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복 김선생의 집밥일기]
아들 둘과 같이 만들었어요
제철 열무로 만드는 음식2-'열무 살시차 오레키에테'
아들 둘과 같이 만들었어요
제철 열무로 만드는 음식2-'열무 살시차 오레키에테'
이탈리아에서는 열무(무청)으로 만든 소스에 작은 귀처럼 오목하게 생긴 '오레키에테' 파스타를 즐겨 먹는다. |
어머니에게 열무 한 단을 받아 집에 가져갔다. 열무 볶음을 해보려다 ‘반은 외할머니식으로 볶고 반은 파스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뒷굽’에 해당하는 남부 지역이 풀리아(Puglia)다. 이 지역에는 열무로 만드는 파스타가 있다. 이탈리아에는 수백 종류의 파스타가 있다. 이중 오레키에테(orecchiette)는 ‘작은 귀’라는 뜻으로, 동그랗고 오목한 모양이 꼭 고양이나 강아지의 귀 같다.
풀리아 사람들은 이 오레키에테 파스타를 열무와 함께 먹는다. 정확하게는 무청이다. 열무가 무의 일종인데다, 잎이 일반 무의 잎보다 연하고 맛있으니 이걸로 대신하면 훨씬 좋을 듯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열무와 함께 살시차(salsiccia)와 함께 볶아 소스를 만든다. 살시차는 생(生) 소시지. 흔히 먹는 소시지와 똑같이 만들되, 굽거나 삶거나 훈제하는 등 익히지 않은 상태로 판매한다.
국내에서는 살시차 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갈아달라고 해서 살시차 속과 비슷하게 양념했다. 어차피 이탈리아에서도 살시차 케이싱(껍질)을 갈라 속만 파스타 소스로 사용한다.
돼지고기는 앞다리살이나 뒷다리살을 쓰면 된다. 두 가지로 다 해봤는데, 개인적으론 앞다릿살이 더 맛있었다. 소금으로 약간 짜다싶게 간간하게 간 하고, 후추·펜넬(fennel)로 간 했다. 살시차에는 거의 항상 펜넬이 들어가는데, 입에 맞지 않으면 빼도 된다. 이렇게 간 하는 거 자체가 귀찮으면 그냥 소금만 넣어도 된다. 만들어 바로 쓰기보단 최소 몇 시간 숙성시키면 훨씬 더 맛있다.
잘게 썬 열무잎을 준비한 돼지고기와 함께 올리브오일과 마늘, 양파에 볶았다. 여기에 소금물에 삶은 오레키에테를 버무렸다. 오레키에테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열무로 만든 소스가 마치 이어폰을 귀에 꽂은 듯 쏙 채워졌다.
'오레키에테(orecchiette)'는 '작은 귀'라는 뜻이다. 고양이 귀처럼 생기긴 했다. 양념이 오목한 부분에 쏙 박혀서 맛있다. |
파스타를 맛본 아내는 “결혼하고 만들어준 파스타 중 최고”라고 극찬했다. 열무 파스타는 우리집 단골 메뉴가 될 것 같다. 두 아들은 아직 채소를 싫어해 열무를 빼고 다진 고기만으로 만든 파스타를 주었다. 하지만 열무가 들어간 파스타 그리고 외할머니의 열무 볶음도 먹을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나중에 열무를 보면 어떤 음식이 떠오를까. 할머니의 열무 볶음일까, 아니면 아빠의 열무 파스타일까. 무엇이 됐건 그 음식을 먹으며 가족을 떠올리고 추억한다면 행복하겠다. 아이들과 함께 열무 파스타를 만들어봤다. 동영상 참조.
열무 파스타와 아직 채소를 먹지 않는 아들들을 위해 열무는 빼고 다진 고기만으로 만든 파스타, 아내가 만든 샐러드로 점심 한 끼 맛있게 먹었다. 이 날은 오레키에테가 없어서 콘킬리에(conchiglie) 파스타로 만들었다. 콘킬리에는 '조개'라는 뜻이다. |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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