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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봤다]'인생겜' 파이널판타지7과 '리메이크'란 이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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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봤다]'인생겜' 파이널판타지7과 '리메이크'란 이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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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영 기자]

#23년을 기다려 온 팬심

#아름답게 되살아난 추억

#'보기' 보단 '재미'가 있었으면

1997년, 중학생이던 당시 친구네 집에서 처음 본 '파이널판타지7'은 제목 그대로 '환상적' 이었다. 소환수 '리바이어던'이 적들을 향해 쓰나미를 날리는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게임이 있다니! 아직도 '인생겜'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 게임이다. 그 게임이 23년 만에 돌아왔다.

JRPG의 신화, 파이널판타지7

비록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숲'이 코로나19와 함께 너무 거대한 반향을 일으키는 바람에 살짝 묻힌 감이 있지만, 파이널판타지7은 게임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인 만큼 이번 리메이크작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스퀘어에닉스로 한 회사가 된 스퀘어와 에닉스는 각각 파이널판타지와 드래곤퀘스트라는 일본식 롤플레잉게임(JRPG)의 '양대산맥'을 이끄는 제작사였다. 용사가 마왕을 물리치는 이야기를 토대로 한 전통적인 JRPG의 모습을 지켜가는 드래곤퀘스트와 달리 파이널판타지는 점점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해왔다.


그 중에서도 7편은 유럽식 중세 판타지를 벗어나 스팀펑크 풍의 세기말적 세계관을 선보이며 파이널판타지를 세계적인 명작 게임 반열에 오르게 만든 시리즈의 '백미'격인 게임이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CG 동영상과 화려한 3D 전투신은 이전까지 2D 도트 그래픽에선 느낄 수 없었던 박력을 선사했고, 예측하기 어려운 복선으로 가득찬 스토리 역시 이후 나온 수많은 콘텐츠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줬다.

파이널판타지7은 전세계 1200만장의 판매고와 각종 게임 어워드 수상을 휩쓸며 흥행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콘솔 시장의 '신인'에 불과했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을 닌텐도와 세가를 밀어내고 왕좌에 오르게 만든 '1등 공신'으로 역사에 남아있다.

팬들의 염원이 이뤄졌다

파이널판타지7을 처음 시작했던 중학생 시절, 100시간 가까이를 이 게임이 쏟아 넣었던 기억이 난다. 전 캐릭터를 '만렙'으로 만들고 모든 숨겨진 요소까지 다 찾아내고 나서야 손을 뗄 수 있는 게임이었다.

이런 기억을 가진 게이머는 나뿐만이 아니었기에 그동안 콘솔 게임기가 세대를 넘어갈 때마다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는 팬들 사이에 가장 큰 '떡밥'이었다. 다른 후속 시리즈들이 리메이크와 리마스터를 밥먹듯이 할 때도 7만큼은 원작을 크게 벗어나 다시 개발된 적이 없었다.


2015년, 드디어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가 발표될 당시 행사장에선 거대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스퀘어에닉스 주가도 급반등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팬들은 파이널판타지를 잊지 않고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리메이크로 돌아온 파이널판타지7은 마치 동화가 현실이 된 수준으로 '환골탈태' 했다. 원작이 나왔을 당시에는 게임 그래픽의 새 시대를 연 게임으로 기억에 남아 있지만, 지금 다시 보니 솔직히 모바일게임 수준도 안된다는 게 더 충격이긴 했다.

세밀해진 이야기, 잘려 나온 게임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는 원작과의 차별점으로 당시에는 여러 기술적 한계로 그리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보다 세밀하게 재현하는 방식을 택했다. 세월이 흐른 만큼 상전벽해 수준으로 화려해진 그래픽은 물론이고, 캐릭터 묘사나 스토리의 디테일도 더 꽉꽉 채워 넣었다.

