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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詩와 나체여인… 죽음 문턱 백남준이 첫사랑에 보낸 편지 나왔다

조선일보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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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詩와 나체여인… 죽음 문턱 백남준이 첫사랑에 보낸 편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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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친구 이경희에게 보낸 '러브레터' 이달 말 책으로 출간
나체 여인-상여에 김소월,김기림 詩 끄적인 콜라주 73점
병색이 완연한 백남준 앞에 해골이 놓인 사진에 ' N.J.P. 1996 6/29'를 쓴 작품. 이경희씨는 "1996년 6월 29일은 백남준이 쓰러진 날짜"라며 "다시 살아난 그는 옛날의 기억과 더불어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건축가 김원 제공

병색이 완연한 백남준 앞에 해골이 놓인 사진에 ' N.J.P. 1996 6/29'를 쓴 작품. 이경희씨는 "1996년 6월 29일은 백남준이 쓰러진 날짜"라며 "다시 살아난 그는 옛날의 기억과 더불어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건축가 김원 제공


“약속한 드로잉을 보내겠는데 전부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만든 것이니 일괄 취급 요망.”
1996년 가을, 서울의 이경희(당시 64세·수필가)씨 앞으로 팩스 한 장이 날아왔다. 발신자는 뉴욕의 백남준. 한국이 낳은 이 세계적 아티스트는 몇 달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터였다. 깜짝 놀란 여인이 전화를 걸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작업을 하다니요?” “어떻게 경희와의 약속을 잊어버려? 구상은 머리로 하고 작업은 오른팔로 할 수 있는데, 머리도 정상이고 오른팔도 정상이니까 할 수 있었지.”

자신의 비디오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나체 여인 사진에 '기동차를 타고 뚝섬에 원족 가자'고 썼다. 이경희씨는 "어릴 적 서울 근교 유원지였던 뚝섬에는 포도밭이 있었어요. 남준이와 나는 포도를 따 먹으러 기동차를 타고 뚝섬에 가곤 했죠"라고 했다. /건축가 김원 제공

자신의 비디오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나체 여인 사진에 '기동차를 타고 뚝섬에 원족 가자'고 썼다. 이경희씨는 "어릴 적 서울 근교 유원지였던 뚝섬에는 포도밭이 있었어요. 남준이와 나는 포도를 따 먹으러 기동차를 타고 뚝섬에 가곤 했죠"라고 했다. /건축가 김원 제공


국제우편으로 도착한 작품 꾸러미를 열어본 순간, 여인은 가슴을 짓누르는 듯 아팠다고 했다. 갖가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체 여인 사진들 위에 남준과의 어릴 적 기억들이 낙서처럼 휘갈겨져 있었다. “‘플레이보이’ 잡지에서 제일 비싼 누드모델을 사서 직접 찍은 사진”이라고 그는 말했다. “몸이 불편한데도 나를 위한 작품을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업했다는 것이 고맙다기보다 슬프기만 했어요.” 여인은 작품을 다시 덮어버렸고, 포장 그대로 장 속에 넣었다.

나체 여인 사진을 배경으로 김소월 시 '진달래꽃' 싯구를 변주해 끄적였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사뿐히 진달래꽃 밟고 가시옵소서'. /건축가 김원 제공

나체 여인 사진을 배경으로 김소월 시 '진달래꽃' 싯구를 변주해 끄적였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사뿐히 진달래꽃 밟고 가시옵소서'. /건축가 김원 제공


◇“어떻게 경희와의 약속을 잊어버려?”
백남준이 죽음의 문턱에서 첫사랑 여인에게 보낸 드로잉 편지 전모가 처음 공개됐다. 이달 말 출간 예정인 책 ‘죽음의 문턱에서 유치원 친구 이경희에게 보내온 백남준의 드로잉 편지’(태학사)를 통해서다. 백기사(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 공동대표인 건축가 김원은 17일 본지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작가가 몸과 의식을 회복하고 그리운 옛 동무에게 보내온 작품”이라며 “백선생 스스로 ‘지금껏 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라고 말한 ‘콜라주 드로잉’ 73점”이라고 밝혔다.

