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급격히 식은 남북관계를 책임진 첫 사례다. 이를 필두로 안보라인 전체를 물갈이할 것이라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김 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남북관계 악화에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했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많은 국민들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 사의를 전달했다. 그는 "남북관계 악화에 대해서 현재 상황을 예상할 수 있었던 시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부분들 관련해서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국가안보실도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안보실이 대북전단(삐라) 문제가 이렇게 커질 것을 예측하지 못했을거라는 의견이 많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이달 4일 담화를 내고 잇따라 '말폭탄'을 쏟아부을때 청와대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판문점 선언과 군사합의 내용을 지켜야 한다'는 원론적 반응이 전부였다. 북한의 날선 비판이 이어졌다. 정부는 삐라 살포를 엄단하겠다며 북한을 달래려 했지만 어림없었다. 판단 실패다.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삐라 살포가 북한에 빌미를 줬다. 북한은 이를 이용해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군병력 전면배치 등을 감행했다. 안보실은 이를 지켜보면서도 '수'를 쓰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는 북한을 잘 몰랐다. 긍정을 넘어 낙관했다. 잘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막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대해 "충분히 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낙관적인 전망을 가지면서 추진해 나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지난달 취임 3주년 연설에서도 "이어지는 소통을 통해 남북 간에도, 또 북-미 간에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대화 의지를 지금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판단도, 예측도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명확한 대북 성과를 남겼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손을 맞잡는 장면을, 국경을 오가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나아간 게 없다. 대화도 거의 없었다. 북한 입장에선 비핵화를 이행할 동기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상황은 더 꼬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차기 미국 대선에 집중하며 북미관계의 우선순위는 뒤로 밀렸다. 북한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국제적 고립 심화를 자처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커졌다.
[평양=AP/뉴시스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4일 탈북민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 강력히 반발하며 "남측이 이를 방치하면 남북 군사합의 파기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제1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에 불쾌감을 표하며 "6·15 남북공동선언 20돌을 맞는 마당에 이런 행위들이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방치된다면 남조선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은 김여정 제1부부장이 2019년 3월 2일 베트남 호찌민의 묘소 헌화식에 참석한 모습. 2020.06.04.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럼에도 북한은 한동안 잠잠했다. 별탈 없어보이는 남북관계는 더불어민주당의 4.15 총선 완승에도 일부 영향을 끼쳤다.
북한의 위기는 남북관계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노루 때린 막대기'에만 의존했다. 북미협상 중재와 남북경협 등에서 진전이 없었다. "한반도 평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란 주장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한미동맹을 지키면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어렵다는 딜레마가 있었다고 해도, 보여준 게 부족한 건 사실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17일 대남담화에서 이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문 대통령을 겨냥해 "남조선당국자는 이번에 '북남선언들은 흔들려서는 안될 확고한 원칙'임을 운운하며 '여건조성'이 안돼도 북남관계에서 그 무엇을 할것처럼 객적은 소리를 늘어놓았다"고 말했다.
또 "자타가 공인하는바와 같이 훌륭했던 북남합의가 한걸음도 리행의 빛을 보지 못한것은 남측이 스스로 제 목에 걸어놓은 친미사대의 올가미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0.06.15. dahora83@newsis.co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김평화 기자 peace@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