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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거친 채석장 암벽이 드라마틱한 병풍이 되는 베이하버 골프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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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코스란 기억에 남는 코스다. 미국의 골프코스 설계가 아서 힐스(Arthur Hills)가 설계해 1997년 오픈한 베이하버 골프클럽의 27홀 중 쿼리(Quarry) 코스 9홀은 버려진 채석장을 재활용해 최고 수준의 코스로 만들었다. 거친 채석장 암벽이 녹색의 페어웨이와 그린을 돋보이게 하는 드라마틱한 병풍 역할을 하는 이 특별한 코스는 골퍼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줘 다시 방문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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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체제 문학의 고전이자 비트 문화의 출발점이 된 잭 케루악의 <길 위 에서(On the Road)>를 읽은 사람이라면 간접적으로나마 미 대륙의 거 대한 스케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시애틀에서 뉴욕까지 차를 몰고 횡단했을 때 느꼈던 대륙이 준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90번 고속도로를 따라 동으로 아이다호, 몬태나, 사우스다코타를 통과해 미네소타, 위스콘신을 거쳐 94번 도로로 갈아타고 오대호 남쪽을 돌아 일리노이, 인디애나,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를 통해 뉴욕까지 오는 동안 이름을 아는 도시라고는 미 니애폴리스, 밀워키, 시카고를 제외하고는 손꼽을 정도였다. 쉬지 않고 달려도 총 46시간이 걸리는 4900km의 대장정이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 새벽, 뉴욕 퀸스의 자메이카 스테이 션에서 나의 여행에 동행해 줄 후배 한 명을 만났다. 퀸스를 출발해 서쪽으로 2200km 달려 미네소타 주의 그랜드 뷰 로지(Grand View Lodge) 방문 후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위스콘신 주의 콜러 리조트 (Kohler Resort)를 경유해 미시간 주의 베이하버 골프클럽(Bay Harbor Golf Club)과 보인 하이랜드 리조트(Boyne Highlands Resort)를 돌아보고 오는 로드 트립(Road Trip)이었다. 후배는 당시 대학 졸업 후 어렵게 직장을 알아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잠시 모든 걸 내려 놓고 로드 트립을 떠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투섬이었다. 후배가 그때 까지 단 한번도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만 제외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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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채석장 부지를 골프코스로 탈바꿈시키다

베이하버 골프클럽을 답사에 포함시킨 이유는 이곳이 과거에는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을 채굴하던 광산이었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 하기 위해서였다. 미시간 호의 한 귀퉁이에서 100년간 캐낸 석회석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으며, 과연 어디로 옮겨진 것일까. 아마도 미시간과 일리노이 사이의 운하를 통해 1871년 대화재로 불타버린 시카고의 재 건과 20세기 초·중반 이 도시에 건설된 수많은 마천루의 재료로 쓰였을 것이다. 채석장의 수명이 다하고 시멘트 공장의 굴뚝이 붕괴된 날로 부터 6개월 후, 채석장의 일부와 미시간 호를 가로막고 있던 댐이 폭파 됐고 이로 인해 베이하버 레이크 마리나(Bay Harbor Lake Marina)가 생겼다. 그리고 버려진 채석장 부지는 미국의 골프코스 설계가 아서 힐스의 손을 거쳐 베이하버 골프클럽으로 탄생했다.

일곱 살에 골프를 시작한 힐스는 미시간대 재학 중에는 인근 골프장의 관리 인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족이 운영하던 조경회사를 돕기 위해 대학에서 산림자원학을 전공했지만 회사가 문을 닫게 되자 그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그간의 경험과 배움을 접목시켜 골프코스 설계회 사를 차렸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의 첫 작품이 탄생했고, 지난 50년간 총 200여 개의 신규 코스와 그에 필적하는 수만큼의 리모델링 프로젝 트를 수행해 왔다. 그리고 그가 설계해 1997년 오픈한 베이하버 골프클럽은 27홀 중 쿼리 코스 9홀을 버려진 채석장을 재활용해 최고 수준의 코스로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버려진 폐광이나 채석장 부지를 잔디가 덮인 골프코스로 탈바꿈시키는 일은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지극히 창조적인 작업이다. 먼저 시공 측면에서는 단단한 암반의 성격상 배수가 원활하지 않고 도로 포장이 힘든 어려움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잔디가 살 수 있는 토양층을 조 성해야 하므로 많은 양의 토사를 외부로부터 반입해야 한다. 골프 플레이 측면에서는 깎아지른 절벽 사이 러프한 지형에 아마추어도 즐길 수 있는 코스를 배치해야 하기 때문에 난이도를 조절하는 디자인 감각이 필수다. 하지만 이런 수수께끼를 제대로 풀었을 때의 결과는 엄청난 보상으로 다가온다. 거친 채석장 암벽은 녹색의 페어웨이와 그린을 돋보이게 하는 드라마틱한 병풍 역할을 하게 되고, 부지의 고저 차를 활 용해 골퍼라면 누구라도 기다려지게 되는 멋진 내리막 홀을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별한 코스는 골퍼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줘 다시 방문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소가 된다. 힐스는 이런 어려운 과제를 베이하버에서 멋지게 해결했다.

쿼리 코스는 3번홀부터 과거 채석장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티잉 구역부터 그린까지는 다이너마이트로 부숴 만든 깎아지른 절벽이 플레이 선상으로 들어왔다 나가길 반복해 거리 조절에 실패하거나 자칫 오른쪽으로 빗맞은 공을 여지없이 집어삼키는 핸디캡 1의 홀이다. 두 번째로 어려운 홀은 파5 3번홀. 페어웨이 왼쪽에는 채석장에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호수가 비스듬히 위치해 있다. 과감하게 왼쪽 페어웨 이를 겨냥해 250야드 이상 티 샷을 보냈을 땐 세컨드 샷으로 그린을 노려 볼 수 있는 ‘히로익’ 홀이다. 하지만 그린 후방 절벽에서 떨어지는 인공 폭포에 시선을 빼앗겨 자칫 무모한 플레이를 하다가는 그린 전방 에 도사리고 있는 워터해저드에 공을 빠뜨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석회암이 채굴된 흔적을 따라 6, 7번홀을 지나면 눈앞에 푸른 미시간 호의 멋진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바다라고 해도 믿을 만큼 거대한 스케 일의 호수를 배경으로 마지막 두 개 홀을 마치면 숲에서 시작해 채석 장을 돌아 호수에 이르는 9홀의 여정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게 된다. 훌륭한 코스란 기억에 남는 코스라는 진리를 여기서 증명해 주는 듯하다.

동행했던 후배는 이렇게 난이도 높은 코스에서 난생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코스 답사하랴, 후배에게 스윙 가르치랴 눈코 뜰 새 없었던 내가 무색하게도 기석은 용감무쌍하게 해저드를 향해 거침없이 스윙을 했다. 비록 9홀이 끝나기 전, 가져간 공이 모두 바닥나 버리는 지경까지 갔지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연신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그를 보며,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골프라는 운동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런 즐거 운 징검다리를 놓아 주는 사실에 감사했다.

필자 오상준은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에서 골프코스 설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건축 설계, 골프코스 설계, 골프코스 시공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그는 2015년 프레지던츠컵 TF팀의 디렉터로서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다. 현재 CJ에 재직 중이며, 2019년 가을 미국의 매거진 세계 100대 코스 선정위원에 위촉돼 활발히 활동 중이다. 최근 골프 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하기도 했다.

매일경제 골프포위민 유희경 기자(yhk@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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