누드 모델을 찍고 있는 백남준 사진에 루트 기호, '칙칙퍽퍽 기차(汽車)가 떠난다'를 썼다. 이경희씨는 "남준이는 내 어깨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칙칙폭폭 기차가 떠난다' 소리를 내며 놀곤 했다"고 말했다. /건축가 김원 제공

누드 모델을 찍고 있는 백남준 사진에 루트 기호, '칙칙퍽퍽 기차(汽車)가 떠난다'를 썼다. 이경희씨는 "남준이는 내 어깨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칙칙폭폭 기차가 떠난다' 소리를 내며 놀곤 했다"고 말했다. /건축가 김원 제공


이씨는 백남준의 동갑내기 유치원 친구이자 첫사랑이다. 백남준이 1968년 ‘공간’ 잡지에 쓴 ‘뉴욕 단상’에는 “(숨바꼭질하다가) 술래를 피해 뒷산 창고 뒤 도당 아래 (경희하고) 둘이서 꼭꼭 숨어보니, 별안간 춘(春)을 느끼어…”라는 대목이 나온다. 35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1984년 귀국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누가 보고 싶냐는 질문에 “유치원 친구 이경희가 보고 싶다”고 했다. 서울에서 한 손에 꼽히는 부잣집 막내 아들이었던 백남준은 당시 상류층 부인들의 모임인 ‘애국부인회’가 경영한 애국유치원에 다녔다.
백남준이 "플레이보이 잡지에서 제일 비싼 누드모델을 사서" 직접 사진 찍는 장면을 배경으로 '산유화와 진달래꽃과 비엔날레'라고 휘갈겨 썼다. /건축가 김원 제공

백남준이 "플레이보이 잡지에서 제일 비싼 누드모델을 사서" 직접 사진 찍는 장면을 배경으로 '산유화와 진달래꽃과 비엔날레'라고 휘갈겨 썼다. /건축가 김원 제공


백남준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이씨의 남편은 “미친X”라고 했지만, 이씨는 백남준이 묵고 있는 워커힐 호텔로 찾아가 재회했다. 이씨를 본 백남준의 첫 마디는 “세라비(C’est la vie ·이게 인생이지), 우린 너무 늦게 만났어”였다. “남준은 두 팔로 나를 껴안으며 ‘나는 당뇨라 섹스를 못해’라고 했죠. 이 드로잉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체 여인 사진을 보는 순간, 그 때 생각이 떠올랐어요.”

어릴 적 살던 서울 창신동 '큰대문집' 앞에서 유치원 졸업 사진을 들고 있는 백남준과 이경희. 장 폴 파르지에(Jean Paul Fargier) 촬영. 1990.

어릴 적 살던 서울 창신동 '큰대문집' 앞에서 유치원 졸업 사진을 들고 있는 백남준과 이경희. 장 폴 파르지에(Jean Paul Fargier) 촬영. 1990.


◇죽음 앞두고 보낸 러브 레터
작품은 모두 콜라주 드로잉 형식. 사진을 붙이고 그 위에 손글씨로 짧은 메모를 썼다. 나체 여인을 배경으로 어릴 적 기억들을 수학 기호 루트와 함께 끄적이거나, 김소월 시 ‘진달래꽃’ ‘먼 후일’, 김기림 ‘바다와 나비’ 등 시구(詩句)를 변주해 적었다. “먼 후일(後日)에 당신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나무라시면 그때엔 그리다가 잊었노라”…. 이씨는 “이 메모들이 무슨 뜻인지는 오직 나만 알지. 둘만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겼다”며 “(왜 나체 여인이냐는 질문에 머뭇하다) 그건 사랑한다는 고백”이라고 말했다.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의 환갑 기념 회고전이 열렸어요. 그해가 마침 '춤의 해'여서 백남준에게 무용가와 함께 하는 공연을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기꺼이 수락해주었죠. 공연 다음날 둘이서 축하 저녁을 했어요. '오늘 공연은 경희에게 바치는 공연이었어', 백남준이 와인잔을 들고 나의 눈을 쳐다보며 한 말이었어요. 1948년에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의 영화 '카사블랑카'가 서울에서 무척 인기가 있었는데, 그 영화에 나오는 대사 'Here's looking at you, kid'가 떠오르더군요." (이경희씨)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의 환갑 기념 회고전이 열렸어요. 그해가 마침 '춤의 해'여서 백남준에게 무용가와 함께 하는 공연을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기꺼이 수락해주었죠. 공연 다음날 둘이서 축하 저녁을 했어요. '오늘 공연은 경희에게 바치는 공연이었어', 백남준이 와인잔을 들고 나의 눈을 쳐다보며 한 말이었어요. 1948년에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의 영화 '카사블랑카'가 서울에서 무척 인기가 있었는데, 그 영화에 나오는 대사 'Here's looking at you, kid'가 떠오르더군요." (이경희씨)


