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열흘 남부지방 르포
낮 기온이 34도까지 치솟은 17일 오후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 주택 수십채는 주인을 잃고 형체만 남아 있었다. 내부의 모든 물건은 쓰레기로 변해 마당과 길모퉁이에 쌓여 있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쓰레기를 정리하던 주민들은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휴대용 취사도구로 라면을 끓여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수마(水魔)를 견디고 축사로 돌아온 소들은 괴로운 듯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나마 축사 절반 가까이는 비었다. 일부 정리되지 않은 축사에서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수해 열흘, 아직도 주민 대부분이 집에서 못 자
양정마을은 지난 8일 구례 일대에 퍼부은 기록적인 폭우와 섬진강 인근 제방 붕괴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다. 이날로 열흘째다. 아직 양정마을 응급 복구율은 70%에 그친다. 구례군에 따르면, 양정마을을 포함한 마을 4곳의 주택 115동 중 99동을 응급 복구했다. 전용주 양정마을 이장은 "양정마을 44가구 가운데 2~3층 집인 3~4가구만 집에서 잠을 잔다"며 "나머지 90%쯤은 대피소나 친·인척네로 자러 가서 밤이면 마을이 텅 빈다"고 말했다. 저녁 무렵 마을을 빠져나가던 한 주민은 "이제 퇴근한다"고 했다. 복구 작업을 마치고 집이 아니라 대피소로 돌아가야 하는 씁쓸한 심정을 담은 말이었다.
이날 양정마을에서는 육군 31사단 장병 350여명이 복구 작업을 지원했다. 마을 주민의 3분의 2가량은 70대 이상이다. 젊어도 50대 초반이다. 복구에 힘을 쓸 젊은 손을 찾기 어렵다. 장병들의 도움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350여명은 축사와 과수원에 널린 폐기물을 밖으로 꺼내 모으고, 뼈대만 남은 비닐하우스에서 비닐을 벗겨 냈다. 가만 서 있기에도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 속에서 모두가 구슬땀을 흘렸다.
◇수해 열흘, 아직도 주민 대부분이 집에서 못 자
양정마을은 지난 8일 구례 일대에 퍼부은 기록적인 폭우와 섬진강 인근 제방 붕괴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다. 이날로 열흘째다. 아직 양정마을 응급 복구율은 70%에 그친다. 구례군에 따르면, 양정마을을 포함한 마을 4곳의 주택 115동 중 99동을 응급 복구했다. 전용주 양정마을 이장은 "양정마을 44가구 가운데 2~3층 집인 3~4가구만 집에서 잠을 잔다"며 "나머지 90%쯤은 대피소나 친·인척네로 자러 가서 밤이면 마을이 텅 빈다"고 말했다. 저녁 무렵 마을을 빠져나가던 한 주민은 "이제 퇴근한다"고 했다. 복구 작업을 마치고 집이 아니라 대피소로 돌아가야 하는 씁쓸한 심정을 담은 말이었다.
17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 5일시장에서 상인과 자원봉사자들이 지난 8일 폭우로 수해를 당한 상점의 물건 중 다시 쓸 만한 것을 골라내고 있다. 수해 열흘째인 이날 상인들은 “겉모습은 어느 정도 되찾았지만 장사를 다시 시작하려면 한참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이날 양정마을에서는 육군 31사단 장병 350여명이 복구 작업을 지원했다. 마을 주민의 3분의 2가량은 70대 이상이다. 젊어도 50대 초반이다. 복구에 힘을 쓸 젊은 손을 찾기 어렵다. 장병들의 도움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350여명은 축사와 과수원에 널린 폐기물을 밖으로 꺼내 모으고, 뼈대만 남은 비닐하우스에서 비닐을 벗겨 냈다. 가만 서 있기에도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 속에서 모두가 구슬땀을 흘렸다.
폭우 당시 구례의 소들은 불어난 물을 타고 멀게는 80여㎞를 떠내려갔다. 경남의 무인도에서 발견된 소도 있었다. 양정마을 44가구에서 소 1527마리를 키우는데, 이 중 550여마리가 폐사하거나 유실됐다. 그동안 사료가 공급되지 않아 볏짚과 물로 연명해 몸이 약해진 탓이다. 김삼종 구례군 농정과장은 "당초 250여마리가 유실된 것으로 추산했는데, 강둑이나 지붕 위로 대피했다가 뒤늦게 구조된 소가 예상보다 많았으니 그나마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구례·남원·하동… 폭염·악취와 전투
구례와 마찬가지로 지난 8일 물바다가 됐던 전북 남원시 금지면 일대도 폭염과 전투를 벌이며 복구에 나서고 있다. 금지면에는 상귀마을, 하도마을 등 마을 4곳이 있다. 총주민은 573명으로, 이 중 290명은 열흘째 대피소에서, 나머지 약 200명은 친척집 등에서 잔다. 집에 돌아가 지내는 주민은 매우 드물다. 이날 오후 3시 30분 남원시 금지면 상귀마을에 사는 황복순(88)씨는 "대피소가 좁고 불편해 딸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하루빨리 복구가 마무리돼 내 집에서 발 뻗고 자고 싶다"고 했다. 황씨네는 이제 겨우 이불이며 식기 같은 살림살이만 씻어 말려뒀다.
상귀마을 주민 서형열(54)씨는 8일 동안 이어진 수해복구로 온몸이 새카맣게 그을렸다. 이날 그는 대형 선풍기로 집 안을 말리고 있었다. 바닥과 벽이 말라야 도배를 하고 장판을 깔 수 있기 때문이다. 서씨는 "대피소까지 오가는 시간도 부족해 집 옥상에서 모기장을 치고 자고 있다"며 "마을에 연로하신 분이 많아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내가 이웃집 복구에도 손을 보태고 있다"고 했다.
금지면 마을 4곳 중 가장 물이 늦게 빠진 하도마을에선 축사 주위로 분뇨 냄새가 진동했다. 하도마을에서 축산업을 하는 윤금순(79)씨의 축사는 아직도 물에 젖어 있었다. 윤씨는 "지난주까지는 자원 봉사자가 많이 왔는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 기승을 부려서인지 어제부터는 숫자가 많이 줄었다"며 "축사나 농경지에도 하루빨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시 섬진강 인근 제방 붕괴로 함께 침수됐던 경남 하동군과 충남 금산군도 폭염·곰팡이와 전투를 치르고 있다. 화개장터 약재상인 장영분(83)씨는 "새벽같이 나와 종일 선풍기를 돌려도 황토벽이 마르질 않아 걱정이다"라며 "바짝 말리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 [포토]폭염 맞서며 수해복구…악취·곰팡이에 피해 이어져 "발 뻗고 자고싶다"
[구례=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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