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열린 지난 7월13일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서울 중구 서울시청을 출발해 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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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그 후’ 가해자와 피해자에 적용된 이중 잣대
성폭력 폭로 이후 분석해보니
‘입체적 상황’ 이해받는 가해자
‘피해자다움’ 강요받는 피해자
가까운 지인이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능력을 인정받는 직장 동료였고 성차별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였다. 가정적인 남편이자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기도 했다. 처음의 충격이 가시면, 하나둘 의문이 싹튼다. ‘그럴 사람이 아니었는데’ ‘무언가 오해가 있지 않았을까’ ‘잘못은 했지만 직장을 잃는 것까진 과하지 않나’…. 성폭력 고발에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태도는 필요하다. 문제는 신중함이 피해자에 대한 성급한 의심으로 이어질 때 생긴다.
피해자의 삶은 사실 평평하지 않다.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직장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혹시 오해를 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하고, 왜 그때 바로 말하지 않았을까 자책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적극적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도 많다. 당장 직장을 그만두면 생계가 막막해질 수도, 경력이 단절될 수도, 좋아하는 동료들을 잃을 수도 있다. 피해자의 선택은 다양하다. 같은 선택이라도 이유는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피해자들의 다양한 얼굴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참다 못한 피해자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은 모든 일상을 삼켜버린다. 피해자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피해자다운가, 아닌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경향신문은 피해자의 평평한 세계와 가해자의 입체적인 세계를 대조하기 위해 양적·질적 분석을 시도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보도와 댓글 속 자주 언급된 연관어를 추출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과 피해자들이 공론장에서 어떻게 언급되는지 살폈다.
데이터로 드러나지 않았던 피해자의 복잡한 심리는 학생·직장인·프리랜서 등을 만나 들었다. 피해 경험도, 심리 상태도 제각각이었지만 공통된 흐름은 존재했다.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일대일 관계가 아니라 주변의 묵인과 구조적 실패가 쌓인 결과물이었다.
전문가들은 ‘조력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기 말을 믿어주고 지지해줄 조력자가 곁에 있을 때 피해자들은 경험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다. 납작하게 눌려 있던 피해자의 복잡한 세계도 그제야 되살아난다. 하지만 경향신문이 만난 조력자들은 피해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이나 소송을 당한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했다.
성폭력 폭로 이후 분석해보니
‘입체적 상황’ 이해받는 가해자
‘피해자다움’ 강요받는 피해자
가까운 지인이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능력을 인정받는 직장 동료였고 성차별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였다. 가정적인 남편이자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기도 했다. 처음의 충격이 가시면, 하나둘 의문이 싹튼다. ‘그럴 사람이 아니었는데’ ‘무언가 오해가 있지 않았을까’ ‘잘못은 했지만 직장을 잃는 것까진 과하지 않나’…. 성폭력 고발에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태도는 필요하다. 문제는 신중함이 피해자에 대한 성급한 의심으로 이어질 때 생긴다.
피해자의 삶은 사실 평평하지 않다.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직장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혹시 오해를 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하고, 왜 그때 바로 말하지 않았을까 자책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적극적으로 사과를 요구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도 많다. 당장 직장을 그만두면 생계가 막막해질 수도, 경력이 단절될 수도, 좋아하는 동료들을 잃을 수도 있다. 피해자의 선택은 다양하다. 같은 선택이라도 이유는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피해자들의 다양한 얼굴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참다 못한 피해자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은 모든 일상을 삼켜버린다. 피해자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피해자다운가, 아닌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끔찍한 고통에 고개를 파묻고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는 피해자. 이에 맞지 않는 모든 모습이 ‘신뢰할 수 없는 피해자’의 근거가 된다.
경향신문은 피해자의 평평한 세계와 가해자의 입체적인 세계를 대조하기 위해 양적·질적 분석을 시도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보도와 댓글 속 자주 언급된 연관어를 추출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과 피해자들이 공론장에서 어떻게 언급되는지 살폈다.
