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총선을 이틀 앞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사무처가 제21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될 배지를 공개하고 있다. 2020.04.13./사진=홍봉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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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①믿었던 '영감'의 배신…국회 보좌진의 세계
국회 보좌진이 '영감'(국회의원을 지칭하는 은어)을 떠난다. 버림 당했거나 스스로 버렸거나 둘 중 하나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치열한 '구직난'이 벌어지는 이유와 무관치 않다. 당장의 '밥벌이' 할 일자리가 없어서 혹은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 보좌진은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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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당선 돼도 실직?…'파리목숨' 보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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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에서 낙선한 의원실 소속 보좌진은 하루아침에 '백수'가 됐다. 특히 미래통합당의 경우 총선 참패로 의석수가 19석 감소하면서 산술적으로 150명이 넘는 보좌진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독립적인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4급 보좌관(2명), 5급 비서관(2명), 6·7·8·9급 비서(각 1명) 등 총 8명의 보좌진을 채용할 수 있다.
당선에 성공한 의원실의 보좌진이라도 고용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이들의 채용 여부는 오로지 의원의 손에 달렸다. 서류 한 장으로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파리목숨'인 셈이다.
페이스북 커뮤니티 '여의도 옆 대나무숲'은 "A의원이 당선된 지 일주일도 안돼 일괄사표를 요구했다"는 게시글로 들썩인다.
'별정직' 공무원인 보좌진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보좌진의 해임이나 징계 절차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
의원실에서 국회 사무처에 보좌진의 면직요청서를 제출하면 그 즉시 해임이 이뤄진다. 국회 사무처가 부당 인사 등을 검증하는 과정은 없다. 별다른 해임 사유 없이도 면직요청서 제출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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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도 방 분위기도 영"…박차고 나가는 보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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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갑질'을 참지 못해 다른 의원실로 눈을 돌리는 보좌진도 있다. 의원 가족의 비행기표 구매와 연말정산 등 '사적심부름'에 동원되기 일쑤다.
'무한야근'도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대정부질문이나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밤을 새고 잠시 눈을 붙이려는 보좌진이 몰려 의원회관 휴게실은 '북새통'을 이룬다.
수직적인 의원실 분위기도 '자발적 퇴사'에 한 몫 한다. 4급부터 9급까지 촘촘한 위계질서 속에 수많은 이가 고통을 삼키며 속으로 곪고 있다.
특히 의정활동과 지역구활동으로 자주 자리를 비우는 의원을 대신해 보좌관이 갖는 권한이 막강하다. 의원 때문이 아닌 보좌관의 '업무미루기'와 '폭언'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들도 많다.
이같은 '보좌진 세계'의 문제점은 수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제도적 개선은 요원하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 의원실의 부당한 노동제도 등은 국회 사무처를 소관 부처로 둔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해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운영위에서 실제 논의된 적은 없다.
보좌진 해고 사실을 미리 통보하도록 하는 '면직예고제' 법안도 역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20대 국회에서도 임기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보좌진은 동료와 함께 당선인과 보좌관에 대한 '세평'을 수집하며 어떻게든 좋은 의원실에 들어가기 위한 개인적 노력을 다하고 있다.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의 제21대 총선에서 낙선한 한 의원실 앞에 내놓은 짐들이 쌓여있다. 21대 국회는 오는 5월 30일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2020.5.13/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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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우리 보좌관 일 잘 해"…의원들까지 나선 보좌진 세일즈
"다른 길을 알아보고 있다. 공무원 시험을 칠까 생각 중이다. 착잡하다" (미래통합당 8급 비서)
"4급 보좌관이 7급 비서까지 생각하고 있다" (미래통합당 4급 보좌관)
"낙선하거나 불출마한 의원님들한테 '우리 보좌관 일 잘 한다'며 여럿 추천을 받았다. 주변 당선인들 얘기 들어보면 다들 그렇다" (미래한국당 초선 당선인)
국회 보좌진 등록이 시작된 지 이틀이 지난 13일, 통합당 의원실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역대급 구직난'으로 아직 다른 의원실로 임용이 확정되지 않은 보좌진이 많다.
