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문화·집단주의 바탕이라는 시각에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지적도
한국식 휴대전화 추적방식 놓고 효율성과 사생활 침해의 딜레마
"코로나19 사태서 한국식 '과잉 대응'은 성공적"
베를린에서 재활용 쓰레기통에 씌워진 대형 마스크[EPA=연합뉴스] |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대응책과 관련해 유럽에서 한국을 가장 주목한 국가 중 하나다.
독일의 대량 확산 초기인 3월 초부터 한국의 방역 방식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
지금은 빌 게이츠의 부인인 멀린다 게이츠가 코로나19 대응 우수 국가로 한국과 더불어 독일을 꼽을 정도이지만, 당시만 해도 독일은 코로나19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한국의 방역정책에 대한 보도는 대부분 긍정적으로 이뤄졌다.
광범위한 검사와 감염자 추적, 사회적 거리두기 등이 성공적 방역에 기여했다는 게 공통적인 평가였다.
그런데, 한국의 방역 방식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분석하는 기사 가운데서는 한국 사회에 대한 편견도 자주 발견된다. 독일의 잣대에 비춰 한국 방식의 문제점을 짚으면서도 독일식으로 변형하려는 고민도 보였다.
독일과 더불어 한국의 방역 방식에 대해 보도가 많이 된 이탈리아에서 칭찬일색인 것과는 달랐다.
자주 발견된 편견은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에 유교와 집단주의 통제 문화가 바탕이 됐다는 의견이다.
유력 일간지로 중도우파 성향의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지난 3월 29일자 '코로나 대응, 한국으로부터 배운다?'라는 기사에서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 휴대전화 정보와 감시카메라, 신용카드 정보 등을 활용하는 데 대해 "자유주의적 개방, 개인의 자유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엄격한 내부 통제와 연결돼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많은 한국인은 유교의 영향으로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가부장적인 정부의 뜻을 따르는 데 있어서 서양 사람들보다 더 적극적"이라며 "자유권을 침해받는 것이 어느 정도 용인된다"고 강조했다.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한국학 전공자인 하네스 모슬러 뒤스부르크-에센대 교수와의 3월 22일자 인터뷰 기사에서 '독일인들은 개인을 우선 생각한다면 한국인 집단을 먼저 생각하는 것도 성공적인 방역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느냐'라고 질문하기도 했다.
독일 매체 RND도 3월 31일 기사에서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 코로나19 사태 속에 마스크를 잘 착용하는 것과 관련, 유교가 중국과 한국 등에서 수백 년간 국교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면서 개인이 집단의 필요에 종속돼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일 베를린에서 공공생활 제한 철폐 시위에 참석했다가 연행되는 시민 [로이터=연합뉴스] |
이런 분석은 독일 언론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유럽 전반적으로 퍼져 있다는 게 유럽 내 한국학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최근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와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대학교의 공동 연구과제에 따르면 네덜란드 언론에서도 한국의 코로나 방역 정책이 성공한 이유는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라는 분석이 자주 이뤄졌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은정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 교수는 14일 통화에서 "한국이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방역한 데 대해 유교 문화의 영향을 언급하는 경향이 많은 데 이는 칭찬으로 볼 수 없다"라며 "서구는 근대화를 거치며 자유의지로 국민국가로 거듭났는데 동아시아에는 전근대적 공동체 정신과 문화가 남아있다는 시각으로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지적했다.
휴대전화를 활용한 한국의 확진자 및 접촉자 추적 방식을 놓고서는 독일 사회가 고심하는 흔적이 보인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식으로 개인 정보에 기반한 추적이 필요한 데, 이는 독일의 개인정보보호 원칙에 위배된다는 딜레마에 봉착한 것이다.
독일의 많은 언론은 한국의 휴대전화 추적 등 디지털 방식에 대해 주목했다.
독일 연방보건부는 한국 방식에 착안해 감염자의 동선을 휴대전화 정보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했다.
일부 언론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당시 코로나19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보수성향의 일간 디벨트는 지난 3월 말 '한국식 모델이 독일을 구원해줄 수 있을까'라는 기사에서 "매우 빨리 처리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독일의 개인정보보호법에 비춰 위법 소지가 있는 데다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받으면서 결국 기술 방식을 변경했다.
지난 1일 노동절에 베를린에서 특이 모양의 마스크를 한 채 시위 중인 시민 [로이터=연합뉴스] |
좌파 성향의 타게스차이퉁은 3월 31일자 '한국의 처방전은 전체적인 통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은 확진자가 언제 어떤 식당에서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공개하고, 이런 기술이 전염자를 파악하는 데 기여했다"면서도 "이런 한국의 성공은 독일 사회를 딜레마에 빠뜨리고 있다. 사생활은 소중하며 일시적인 전염병이 더 큰 감시의 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보호의 높은 가치는 생명 보호에 반하게 된다. 그래서 균형점을 찾기가 어렵다"고 바라봤다.
독일 언론은 한국이 '과잉 대응 문화'를 가진다면서도 코로나19 사태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4월 17일자 '과잉의 기술'이라는 기사에서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에 "과잉 반응"을 하는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고방식은 젊은 사람들을 상대로 극단적인 기대감과 가차 없는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러나 코로나19에 대해서는 연민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한국의 적극적인 대응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이진 독일 정치+문화연구소장은 지난달 30일 독일 언론 크라우트레포터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은 코로나 사태와 같은 전 지구적 위기 극복을 위해 반드시 연대해야 할 파트너"라고 말하면서 "유럽 내 높은 관심에 걸맞도록 정확하고도 타성에 빠지지 않은 시각으로 한국 관련 보도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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