데이터로 드러나지 않았던 피해자의 복잡한 심리는 학생·직장인·프리랜서 등을 만나 들었다. 피해 경험도, 심리 상태도 제각각이었지만 공통된 흐름은 존재했다.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일대일 관계가 아니라 주변의 묵인과 구조적 실패가 쌓인 결과물이었다.
전문가들은 ‘조력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기 말을 믿어주고 지지해줄 조력자가 곁에 있을 때 피해자들은 경험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다. 납작하게 눌려 있던 피해자의 복잡한 세계도 그제야 되살아난다. 하지만 경향신문이 만난 조력자들은 피해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이나 소송을 당한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했다.
피해자·가해자의 세계를 1회에, 조력자의 세계를 2회에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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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OOO인데…시간 흐르면 변질되는 ‘성폭력 프레임’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 두 유력 정치인의 성폭력 사건은 다른 듯 닮았다. 전자는 피해자의 언론 인터뷰로, 후자는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전자는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됐지만, 후자는 법적·정치적 책임을 따질 대상이 사라졌다. 공통점은 지방자치단체장과 비서 사이에서 벌어진 ‘권력형 성폭력’이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비서 노동의 특수성을 이야기했다. 평소 지자체장의 ‘심기 보좌’를 강요받았고,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했다. 조직 내부에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적절한 구제조치를 받지 못했다고도 했다. 그러자 ‘왜 이제 와서 이야기하냐’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에 직면했다.
이는 박원순·안희정 사건만의 특징이 아니다. 직장 내 성폭력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거의 100%라고 봐도 무방해요. 가해자가 상급자일 땐 바로 문제제기를 하기가 어렵고, 퇴사를 한다거나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어져야 신고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면 ‘허위신고다’ ‘다른 일로 앙심을 품고 조작했다’ ‘왜 뒤늦게 신고하냐’고 하죠. 실제 법정에서도 그렇게 많이 다투고요.” 성폭력 사건 경험이 많은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의 말이다.
경향신문은 미디어빅데이터 분석업체 ‘비플라이소프트’와 함께 9개 주요 일간지(경향, 국민, 동아, 서울, 세계, 조선, 중앙, 한겨레, 한국)의 안희정과 박원순 성폭력 보도 6817건을 분석했다. ‘안희정’과 ‘박원순’, ‘김지은’과 ‘피해자’라는 단어와 연관성이 높은 단어들을 분석했다. 이들의 연관어는 국가와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지표가 된다.
안희정, ‘지사’에서 ‘남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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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
안 전 지사 배우자 페북 글 이후
침대·밀회 등으로 연관어 이동
본질 사라지고 ‘2차 가해’ 시작
2018년 3월5일 안 전 지사의 전직 수행비서 김지은씨는 JTBC 인터뷰에서 안 전 지사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발했다. 김씨는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안 전 지사 측 주장에 대해 “저는 지사님과 합의를 하는 사이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피해자가 직접 사건의 본질을 ‘위력에 의한 성폭력’으로 규정한 것이다.
