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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현의 창(窓)과 창(槍)]고(故) 최숙현 사건에서 풀리지 않는 두 가지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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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꽃다운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에서 아직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몇 개 남아 있다. 사건의 큰 밑그림은 사실상 다 알려졌고 정책적 대안 역시 다각도로 논의되면서 최선수 사건도 마무리되고 있는 마당에 왜 또다시 사그라드는 불씨를 뒤적이냐며 불평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게다. 그러나 최 선수가 뿌린 숭고한 희생의 씨앗이 개혁의 밀알이 되기 위해선 집요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풀리지 않는 두 가지 궁금증 중 하나는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팀이 왜 ‘장윤정 공화국’이 될 수 있었느냐다. 상식 밖의 일은 벌어졌지만 정작 어처구니 없는 조직 문화가 어떻게 싹이 트고 팀을 지배했는지에 대한 조사와 분석은 쏙 빠져 있는 게 현실이다. 일각에선 김규봉 감독과 장윤정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진위여부를 밝혀야 하는 이 문제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옐로 저널리즘’ 차원이 아닌 이번 사건의 본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체육계에 도드라지고 있는 반인륜적 사건의 상당수가 이성 지도자와 선수간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야기된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할 수 없어서다.

두번째 미스터리는 더욱 중요하다. 한국 철인3종의 여자 간판인 장윤정이 왜 최숙현이라는 어린 선수를 그토록 집요하게 괴롭혔을까 하는 의문이다. 상식밖의 폭행과 가혹행위 그리고 더 나아가 목숨을 버리게 할 만큼 집요한 정신적 학대까지. 이 부문이 설명되지 않고서는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숨어 있는 구조적 문제를 명쾌하게 밝혀낼 수 없다. 일반 사회와 다른 한국 체육계의 은밀한 구조,이걸 반드시 밝혀야 하는 이유는 처방은 제대로 된 진단에서 출발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개인의 일탈적 행위로 치부해 버리면 제 2의 최숙현 사건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장윤정은 왜 어린 최숙현을 집요하게 괴롭혔을까. 단순한 개인의 일탈적 행위가 아니라 한국 체육의 숨어 있는 구조가 그러한 행동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지적은 귀담아 둘 만하다.

한국 체육에서 선수층이 얇은 비인기종목은 흔히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측은한 종목으로 꼽히지만 속살을 들여다 보면 충격적인 비밀도 숨어 있다. 워낙 선수층이 얇다보니 한번 정상에 오른 선수들이 쉽지 않게 롱런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장윤정과 고(故) 최숙현 선수의 종목인 여자 철인3종경기에서 엘리트분야 등록 선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놀라지 마시라! 고작 26명에 불과하다.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장래성있는 새싹만 잘 솎아내면 손쉽게 롱런이 가능한 구조다. 장윤정은 여자부 철인3종이 전국체전 정식종목이 된 2006년이후 감히 넘볼 수 없는 간판선수로 군림했다. 지난해까지 모두 13번의 전국체전에 출전해 개인전(금 8개 은 3개)과 단체전(금 8개 은 1개 동 1개)에서 총 21개의 메달을 싹쓸이했다.

경주시청 소속의 장윤정의 연봉은 무려 1억원에 달했다. 1억원이라는 거액 연봉 책정의 근거는 애오라지 전국체전 성적 때문이다. 장윤정에게 전국체전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디딤돌이요,안정된 직장을 지켜낼 수 있는 안전판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치고 올라오는 어린 선수들의 싹을 매정하게 자르면서 전국체전 롱런에 집착한 이유는 분명했다. 부를 쌓고 안정된 직장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가슴 저 편에서 울려퍼지는 양심의 소리에는 애써 귀를 닫았다. 장윤정이 후배,특히 잠재력이 뛰어난 어린 선수들을 집요하게 괴롭힌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장윤정에게 괴롭힘을 당한 어린 선수는 최숙현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게 확인됐다.

한 선수의 증언이다. “어린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게 되면 결국 멘털이 붕괴되고 만다. 잠재력이 컸던 최숙현 선수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장윤정이라는 선수가 10여년동안 국내 간판으로 군림한 이면에는 수많은 어린 새싹들이 밟히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아픈 상처가 숨어 있다.”

고(故) 최숙현 사건의 중심에는 그동안 체육계에선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태움의 문화’가 숨어 있다는 게 필자의 확신이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을 지칭하는 용어다. 의료계에서나 있을 법한 ‘태움의 문화’가 체육계에서도 버젓히 활개를 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게다. 여성 체육계, 특히 선수층이 얇은 종목에선 의료계보다 더 잔혹한 ‘태움의 문화’가 존재하고 있음이 이번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태움의 문화’가 여성 체육계에 버젓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지만 이 문제가 한국 체육의 제반 모순구조의 응축체인 전국체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 이상할 게 없다. 경기력과 관련한 괴롭힘의 문화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조사하고 따져볼 문제다. 단순한 감정과 관계의 대립이 아니라 의도가 개입된 경기력의 방해는 스포츠맨십에 정면 배치되는 또 다른 범죄행위이기 때문이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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