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부서 발령난 뒤에도 계속… 시에 도움 요청했지만 묵살”
박원순 서울시장을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한 A씨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왼쪽 네 번째)가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김 변호사,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다. 이제원 기자 |
고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전직 비서 A씨의 변호인과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13일 박 시장의 성추행이 4년간 계속됐고 심지어 성폭행으로 물러난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 등이 벌어졌을 때도 이어졌다고 폭로했다. 이 과정에서 고소 사건이 접수 당일 경찰을 통해 청와대에 보고된 사실이 확인되고 박 시장에게도 전달된 의혹이 제기돼 큰 파장이 예상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A씨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박 시장 영결식 직후인 이날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을 가졌다.
변호인 경과보고를 맡은 김 변호사는 “A씨는 다른 기관 공무원으로 재직 중 4년 전 시청 측 연락을 받고 시장실 면접을 본 후 근무를 시작했다”며 “범행 발생 시기는 비서직을 수행하는 4년 기간 그리고 다른 부서로 발령난 이후에도 지속됐다”고 말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박 시장은) 미투운동으로 안 전 지사나 오 전 시장 사건에 대해 가장 가까이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안이 누구보다 자신에게 해당된다는 점을 깨닫고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멈추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특히 “고소 당일 피고소인에게 모종의 경로로 수사 상황이 전달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국가 시스템을 믿고 위력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소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오른쪽 두 번째)가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은 지난 8일 저녁 박 시장 고소건을 접수하고 경찰청에 보고했다. 경찰청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절차대로 보고했고 박 시장이나 서울시에 고소 사실과 관련한 통보는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경찰의 수사 내용이 박 시장에게 전달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주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성추행 고소 사건의) 수사 상황이 상부로 보고되고, 상부를 거쳐 그것이 피고소인에게 바로바로 전달된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가 말한 상부는 청와대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A씨 측은 지난 8일 박 시장을 서울지방경찰청에 성폭력특례법상 통신매체이용음란·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형법상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하면서 A씨의 휴대전화 포렌식 자료를 증거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박 시장의 성추행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 내용을 알린 증거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최근 피해자에게 온·오프라인에서 가해지고 있는 2차 가해 행위에 대해 경찰에 추가 고소를 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청에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 소장은 또 고소가 늦어진 데 대해 “피해자(A씨)가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시장의 단순 실수로 받아들이라’거나 ‘비서 업무는 시장의 심기를 보좌하는 역할’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특히 A씨가 부서 변경을 요청했지만 박 시장이 승인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는 A씨는 입장문을 통해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다”며 “더 좋은 세상에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고 호소했다. 서울시는 장례일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사실관계 등에 대한 입장을 내놓을 방침이다. 박시장 영결식이 서울시청에서 비공개로 엄수됐다. 이번 성추행 사건은 진상규명에 대한 여론이 뜨거운 만큼 그동안 피고소인 사망 시 통상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했던 수사관행에 변화의 계기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고미경 한국여성의 전화 상임대표는 “대답의 주체는 경찰청, 서울시뿐 아니라 정부와 정당, 국회도 책임 있는 행보를 위한 계획을 밝혀주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유지혜·이종민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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