김남수 전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원은 “이 작품군에서 가장 중요한 감흥은 유년기로 되돌아가고 싶은 향수”라며 “‘자, 밥 먹자’ ‘기동차를 타고 뚝섬으로 원족(소풍) 가자’ ‘칙칙퍽퍽 기차가 떠난다’ 등 이씨와 함께 했던 놀이의 추억, 어린 시절 체험을 끄적여 현재에 농축돼있는 과거의 시간을 소환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준이의 창신동 집이 얼마나 큰지 동네 사람들은 ‘큰대문집’이라고 불렀어요. 뒤뜰에 커다란 동산이 있었는데 남준과 나는 그림책을 들고 동산에 올라가 나란히 앉아서 보곤 했지요. 해질 무렵, 엄마가 ‘자 밥 먹자’ 하고 부르러 올 때까지 책을 읽었어요.”(이경희씨)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사진을 배경으로 '자 밥 먹자'를 휘갈겨 썼다.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사진을 배경으로 '자 밥 먹자'를 휘갈겨 썼다.


죽음에 대한 모티브도 핵심이다. 김 연구원은 “병색이 완연할 정도로 해쓱한 백남준 자신이 해골과 찍은 사진, 조부의 장례식에서 상여가 나가는 사진이 반복 등장하는 것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던 작가의 실존론적 위상을 보여준다”며 “삶을 영위하기 위해 기억의 편린 속에서 존재의 거처를 마련하려는 퍼포먼스로도 읽힌다”고 해석했다.


어린 시절 조부의 장례식에서 상여가 나가는 사진 아래에 '기가 막히다 해도 개나리'라고 썼다. 이경희씨는 "남준은 할아버지에 대한 긍지와 존경을 갖고 있었으나 세상의 평가는 일본에 돈을 상납했다는 사실에만 쏠려 있었다"며 "그런 세상의 평가 때문에 '기가 막히다', 그래도 봄은 온다는 뜻으로 '개나리'란 표현을 쓴 것 같다"고 했다.

어린 시절 조부의 장례식에서 상여가 나가는 사진 아래에 '기가 막히다 해도 개나리'라고 썼다. 이경희씨는 "남준은 할아버지에 대한 긍지와 존경을 갖고 있었으나 세상의 평가는 일본에 돈을 상납했다는 사실에만 쏠려 있었다"며 "그런 세상의 평가 때문에 '기가 막히다', 그래도 봄은 온다는 뜻으로 '개나리'란 표현을 쓴 것 같다"고 했다.


백남준 아내 구보타 시게코와도 함께 만났다는 이씨는 “이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며 “앞으로 백남준을 연구하는 데 이 드로잉 해석이 큰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핑크빛 카디건에 꽃무늬 가방을 손목에 걸친 이경희(88)씨는 "1996년 처음 이 작품을 받았을 땐 가슴이 에려서 바로 묶어버렸다"며 "남준씨가 그렇게 그리워한다는 걸, 아파서 다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핑크빛 카디건에 꽃무늬 가방을 손목에 걸친 이경희(88)씨는 "1996년 처음 이 작품을 받았을 땐 가슴이 에려서 바로 묶어버렸다"며 "남준씨가 그렇게 그리워한다는 걸, 아파서 다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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