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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슈 물가와 GDP

전례없는 규모로 풀린 돈, 이번엔 ‘잠자는 물가’ 깨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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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인플레 사이’ 각국 부양책 기대감

미국도 돈 부어도 물가 마이너스

경기회복 더뎌 디플레 전망 많지만

금융위기 때에 견줘 긍정적 기대도

지원금·대출, 실물경제 직접 주입

“통화유통속도 빨라지면 물가 상승”


한겨레

그래픽_김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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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경제위기에 대응해 세계 각국의 정부와 중앙은행이 전례없는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고 있어 향후 물가의 향방이 주목된다. 경기침체로 물가 전반의 지속적인 하락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 조짐이 보인다는 의견에서부터, 풀린 돈이 제대로 실물경제에 스며들 경우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전망이 나온다.

1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중국·유로지역 등 주요 10개국의 경기부양 규모는 4월 기준 15조 달러로, 지난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7%에 달한다. 미국은 5조 달러가 넘는 유동성을 단계적으로 투입하고 있지만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0.8%)은 2008년 12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5월 소비자물가(-0.3%)도 8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대규모 부양책이 시행됐지만 수요 위축으로 물가상승이 동반되지 않았다. 반면 코로나19는 수요와 공급 모두를 위축시켜 물가의 하락 요인과 상승 요인이 섞여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수요가 줄어 재고가 쌓였지만 동시에 사업장 폐쇄에 따른 생산 감소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계의 소비와 기업의 생산능력 중 어느 쪽이 빨리 회복될 것이냐를 놓고 물가 전망이 갈린다. 김승원 한국은행 물가분석부장은 “지금은 수요감소와 유가급락의 영향이 공급감소 효과를 압도하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물가상승률이 큰 폭으로 둔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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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투자은행(IB)들 사이에서는 경기의 더딘 회복으로 물가 하락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코로나19 종료 뒤에도 재택근무와 비대면 거래가 확산되면서 제품의 가격경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물가하락 쪽에 힘을 싣는다. 반면 조업중단 사태 재발 우려로 글로벌 분업구조가 후퇴하면서 임금 등 생산비용이 늘어나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막대한 규모의 돈을 풀어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배경을 통화유통속도 하락에서 찾는 견해도 적지 않다. 통화유통속도란 일정기간의 상품 거래에 화폐의 단위가 평균 몇번씩 사용되었는지를 나타낸다. 이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은 대출이나 설비투자 등 경제적 거래가 줄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통화증가율은 상승하고 있지만 통화유통속도는 하락 중이다. 미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 자료를 보면, 미국의 올해 1분기 통화유통속도는 1.374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59년 이래 가장 낮았다. 우리나라의 1분기 통화유통속도(0.645)도 2000년 조사 이래 최저치다.

돈의 흐름이 빨라져야 실물경제의 수요를 자극해 물가도 오른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푼 대규모 유동성은 금융시장으로 흘러가 주택 등 자산가격을 끌어올렸다. 일부는 은행시스템 안에 초과지급준비금 형태로 잠겨 물가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푸는 자금은 재난지원금과 중소기업 대출 등을 통해 실물경제에 직접 주입되고 있어 잠든 물가를 깨울 여지가 충분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안기태 엔에이치(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3월부터 미국 등에서 은행대출 증가율이 높아져 향후 통화유통속도가 빨라지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다만 노무라금융투자는 현재 지원자금이 소득이 감소한 민간의 임금과 임차료를 메우는데 사용돼 물가상승으로 연결되는 수요확대 효과는 낮을 것이라고 봤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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