게임 시작부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듯 화려한 연출들이 펼쳐진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원작에선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조차 잘 안되던 엑스트라 캐릭터였던 '제시'가 거의 히로인급으로 생생한 캐릭터를 부여 받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클로즈업 된 모습으로 많은 대화를 주고 받으니 여주인공이 부럽지 않다.


다만 이처럼 게임의 묘사와 연출이 자세해지다 보니 결국 게임을 하나로 내놓지 못하고 쪼개서 내놓기로 결정한 점은 모두에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원작은 무려 CD 3장 분량이라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분량의 대작이었기 때문에 이번 리메이크는 원작의 초중반에 해당하는 '미드갈'에서의 모험까지만 담겼다.

어차피 23년을 기다렸는데, 게임이 조금 조각조각 나온다고 크게 조급해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다만 이 위대한 게임의 리메이크가 성공적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볼 점들이 있다.

더 아름답다, 그러나 더 즐겁지는 않다

파이널판타지는 매 시리즈마다 시각적 만족도가 큰 게임인 만큼 이번 리메이크의 캐릭터 모델링은 팬심을 조금 더해 지금까지 나온 게임 중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다.

일본식 '미소녀' 느낌이 나지만 모델링이 실제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덕에 살짝 연애 시뮬레이션을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다만 남자 주인공 마저 너무 예쁘게 생긴게 어색하긴 하지만, 확실히 파이널판타지다운 인상적인 비주얼이다. 배경이나 NPC 그래픽 수준이 떨어지는 건 주인공들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함이라 해두자.


하지만 비주얼이 너무 현실적이 되어버리자 지금보다 한참 떨어지는 그래픽이었던 원작의 재미가 오히려 희석되는 느낌도 든다. 시각적인 한계 내에서 게이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던 부분들이 예쁘고 잘생긴 캐릭터들의 연기로 채워지니 오히려 감동이 덜 느껴진다.

대표적인 게 주인공 '클라우드'의 여장 이벤트인데, 사실 원작에선 눈에 보이는 건 별 것 없었지만 상상력을 자극해 다양한 2차 저작물을 쏟아냈다. 그러나 정말 예뻐진 클라우드가 게임에서 나와버리면 이런 재미가 있겠나.

추억과 현실 사이, 완벽히 좁히지 못한 간극이 아쉽다

일본 게임은 전통적으로 제한된 기술적 한계 내에서 다양한 아이디어와 특유의 아기자기함으로 전개를 풀어내는 데 더 큰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레트로 게이머가 되어버린 입장에서 수많은 '도트 장인'들이 존재하던 2D 시절에 그들은 더 빛이 났다.

이런 장점을 아직도 잘 활용하는 회사가 닌텐도다. 닌텐도의 콘솔은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 같은 경쟁사 제품보다 그래픽 성능 등이 확연히 떨어진다. 하지만 닌텐도의 게임들은 이 제한된 성능 안에서 '재미'라는 게임의 본질에 집중한다. 이번 동물의 숲 열풍 역시 코로나19 영향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이런 본질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의숲은 '리얼'과 거리가 멀지만 어떤 게임보다도 더 생생하게 코로나 이후의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파이널판타지7 리메이크는 팬심을 빼고 보면 원작을 해보지 못한 지금 젊은 세대들도 진심으로 다시 한 번 '명작'이라 불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래픽도, 스토리도, 전투도 충분히 '요즘스러워' 졌지만, 23년 전 중학생이 받은 충격과 감동에는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오히려 원작을 화려하게 변신시키느라 현 시대에 맞는 게임의 즐거움, 즉 '본질'에 대해선 고민이 부족한 느낌이다. 이 게임의 메타크리틱 점수 '88점'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결코 낮지는 않지만 원작의 명성을 생각했을 때 아쉬움이 남는 점수이기도 하다.

1997년과 2010년, 이 간극을 넘어 과거 팬들의 기억 속에 남은 추억과 현재 게이머들의 눈높이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일이 결코 쉽진 않을 것이다. 이것이 '리메이크'란 이름이 짊어진 무게감이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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