미투 직후부터 안 전 지사 구속심사 전(1국면)까지 약 한 달간 이러한 프레임이 유지됐다. 이 시기 김씨의 최상위 연관어는 ‘(도)지사’ ‘안희정’ ‘성폭력’ ‘수행비서’ 순이었다. ‘거절’ ‘합의관계’ ‘미안’ 같은 단어도 상위에 등장했다. 인터뷰 며칠 뒤 안 전 지사는 “합의에 관한 관계라는 비서실 입장은 잘못” “(김씨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재판이 본격 시작된 후에는 ‘위력’이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1심이 시작된 2018년 6월15일부터 무죄 판결, 여성계 반발이 이어지던 8월31일까지(2국면)다. 이 시기 김지은씨 연관어에는 ‘지사’ ‘피해자’에 이어 ‘위력’(3위)과 ‘재판’(4위)이 등장했다. 법원은 2차 피해 우려가 있어 재판 전 과정을 비공개해달라는 김씨 측 요구를 불허하고 피해자 증인신문만 비공개했다. 이 때문에 “김지은씨 진술을 신뢰할 수 없다” “안희정을 아이돌 바라보듯 했다”는 안 전 지사 측 증인들의 발언만 그대로 기사화됐다. 다만 이러한 증언들이 김씨 연관어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2차 가해’ 키워드들이 등장한 것은 3국면부터다. 2심이 시작된 2018년 11월29일부터 유죄판결이 나온 지난해 2월1일, 안 전 지사 배우자 민주원씨가 두 차례에 걸쳐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사흘이 지난 2월23일까지다. 이 시기 김씨의 최상위 연관어는 ‘계단’이었다. ‘실루엣’ ‘안희정’ ‘아이’ ‘확인’ ‘침대’ ‘위증’ ‘거짓말’ ‘밀회’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김씨가 계단에서 부부가 자고 있던 침대 앞까지 걸어 들어왔다”는 민씨 페이스북 글의 내용이다.
민씨 페이스북 글을 다룬 기사 수(64건) 자체는 항소심 선고를 다룬 기사(231건)에 비해 적었다. 그럼에도 연관어에 더 많이 반영된 이유에 대해 이경락 비플라이소프트 미디어빅데이터연구소장은 “기사들 간의 유사성이 높으면 단어 간 연관성이 높게 나올 수 있다”며 “민주원씨 글을 사실 확인이나 김씨 반론 없이 그대로 받아썼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지사’와 ‘비서’ 사이에서 발생한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본질은 점차 흐려졌다. 대신 ‘김지은’과 ‘안희정’이라는 두 개인의 관계로 초점이 옮겨갔다. 이는 안희정 연관어로도 확인된다. 1국면 연관어에 등장했던 ‘지사’(1위)는 2국면에서 3위로, 3국면에서 39위로 떨어진다. 대신 2, 3국면 모두에서 ‘김지은’ 키워드가 1위로 등장했다. ‘계단’ ‘실루엣’ 등 안 전 지사의 3국면 연관어 상위 10개 중 7개가 김씨의 키워드와 겹친다. 비서와 감독관계에 있는 ‘지사’에서 불륜을 저지른 ‘남편’으로 해석된 것이다.
최이숙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안 전 지사 사건은) 한국 언론의 성폭력 보도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 사례”라며 "성인지적인 보도는 차치하고, 한국 언론이 지향하는 형식적 객관주의조차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어 "소위 사실확인 위주의 관행에 익숙한 언론은 ‘사실’이 나오는 피해자의 말을 검증하려는 경향이 있다. 가해자의 말은 전달만 할 뿐 ‘맞나 틀리나’를 묻지 않고 검증할 시도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장’ 박원순, ‘고통받는’ 피해자
2020년 7월10일~8월6일 9개 일간지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보도 4510건 중 ‘박원순’ ‘피해자’ 단어와 연관성이 높은 상위 50위권 단어 일부를 시각화했다. 단어 간 연관성은 데이터마이닝 분야에서 클러스터들 간의 응집도를 구하는 ‘코사인(cosine) 유사도’ 방식으로 측정했다. 개별 기사에서 등장한 빈도수의 행렬을 기록한 뒤 이 빈도수의 패턴이 비슷할수록 두 단어 사이에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측정 방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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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정치거물’ 사망이 화두
성폭력 의혹 불거진 다음에도
인권·변호사 등 행적 평가 다수
피해자 메시지는 주목도 낮아
박 전 시장 성폭력 의혹은 지난달 9일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을 고소한 다음날이었다. 김씨와 달리 박 전 시장 사건 피해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로 인해 박 전 시장과 피해자의 일대일 관계로 보는 경향은 줄어들었다.
