은 국가가 아니라 국가올림픽위원회(NOC)의 자격으로 출전하는 만큼 KOC는 1947년 6월 20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가입, 1948런던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게 됐다. 해방 정국에서 체육회와 KOC의 주도 세력은 사뭇 달랐다. 체육회가 일본 유학파가 중심이라면 KOC는 국제정세에 밝은 미국 유학파들이 주도했다. 한국 스포츠가 1960년대 후반까지 체육회와 KOC라는 두 파벌이 갈등과 긴장관계를 형성한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체육회와 KOC의 갈등은 196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폭발했다. 1964년 사단법인으로 분리된 KOC는 대회기간 내내 1970년 차기 아시안게임 유치에 온 신경을 쏟았다. 그 결과 KOC는 선수단 안에 ‘행정본부’라는 별도 조직을 구성해 선수단 전체를 장악하려고 했다. 선수단 관리, 경비 지출 등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잡음이 났다. 갈등은 갈수록 심각해져 당시 손기정 단장의 보좌관이 단장의 명령을 무시하고 행정본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다 해임되는 일도 있었다. 손 단장은 KOC의 전횡에 분통을 터뜨리며 귀국길에 삭발을 감행하기도 했다. 당시 체육회 수장이던 고(故) 민관식 회장도 회고록에서 “내가 체육회장이었지만 KOC 중심으로 돌아가는 선수단 안에서는 행사할 권한이 없었다. 개회식 본부석에 대한체육회장 자리가 없었을 정도다. 대회 기간 내내 어떤 세미나나 리셉션에도 초대받지 못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손 단장 삭발사태는 박정희 대통령의 진상조사 명령으로 이어졌고, 결국 1968년 대한체육회,KOC,대한학교체육회 등 3개 체육단체가 대한체육회로 일원화됐다. 1970년 아시안게임은 개최비용 과다라는 표면적인 이유로 반납됐지만 속사정은 체육회와 KOC의 갈등 때문이었다는 게 숨어 있는 진실이다. 이후 체육회와 KOC는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움직였다. 형식적으로 두 단체를 통합했지만 KOC는 특별기구로 하고 KOC위원장은 체육회장이 겸하도록 했다. ‘한 지붕 두 가족’의 어정쩡한 동거는 2009년 박용성 회장 시절 완전히 통합됐다. 당시에도 정부는 KOC 분리를 원했지만 체육계의 강한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KOC의 분리와 통합은 이렇듯 숱한 역사적 굴국이 숨어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정부는 늘 KOC 분리에 강박적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정부의 속내는 간단 명료하다. 올림픽 헌장에 명시된 NOC의 자율성 조항에 저촉받지 않고 체육회를 지배하기 위해서다. 올림픽헌장 제28조 6항에는 ‘각국 NOC는 자율성을 유지해야 하며 올림픽 헌장을 준수하는 것을 막는 정치적 법적 종교적 경제적 압력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억압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어기게 되면 NOC 승인이 정지되거나 취소될 수 있는 제재를 받게 돼 있다. 결국 정부는 체육회에 통합된 KOC를 떼내 체육회를 합법적으로 규제·통제·관리하려는 게 KOC 분리의 가장 큰 목적이다.

2016년 체육단체 통합이후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최근의 체육정책의 흐름에는 크게 세가지 실루엣이 어른거리고 있다. 정치권이 체육 현장과 소통없이 정치공학적 셈법에 따라 톱 다운방식으로 정책을 이끌고 있다는 게 첫 번째 흐름이다. 두번째는 전혀 개별적 사안인 듯 하지만 최근 쏟아지는 정책의 흐름에는 대한체육회의 힘을 빼는 데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 실루엣이 바로 KOC 분리다. 모든 정책이 기-승-전-KOC 분리라는 구도로 진행되고 있는 건 억지에 가깝다. 이 같은 접근은 체육을 권력의 쟁투로 여기는 품격낮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KOC 분리 문제는 권력의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결코 안될 사안이다. 따라서 체육을 어떻게 지배하고 통제하느냐에 방점이 찍힌 KOC 분리 문제는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그리고 정의롭지도 않다. 왜 정부는 역사가 전해주는 울림있는 교훈에 귀를 닫으려 하는지,참 답답할 따름이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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