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공격-패륜 악플 시달리는 선수들
연예인처럼 스포츠 댓글도 폐지 목소리
"스포츠 기사 댓글창 폐지해야" 목소리
유튜브 채널 '스포카도'와 인터뷰하는 故 고유민. /유튜브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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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국내 포털 업체들이 연예뉴스 댓글을 폐지한 것처럼 스포츠뉴스에도 댓글창을 닫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온라인 악성 댓글로 고통받다 세상을 떠난 여자프로배구 선수 출신 고유민(왼쪽)과 가수 겸 방송인 설리./현대건설배구단·스포츠조선 |
고유민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한 최선호 상담사는 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스포츠 기사의 댓글 기능을 없애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상담사는 지난달 유튜브 채널 '스포카도'의 선수 멘탈 코칭 프로그램을 통해 고유민을 상담했다. 4일 공개된 이 영상에서 고유민은 선수 시절 부진에 따른 자괴감과 악플로 인한 고통을 눈물을 흘리며 털어놨다.
고유민은 인터뷰에서 "(선수 시절) "'네가 배구 선수냐' '내가 바로 해도 그것보다 잘하겠다' 그런 악플들을 보면 운동도 하기 싫고, 시합도 나가기 싫었다"고 했다. 그는 "나는 레프트를 14년 동안 했다. 십수 년 동안 한 레프트를 하면서도 욕을 먹는데, 왜 내가 노력을 해 보지도 않은 포지션을 맡아서 욕을 먹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리베로가 아닌데 왜 이렇게 욕을 하는 거지? 그래도 이 정도면 그냥 넘어가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고유민 울린 악플들… “발로 해도 너보다 잘하겠다” “돈 떨어지면 다시 배구판 복귀?”
최 상담사는 고유민이 인터뷰 당시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며 악플로 인한 괴로운 심정을 털어놨다고 했다.
그는 “(고유민에게는) 두 가지 이슈가 있었다”며 “하나는 전에 몸 담았던 팀에서 포지션 변화로 인한 힘든 과정과 어려움을 이야기했고. 또 하나가 악플”이라고 했다. 그는 “고유민이 인터넷에서 (받은) 악플들로 괴로운 심정을 털어놨다”며 “인신공격성(악플)이라든지 ‘발로 해도 너보다는 낫겠다’ ‘돈 떨어지면 다시 배구판 돌아올 생각하지 마라’이런 얘기까지 들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최 상담사는 "생각보다 당사자들은 굉장히 충격이 크다. 스포츠 기사 댓글 폐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구 이재영, 모친 실명 거론 패륜 메시지에 인스타 폐쇄… 인신공격·가족 모독까지
스포츠 선수를 향한 악성 댓글·메시지는 뿌리 깊은 문제다. 최 상담사는 "모든 스포츠에 악플은 존재한다"며 "야구나 축구와 같이 활성화된 프로스포츠의 경우에도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엄청난 악플이 쏟아져 나온다"고 했다. 악성 댓글의 내용도 "플레이에 대한 불만은 물론이고, 인신공격, 가족에 대한 언급까지 다양한 형태의 악플이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고 설명했다. 가족에 대한 악플로 “‘너를 그렇게 낳고 (어머니가) 미역국은 먹었느냐’는 식의 댓글이 달린다.
실제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 이재영(24)은 지난해 어머니를 언급한 악성 메시지를 받고 소셜미디어 계정을 삭제한 바 있다. 한 인스타그램 이용자가 이재영에게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내 어머니의 실명을 들먹이며 패륜적인 발언을 했고, 이재영은 해당 메시지를 공개하며 "내가 다른 건 다 참겠는데 이건 아니다. 사람이 어쩜 이러느냐"고 적었다.
여자농구 간판 센터 박지수(22·KB스타즈)도 지난 1월 악성 메시지로 인한 우울증을 호소하며 소셜미디어에 "농구를 포기하고 싶다"고 올린 적이 있다. 그는 "조금 억울해도 항의 안 하려고 노력 중인데, '표정이 왜 저러느냐' '싸가지 없다' 매번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 귀에 안 들어올 것 같으셨느냐"고 썼다. 당시 구단 관계자는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로 장기간에 걸쳐 비방한 몇몇 안티가 있다고 한다"며 배경을 전했다.