‘박원순’과 가장 연관성이 높은 단어는 ‘서울시장’이었다. 직장 내 성폭력 해결 주체인 ‘서울시’는 박 전 시장(10위)과 피해자(12위) 모두에서 상위 연관어로 등장했다. 안 전 지사 사건에서 ‘충남도청’ 책임론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다만 이는 박 전 시장 사망으로 법적·사회적 책임을 질 주체가 사라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사망 당일부터 장례 기간까지(1국면)는 ‘정치거물’ 박원순의 사망이 화두였다. “비극으로 막 내린 ‘대선주자 원순씨’의 정치 여정” “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대권 꿈꿨던 최장수 서울시장”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주로 나왔다. 이 시기 박 전 시장의 연관어에는 ‘사망’(5위), ‘장례식장’(7위), ‘조문’(12위) 등 사망과 장례라는 ‘사건’을 다룬 키워드가 주로 등장한다. ‘성추행’은 49위에 자리했다.
‘민주당’ ‘대표’ ‘관계자’ 등 다양한 취재원들도 주요 키워드로 등장했다. 생전 박 전 시장과의 사적 인연을 언급하며 고인을 애도하거나 추모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이 과정에서 ‘인권’ ‘변호사’ ‘사회’ ‘시민’ 등 인간 박원순의 행적을 평가하는 단어들도 등장했다.
한편에서는 이런 보도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해당한다는 여론이 나왔다. 1국면에서 피해자의 최상위 연관어는 ‘피해’와 ‘연대’였다. ‘목소리’ ‘성명’ ‘해시태그’ ‘청와대 국민청원’ 같은 단어도 언급됐다.
장례 마지막 날 피해자의 첫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성추행 보도 국면이 시작됐다. 박 전 시장 연관어에는 ‘성추행’ ‘의혹’이, 피해자 연관어에는 ‘성추행’ ‘피해’가 높게 나타났다. 2차 기자회견 이후(3국면) 지난 6일까지의 연관어도 대체로 비슷했지만, 법률 대응을 촉구하는 단어인 ‘조사’나 ‘고소’의 순위가 각각 9위와 11위로 높게 나타났다. 2국면에서 ‘조사’는 61위, ‘고소’는 28위였다.
전반적으로 박 전 시장 연관어들은 ‘서울시장’이라는 공적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성추행 사실도 비중 있게 다뤄지지만, 정치인 박원순이나 3선 시장 박원순의 면모를 보여주는 어휘도 많다. 피해자의 연관어는 피해 사실과 연관된 단어가 거의 대부분이다. 2국면에서 ‘피해호소인’(20위)이 등장하긴 했지만, 안 전 지사 때와는 달리 눈에 띄는 2차 가해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박 전 시장 사건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측면도 크다. 가해자로 지목된 박 전 시장은 공인이었고, 피해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구체적인 피해의 서사를 공개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꼭 성폭력 피해자가 얼굴을 드러내야만 그 목소리를 신뢰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 내 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피해자 측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은 전형적인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었다”고 규정했다. 피해자는 4년간 20여명에게 성희롱·성추행 피해를 호소했지만 “예뻐서 그랬을 것이다” “몰라서 그랬을 것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밝히고 싶은 메시지에 대한 주목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일례로 ‘비서’는 피해자가 조직 내에서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웠던 이유를 설명할 주요 키워드이지만 44위에 그쳤다.
가해자가 일반인이어도, 피해자를 몰라도, 피해자의 복잡한 심리에 공감할 수는 없을까. 전문가들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변혜정 섹스앤스테이크(Sex&steak) 연구소장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사람 대신 가해와 피해의 서사가 더 드러나야 한다”며 “ ‘네가 예뻐서’ 같은 상사의 말과 행동도 반복된다면 부하 직원에 대한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위력관계라는 맥락이 드러나야, 피해자는 비로소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부교수는 여성도 노동자라는 인식이 생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성범죄를 당한 여성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된다는 것은 성차별적 통념”이라며 “피해가 주는 모욕감과 고통,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해야 하는 노동자의 삶의 맥락이 드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심윤지·이보라·최민지·이창준·윤기은·이창윤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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