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장만 9년3개월... 김정렴 별세
그가 최장수 비서실장이라는 영예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철저히 낮췄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정치회고록 ‘아, 박정희’에서 “청와대 비서실을 구성하는 수석비서관·비서관·행정관은 대통령의 그림자처럼 행동해야 하고, 대통령이란 큰 나무의 그늘에서 존재가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히 일해야 한다”면서 “그 그늘을 벗어나 양지로 나와 존재를 과시하면 안 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지난 25일 별세한 김정렴 박정희 대통령기념사업회장/조선DB |
그가 비서실장 취임 당시 직원들에게 당부했던 말을 보더라도 그의 이런 철학이 드러난다. 그는 “국민이 청와대를 쳐다볼 때 각하 내외만 보여야지 비서관들이 보여선 안 된다”면서 “나를 포함해 우리 비서관들은 뒤에서 소리없이 각하 내외를 보필하고 각하와 행정부 간의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또 다른 저서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에서도 자신을 낮추는 그의 성품을 짐작게 하는 일화가 등장한다. 비서실장직을 권하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그는 “경제나 좀 알지 정치는 모른다”면서 비서실장만은 적임이 아니라고 극구 사양했다고 한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경제야말로 국정의 기본이고 경제가 잘돼야 정치·국방도 튼튼하게 할 수 있다”면서 그를 설득했다고 했다.
김 회장은 청와대 비서실이 외부에 권력기관으로 비치는 것도 극도로 경계했다. 그는 “비서실 사람들은 기자회견이나 강연 같은 것에 임해선 안 된다”면서 “명함 만드는 일도, 청와대 마크가 새겨진 봉투를 바깥에 갖고 나가는 것도 삼가야 한다”고 했다. 그 이유로 국민은 청와대를 권력기관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비서관 등이 음식점이나 술집 또는 교제석상에서 청와대라는 낱말이 새겨진 명함을 돌리면 명함을 받은 사람이 이를 엉뚱한 곳에 이용할 우려가 크다고 봤다. 또 ‘청와대 용’임을 표시한 용지나 봉투가 많이 유통되면 될수록 불미스런 일도 늘고 적절한 단속도 어려워진다고 생각했다.
[안중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