◇여성 스포츠선수에 선정적인 저질 댓글, "수치심 훨씬 커"
최 상담사는 “특히 여성 스포츠 같은 경우에는 선정적인 댓글의 수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아주 저질스러운 표현이 굉장히 많이 올라오고 있다”며 “아무래도 선수들이 느끼는 수치심이 훨씬 더 클 것”이라고 했다.
최 상담사는 또 "스포츠 경기의 특성상 그날 경기가 바로바로 실시간 급으로 기사화된다"며 "비난도 (이에 맞춰) 실시간 수준으로 올라오다 보니 더 힘든 마음일 것"이라고 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의 댓글 방식은 매우 일방적인 소통 방식"이라며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일방적인 평가가 난무하는데, 선수는 반박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틀린 사실이 있어도 항변하지 못하고 견뎌야 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최 상담사는 또 선수들이 운동 외적인 스트레스에 더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운동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어릴 때부터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게 아니라 그들 그룹 내에서만 대화를 하다 보니, 경기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와는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실제로 운동선수들은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경기에서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며 “야구선수 경우 밤늦게 경기가 끝난 뒤 집에 가서 자기 영상을 확인하면서 이런 (악성) 댓글들을 보게 되면 아무래도 밤에 잠을 잘 못 자 다음 날 훈련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성적이 안 나오면 악플이 붙고 그 악플을 보고 다시 상처받는 악순환이라는 것이다.
◇스포츠계 잇단 "악플과의 전쟁" 선포… 댓글창 폐지 여론도
고유민의 비보가 알려진 이후 연예 뉴스처럼 포털 사이트의 스포츠 뉴스의 댓글 서비스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또 그동안 악플에 시달렸던 스포츠 선수들이 강경 대응하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10월 설리의 사망이 기폭제가 돼 악성 댓글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포털사이트 다음이 가장 먼저 연예뉴스의 댓글 기능을 없앴다. 네이버도 지난 3월 연예 뉴스 댓글창을 닫았고, 네이트가 지난달 동참하면서 국내 포털 3사의 연예뉴스의 댓글 서비스가 모두 종료됐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을 맡고 있는 유승민(38) 대한탁구협회장은 지난 3일 페이스북에 스포츠 뉴스 댓글 서비스 폐지를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유 회장은 "연예 뉴스의 댓글 금지와 같이 스포츠 뉴스에서의 댓글 금지법을 발의해줄 것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님들께 요청드린다"고 썼다. 그는 "특히 단순한 충고를 넘어선 인격모독성 비난, 특정인에 대한 근거 없는 여론몰이식 루머 확산 등은 선수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유승민 IOC 선수위원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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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박병호(키움), 양의지(NC), 강정호(전 피츠버그 파이리츠) 등의 소속사로 잘 알려진 리코스포츠에이전시는 악성 댓글에 대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리코 이예랑 대표는 지난 3일 "앞으로 소속 선수들에 대한 댓글, 다이렉트 메시지, 커뮤니티 게시물 등을 통한 모욕이나 허위사실 유포, 신용 훼손, 명예 훼손, 업무 방해 등에 법적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했다"며 "특히 선수의 가족에 대한 인신 공격 및 명예 훼손에 대해서는 더욱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
경기력과 병역특례에 대한 비난 등 악플 피해를 호소한 프로야구 LG 오지환(30)도 악플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오지환의 소속사인 플레이아데스는 4일 "최근 일련의 악성 댓글과 메시지 등을 통한 도 넘는 비방으로 선수들과 가족들이 큰 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더 이상 이를 방치하거나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에 따라 내부 논의와 법률 검토를 거쳐 적극적인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했다.
오지환은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나서 금메달 따내 병역특례 대상자가 됐다. 이후 그는 병역을 기피하고 손쉽게 병역특례를 얻었다며 비난을 받았고 무분별한 악플의 타깃이 됐다.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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