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훈 의원 |
여당 지도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를 종용하는 발언이 나왔다. 윤 총장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으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또다시 대립각을 세우자 여권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4·15 총선에서 압승한 집권 여당이 검찰 개혁 기치를 앞세워 윤 총장을 다시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와 검찰의 후속 대응이 주목된다. 5선 중진인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19일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윤 총장 거취에 관해 "갈등이 일어나면 물러나는 게 상책"이라며 "적어도 책임 있는 자세를 갖춘 사람이라면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전 설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도 "윤 총장이 추 장관과 다투는 모양은 지극히 안 좋은 사태이기에 조만간 결판내야 한다"며 "제가 윤석열이라면 벌써 그만뒀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설 최고위원의 작심 발언 배경에는 최근 벌어진 추 장관과 윤 총장 간 정면충돌이 있다. 윤 총장이 당초 대검 감찰부에서 맡고 있던 '한명숙 사건' 검찰 수사팀의 위증 교사 진정을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로 재배당하며 갈등이 비롯됐다.
지난 18일 오전 추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해 윤 총장의 조치를 두고 "마치 인권 문제인 것처럼 문제를 변질시켜 인권감독관실로 이첩한 대검의 조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직격하기도 했다. 대검은 즉시 "최장 5년인 검사 징계 시효가 지난 사건은 원칙적으로 감찰부서 소관 사항이 아니며, 사건 진정인도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반박했지만, 추 장관은 이후 대검 감찰부에서도 특정 참고인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박주민 최고위원. [김호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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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박주민 민주당 최고위원도 한 라디오와 인터뷰하면서 윤 총장의 재배당 지시를 두고 "만약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압박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의원들의 개인 의견일 뿐 당 차원의 견해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현역 검찰총장에 대해 '사퇴 압박'을 가했다는 점에서 정치권에 적잖은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거치면서 여당과 윤 총장 간에 큰 갈등이 빚어졌고, 총선 과정에서 잠잠해졌던 갈등이 다시 전면에 부각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전날 민주당 출신인 추 장관에 이어 민주당도 날을 세우고 나선 것은 검찰의 권력 실세 수사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본다. 현재 검찰은 송철호 울산시장을 소환해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 실세들의 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이고, 최근에는 라임 펀드 환매 중단 수사에 여권 정치인들 로비 의혹이 포착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여당이 (윤 총장) 거취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 중견 간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법에 따라 (윤 총장을) 임명했고 아직 임기가 남아 있다"며 "최근 윤 총장과 관련한 개인 비리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거취 문제를 거론하는 의도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중간 간부는 "총선에서 177석을 확보한 거대 여당이 차기 대선을 위해 본격적인 검찰 흔들기에 나선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여당으로서는 후년 대선을 준비하면서 정권 후기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데, 윤 총장이 검찰에 남아 있는 게 불안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당에서도 즉각 반발이 쏟아졌다. 배준영 미래통합당 대변인은 "여당이 왜 검찰청법에 임기가 2년으로 정해진 검찰총장을 흔드는가"라고 비판했다. 황규환 통합당 부대변인은 "한명숙 구하기에 나선 여당과 추 장관은 법치의 부정이자 사법권에 대한 능멸"이라며 "문재인 정권 들어 법치주의가 백척간두에 서게 됐다"고 주장했다.
[임성현 기자 / 김희래 기자 / 윤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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