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원전감사, 왜 부실 판정받고 세차례 보류됐나]
文정부의 탈원전 언급하며 자료 안줘… 감사원이 되레 끌려다녀
감사원 사무총장이 靑비서관 출신… 감사관들 부담 느꼈을수도
崔감사원장,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적발한 '강골'로 담당 교체
최재형 감사원장이 작년 10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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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감사원은 감사 초기 한수원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월성 원전 1호 폐쇄 결정 과정과 관련된 핵심 자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를 담당한 공공기관감사국이 원전 폐쇄 결정과 관련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피감 기관 측에서 일부 자료에 대해 "없다"거나 "줄 수 없다"며 버텼다는 것이다. 감사 자료 수집 단계부터 차질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최 원장은 지난 2월 기자 간담회에서 '원전 감사'의 법정 기한을 지킬 수 없게 된 이유를 설명하면서 "피감 기관의 자료 제출이 충분치 않았다"고 했다.
결국 감사원은 감사 착수 2개월이 지나서야 한수원 사무실 내 컴퓨터 자료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삭제된 자료를 포렌식을 통해 복구했다고 한다. 자료 확보가 늦어지면서 관련 직원에 대한 조사는 지난 2~3월에야 마무리됐다. 이미 1차(3개월)·2차(2개월) 감사 기한을 훌쩍 넘긴 뒤였다. 한수원과 산업부 일부 직원들은 감사원 조사 과정에서 은근슬쩍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언급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보통 피감 기관 직원들은 감사원 감사에 위축되기 마련인데 정부 정책을 명분 삼으니 감사관들이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최 원장은 감사가 지지부진하자 직접 감사 상황을 챙기는 등 동분서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국회가 청구한 감사에 대해 법정 기한을 두 달이나 넘긴 터라 최 원장은 어떻게든 빨리 결과를 내놓으려 했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끝에 공공기관감사국의 원전 감사 결과는 지난달 총선 전인 9일과 10일, 13일 세 차례 감사위원회 심의에 올랐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심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국가 최고 감사 기관이다. 그런 감사원 감사가 부실 평가를 받았다면, 역량 부족보다는 소극적 태도 등 다른 외부 요인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온다. 최 원장이 지난달 20일 간부 회의에서 "감사관 한 사람 한 사람이 야성을 가져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런 점을 지적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와 관련, 감사원 안팎에서는 감사원 이인자인 김종호 사무총장이 현 정권 첫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 출신이란 점도 주목받고 있다. 김 총장은 감사원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있다가 현 정권 출범 직후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영전했다. 이후 그는 1년 3개월 만에 감사원 각종 감사와 인사 등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현 김조원 청와대 민정수석도 감사원 사무총장 출신이다. '원전 감사'를 맡은 감사관들에게 아무래도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최 원장은 지난달 휴가를 다녀온 후 일부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원전 감사 기한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부담을 토로하며 "사임할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최 원장이 지난달 말 '원전 감사' 담당을 원칙주의자로 평가받는 유병호 심의실장으로 교체한 것은 외풍에 휘말리지 않고 감사를 마무리하기 위한 승부수란 해석이 많다. 유 국장은 작년 지방행정감사 1국장으로 있을 때 서울교통공사 채용 비리 감사를 담당, 당시 김태호 공사 사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도 주의 처분을 했다.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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