통합당(미래한국당 포함)은 4·15 총선 참패로 국회 의석 19개를 잃었다. 20대 국회 122석에서 21대 103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의석과 함께 의원실 보좌진 일자리도 함께 사라졌다. 국회의원 1명당 보좌진은 4급 보좌관(2명), 5급 비서관(2명), 6·7·8·9급 비서(각 1명) 등 8명이다. 통합당 의원실 보좌진 152명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일자리 실종'에 낙선하거나 불출마한 의원이 직접 '일자리 중개업자'로 발벗고 나서는 등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8‧9급 비서 자리 빼고는 보좌진 채용을 끝낸 통합당 초선의원은 "구직난으로 낙선, 불출마한 의원들을 중심으로 보좌진 추천이 많이 들어왔다"며 "고심 끝에 채용했지만 부족한 자리로 인해 뽑지 못한 사람이 많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특히 비례대표로 당선된 미래한국당 당선인들에게 통합당 의원들의 '러브콜'이 쏟아진다. 선거 캠프 관계자가 없어 보좌진 자리가 대부분 비어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한 미래한국당 초선 당선인은 "선거가 끝난 후 통합당 의원님들로부터 보좌관 추천 전화가 많이 왔다"며 "'우리 보좌관 일 잘 한다'는 전화를 3통 넘게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미래한국당 당선인들은 대부분 특정 직능 대표의 성격을 띠고 있어 보좌진 자리가 넉넉치 않다. 한 미래한국당 초선 당선인은 "예전부터 같은 분야에서 호흡했던 사람들을 보좌진으로 대거 채용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상대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 이적을 결심하는 보좌진들도 생긴다. 최근 4급 보좌관 1명을 뽑는 민주당 의원실 채용에는 통합당 보좌진 10명 정도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민주당이 타당 출신 보좌진에 '철벽'을 치고 있어 이마저도 어렵다. 지난달 24일 민주당은 윤호중 사무총장 명의로 '21대 총선 당선자 보좌진 구성 안내' 공문을 각 의원실에 보냈다. '타당 출신 보좌진 임용 시 정밀 검증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민주당은 공문에 '타당 출신 보좌진의 경우는 업무능력 외에 정체성, 해당행위 전력을 철저히 정밀 검증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특히 '통합당 보좌진은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국회에서 우리 당 보좌진과 물리적 충돌이 있었음을 양지하라'고 강조했다.
다른 의원실로 이적에 성공한 한 통합당 4급 보좌관은 아직 구직 중인 동료 보좌관을 언급하며 "4급 보좌관이 5급 비서관으로 원서를 넣는 것은 그나마 낫다"며 "6급, 7급 비서까지도 각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官(관)' 달기(5급 비서관 임용)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보좌진 사이에서 구직난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직을 포기하는 보좌진도 나온다. 한 통합당 8급 비서는 "아예 보좌진 생활을 그만두는 분들이 많다. 특히 6·7·8·9급 비서들 3명 중 1명 정도는 국회를 떠나는 듯 하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대책위원장, 더불어시민당 우희종, 최배근 공동대표 등이 17일 오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참배 후 이동하고 있다. 2020.04.17./사진=이기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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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더불어민주당 보좌진 자리 널렸다고? 현실은…"
"더불어민주당 보좌진은 자리 걱정 없겠다고요? 국회 현실 모르는 소리죠."
177석의 '거여'(巨與)가 된 더불어민주당의 보좌진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둔 이들은 당선인에게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는 등 '구직활동'에 한창이다. 미래통합당보단 상황이 낫지만 민주당에서도 '무한경쟁'이 벌어진다.
독자적인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총 8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4급 보좌관(2명), 5급 비서관(2명), 6·7·8·9급 비서(각 1명) 등이다. 이에 일각에선 민주당 의석수가 50석 가까이 늘면서 보좌진 자리도 400여개 생겼다고 추산하지만 현실은 그다지 녹록지 않다.
늘어난 자리 만큼 당선인의 선거 캠프에서 뛴 '개국공신'이 그대로 국회에 입석하기 때문이다. 선거운동 내내 무급으로 고생을 함께한 '식구'를 내치기 어렵다. 지역구 입소문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보좌진 8명 중 7명을 선거 캠프에서 채우고 나머지 1명만 국회 경험이 있는 보좌진을 채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 통상 7급 비서는 수행직, 8·9급 비서는 행정직이다. 이를 감안하면 정책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던 보좌진이 갈 자리가 상당 부분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관'(官)을 단 4급 보좌관과 5급 비서관의 사정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모시기 경쟁'은 과거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푸념이 나온다.
한 중진 의원실 소속 비서관은 "최근 당선인과 진행한 면접에서 직급을 낮춰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며 "황당했지만 당장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고민"이라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실 소속 보좌관도 "통상 보좌관·비서관은 상임위원회 경력을 살려서 지원하는데 요즘엔 상임위원회를 가리지 않고 뽑아주면 뭐든지 하겠다는 이들이 많다"며 "그만큼 자리가 많지 않고 경쟁이 치열하다"고 설명했다.
국회 입성의 꿈을 키워온 수많은 국회 인턴도 '백수'가 될 위기에 처했다. 2017년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인턴 기간이 2년 미만으로 제한되면서 인턴을 더할 수 없고, 새로운 일자리도 찾지 못한 이들이다.
이들은 의원실에서 입법보조원 등으로 근무하며 선거운동을 도왔지만 여전히 '구직난'에 빠진 상태다. 8·9급 비서 자리를 노리지만 그마저도 차지하기 어렵다.
한편 보좌진 '이적시장'은 국정감사 이후 본격적으로 열릴 전망이다. 피감기관을 상대하며 정책을 파는 고난이도 업무 속 국회 경험이 적은 보좌진 중에서 이탈자가 생기고, 상임위원회 경력을 가진 보좌진에 대한 영입 경쟁이 커지기 때문이다.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37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2020년도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이 재적 290인, 재석 206인, 찬성 185인, 반대 6인, 기권 15인으로 통과하고 있다. 2020.4.30/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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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 김상준 , 강주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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