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시절 서울 종로구 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00차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참석해 이용수 할머니와 악수하고 있다(2015.10.14) |
[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급기야 배후설이다.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친여 인사들의 무책임한 의혹 제기가 도를 넘고 있다. 방송인 김어준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확성기 삼아 근거 없는 '배후설'을 퍼뜨렸고, 최민희 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의원은 이 할머니의 문제제기를 '윤미향이 국회의원이 되는 데 대한 거부감' 따위로 해석하며 깎아내렸다. 일부 극렬 지지층은 이 할머니 관련 기사에 조롱섞인 댓글을 퍼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 할머니의 인연은 2012년으로 거슬러간다.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문 대통령은 이 할머니와 손을 잡고 위안부 피해자 묘소를 참배했다. 비록 대선은 졌지만, 2015년 당 대표에 오른 문 대통령은 잊지 않고 수요집회 현장을 찾아 이 할머니를 만났다. 2017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는 이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갖는 등 임기 1년 반 만에 네 차례나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당시 국빈만찬에도 이 할머니를 특별히 초청,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포옹한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문 대통령과 각별히 연을 맺어 온 이 할머니가 직접 제기한 윤미향 당선인 및 정의기억연대의 횡령 의혹에 대해 막상 청와대는 긴 침묵을 이어오고 있다. 자칫 이번 논란으로 위안부 인권운동의 노력 자체를 깎아내리거나, 책임소재를 과도하게 확장해 공격당할 우려에 '전략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일본 극우 언론들은 이번 사태의 본질과 달리 위안부 이슈 자체를 부정하는 공격적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할머니가 친여 인사들은 물론 일부 지지층으로부터 왜곡된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까지 이르렀는데, 청와대가 여전히 '정치적 이유'로 침묵하는 데 대해서는 의아하다. 그간 문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쏟아온 노력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올초 문 대통령이 충남 아산의 한 전통시장을 방문했을 당시 한 반찬가게 사장이 "(경기가) 거지같아요"라고 말했다가 친문 지지층으로부터 댓글 폭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이에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직접 나서 "그분이 공격받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전혀 악의가 없었다"는 문 대통령의 '마음'을 전했다. 대변인에게 자신이 아닌 '국민 한 사람'을 대변해 달라고 지시한 것 역시 문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이 할머니의 연세는 올해로 93세다. 평생을 진실 규명에 바쳐 온 할머니가 자신을 향한 황당한 배후설에까지 기력을 쓸까 걱정스럽다. 국가원수로서 과거사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마다하지 않았던 문 대통령은 지금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궁금해 진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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