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서울·본인은 세종에 거주
2주택자 많아 丁총리 지시에 촉각
일각선 "정책실패에 보여주기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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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정세균 국무총리가 다주택을 소유한 정부부처 고위공직자들에게까지 ‘하루빨리’ 주택을 매각하라고 지시하자 세종 관가는 크게 술렁였다. 정부세종청사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점심시간에 정 총리가 다주택자 고위공직자들에게 주택 매각을 지시했다는 뉴스를 봤다”면서 “공무원 상당수가 그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세종 관가에서는 총리 지시 이행 여부가 향후 승진과 연계될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부동산정책 실패에 따른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한 ‘보여주기 쇼’에 애꿎은 공무원들이 동원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주요 경제·사회부처 청사가 세종으로 이전하면서 가족이 머무는 서울을 오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 세종에 근무하는 공무원들 중에는 2주택자가 적지 않다. 서울·경기권에 기존 주택을 두고 세종에 공무원 특별분양을 신청해 2주택자가 된 경우도 많다. 당장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부터 경기도 의왕에 아파트가 있으면서 정부청사가 있는 세종에 특별분양을 받아 2주택자가 된 케이스다.
이날 정 총리의 지시에 따라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정부부처 국장급 이상 다주택 공무원은 하루아침에 집을 팔아야 하는 대상이 됐다. 재산공개 대상인 1급을 포함해 2급 이상 국장급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중앙정부부처 기준으로 1급 이상 고위공직자는 150여명, 2급까지 확장하면 1,500명에 육박한다. 정부부처의 한 고위공무원은 “국민이 공직사회에 요구하는 게 법적 의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뼛속까지 청렴하기를 요구하는 것 같다”면서 “성인군자가 아니면 공무원 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푸념했다. 사회부처의 한 공무원은 “긴급재난지원금도 기부하라고 하더니 이제는 집도 2채 이상 갖지 말라고 한다”며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부동산정책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공직사회의 눈길도 곱지 않다. 정치인들이야 보유 다주택 매각 요구를 외면한 채 유야 무야 넘길 수 있지만 공무원들은 졸지에 주택을 매각해야 하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경제부처의 과장급 공무원은 “‘부글부글’이라는 표현보다는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생각뿐”이라며 “부동산도 엄연한 사유재산인데 이에 대한 처분을 총리가 직접 지시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앞으로 장·차관 승진 요건을 따질 때 능력보다는 주택을 몇 개 소유했느냐부터 따져보게 되는 것 아니냐”며 “특정 자산에 대해 대상 집단을 직접 지목하며 처분하라는 지시를 들어본 적 없다”고 토로했다.
/세종=한재영·하정연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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