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지원금 지급 기준을 확정하기 위해 모인 지난 19일 고위 당정청 회의 이후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가 "5월 중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했지만, 홍 부총리는 20일 기재부 간부회의에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70% 기준이 국회에서 유지될 수 있도록 최대한 설명, 설득 노력을 기울여라"고 지시했다.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을 놓고 집권 여당과 기재부가 정면충돌하는 모양새다.
정부 일각에서는 경제정책을 주무르고 있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에 부정적인 게 홍 부총리의 반대 입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재난지원금을 중위 소득(소득 하위 50%) 이하에만 지급하자는 기재부 구상에 손을 들어줬던 김 실장은 재난지원금을 전 가구에 지급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와 김상조 정책실장이 13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경제·금융 상황 특별 점검회의' 전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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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不동의’ 벽에 막힌 전국민 재난지원금
현재 국회에 제출된 7조6000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안은 소득 하위 70% 이하 1478만가구에 40만~1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여당의 주장대로 소득 기준 없이 전 가구에 지급하기 위해서는 추경 예산안 규모가 3조~4조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헌법 57조에 따르면,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국회에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줬지만 반대로 국회의 무분별한 예산 증액을 막기 위해 정부 동의를 받도록 한 것이다. 여당이 예산심의에서 추경안 증액을 추진하더라도 기재부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예산을 늘릴 수 없는 구조다. 여당이 전 가구에 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정부 원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시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홍남기 부총리가 전국민 지원금을 반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코로나 위기 대응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추경 재원 7조6000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 예산 사업, 각종 기금을 조정했다. 재난지원금으로 인한 추가 적자 국채발행이 없도록 한 것이다. 홍 부총리는 "앞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 국채발행 여력 등을 조금이라도 더 축적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실물경제 위축, 기업 유동성 악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3차 추경 등이 불가피한데, 이를 위해서는 적자국채 발행을 될 수 있으면 자제해야 한다고 기재부는 판단하고 있다.
◇‘경제학자’ 김상조 靑 정책실장, 전국민 지원금에 부정적
정부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홍남기 부총리의 완강한 반대 입장이 전 가구 지급을 김상조 정책실장이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에서 비롯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며 코로나 위기 대응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상조 실장이 재난지원금 70% 지급 기준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여당측 요구를 거부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김상조 실장은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하기 위해 소집된 3월말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도 중위소득 이하 가구에만 지급하자는 기재부 입장에 동조한 바 있다.
재난지원금 70% 기준을 고수하려고 하는 기재부 입장에서 김상조 실장의 지지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지난달 중순 1차 추경 예산 규모를 11조7000억원에서 증액해야 한다는 여권의 공세를 기재부가 막아낼 수 있었던 것도 추경 증액에 대한 김상조 실장의 부정적 인식이 큰 힘을 발휘했다. 당시 이해찬 대표는 추경 증액에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홍남기 부총리 해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경제학자’로서 정체성을 강조하는 김상조 실장의 성향을 주목하고 있다. 여당의 전국민 재난지원금 약속이 총선 선거을 앞두고 정략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인데, 경제정책이 정치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김 실장이 갖고 있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전국민 재난지원금보다는 코로나 피해업종, 실직자 등에 대규모 정부 지원을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경제학계의 분위기도 김 실장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최근 김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회의에서 나오는 각종 위기대응 대책을 주도하며 정부 내부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민주당이 김상조 실장을 설득하지 못하면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반대하는 기재부 입장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야당에 화살 돌리는 민주당
여당의 긴급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 주장에 대한 최근 청와대의 기류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20일 오후 수석·보좌관회의 시작 전 기자들과 만나 "70%를 토대로 국회에 (추가경정예산안을) 보냈고 정부 입장은 지금 수정안을 낼 수는 없는 것"이라며 "이제 국회에서 논의를 해봐야 하는 사안이고, 국회의 시간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수석은 지난 19일 고위 당정청 협의에서도 별도 수정안 없이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논의하자는 원칙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입장은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있다면 추경안 수정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인데,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소득 상위 30%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적자국채 발행에 반대하고 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적자국채를 3조원 발행하자는 여당 측 주장과 합의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여당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안에 대한 화살을 미래통합당으로 돌리고 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21일 원내대표단-상임위간사단 연석회의에서 "야당이 재난지원금을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겠다는 총선 약속을 지켜주길 바란다"면서 "모든 것은 통합당이 선거 때 한 약속을 지키느냐 마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세종=정원석 기자(lllp@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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