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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선물만기 쇼크’ 국제유가 사상 첫 마이너스… 웃돈 주며 원유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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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I 배럴당 -37.63달러… 저장시설 포화로 가격 왜곡

키움證 HTS 마이너스 인식 못해 먹통, 투자자 손실 원성
한국일보

미국 서부텍사스유(WTI) 원유 집결지인 미국 오클라호마주 쿠싱의 한 원유 저장고.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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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요동치던 국제유가가 새 역사를 썼다. 대표 유종인 미국 서부텍사스유(WTI)가 배럴당 -37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가격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원유 1배럴을 사면서 37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는 뜻인데, 엄밀히 말하면 원유의 가치가 사라진 게 아니라 선물 거래가 종료되는 시점에 실물 저장 비용이 치솟은 결과다.

20일 뉴욕선물거래소에서 WTI 5월 인도분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56달러 떨어진 -37.63달러로 장을 마쳤다. 이는 원유 1개월 선물이 거래되기 시작한 1982년 이래 역대 최저가이자, 첫 마이너스 가격이다.

이런 상황은 원유 선물 만기일(21일)을 하루 앞두고 벌어졌다. 선물이란 구매자가 만기에 정해진 가격으로 해당 상품을 인도받는 계약이다. 평시대로라면 실제 수요자인 정유사나 항공사 등이 만기가 임박한 원유 선물을 매입해 일정 수준의 가격이 유지된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이런 수요가 사실상 사라졌다. 시장에는 투자 목적으로 선물 계약을 구매했다가 청산을 해야 하는 투자자만 남았다는 얘기다.

만약 금융시장 투자자가 만기일까지 선물을 청산하지 못하면 실제로 미국 오클라호마주 쿠싱의 저장고로 모여드는 서부텍사스유 실물을 받아야 한다. 원유 실물이 필요없는 투자자로서는 선물 계약을 내던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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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김문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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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쿠싱의 저장고조차 다음달 중 포화에 이를거란 관측이 나오면서 투매세에 불을 질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쿠싱의 원유 비축량은 3월 기준 5,500만배럴로 2월 말 대비 약 1,800만배럴이 늘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쿠싱의 저장 능력을 최대 7,600만배럴로 추산한다. 저장고가 없으면 저장 비용이 치솟기 때문에 원유는 손에 쥘수록 손해인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의 로저 다이완 석유담당 부회장은 “선물이 마이너스가 됐다는 것은 쿠싱 저장고가 이미 완전히 예약됐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내외 일반 투자자들이 주로 원유 반등을 예상하고 매입하는 원유선물 상장지수펀드(ETF)나 상장지수증권(ETN)은 이번 유가 급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미 이들은 6월 만기 선물로 보유계약 교체를 끝냈기 때문이다.

유가 불안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골드만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미국 투자은행(IB)들은 “여전한 원유 과잉 공급으로 6월 만기 상품에도 마이너스 유가 사태가 나타날 여지가 있다”고 예상했다.

한편 국제원유 선물 가격이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일부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서 관련 거래가 일시 중단되는 전산 장애가 발생했다. HTS가 마이너스 값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먹통’이 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새벽 4시께 키움증권 HTS에서 WTI 연계 상장지수증권(ETN)의 매매 거래가 중단되고 강제 반대매매 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제때 청산 주문을 넣지 못한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봐 키움증권을 상대로 손해배상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장애 관련 내용 및 투자자 피해 사항을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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