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이 모는 택시
대학생 3명이 스타트업으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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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서울 신촌에서 공덕동까지 운전한 청각장애인 고요한택시 기사 신연옥씨. 그는 “이전 직장보다 수입이 적어도 마음껏 다닐 수 있는 택시기사가 더 좋다”고 말했다. |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 주황색 택시가 등장했다. 택시를 세워 오른쪽 뒷자리에 탔다. 그러자 여성 택시 운전기사가 뒤로 돌아 좌석 앞에 붙어 있는 태블릿PC 모니터를 가리켰다. 모니터에 ‘이 택시는 청각장애인이 운전한다’는 안내가 떴다. 이어서 문구가 하나 나왔다. ‘키보드’ ‘음성’ ‘손(단말기에 손으로 쓰는 방식)’ 등 세 방식 가운데 하나를 눌러서 목적지를 기사에게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음성’ 버튼을 누르자, 모니터 하단의 마이크 모양 표지가 움직였다. 안내에 따라 ‘공덕역 2번 출구’라고 말하고, ‘보내기’라고 적힌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앞좌석 중간에 있는 단말기에 ‘목적지 : 공덕역 2번 출구’라고 문구가 떴다. 내비게이션이 자동으로 작동했고, 기사는 운전을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택시와 별 차이가 없었다. 단 하나. 청각장애인 기사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기사 신연옥(59)씨와는 공덕역에 도착하고 나서, 노트북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신씨는 네 살 때 청각장애를 앓았다고 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장애인복지관에서 다른 장애인의 거동을 돕는 도우미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당시 한 달 수입은 약 200만원. 그러다 청각장애인이 택시운전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택시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했다. 두 번 만에 합격한 뒤, '고요한택시' 소속 청각장애인 택시 기사가 됐다. 이날 신씨는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승객 20여 명을 태웠고, 18만원가량 매출을 올렸다. 신씨는 "코로나 때문에 사납금 빼고 한 달 수입이 150만원으로 줄었지만, 택시 운전을 하면 전국 어디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이 더 좋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기사가 운전하는 '고요한택시'는 지난 2018년 6월에 처음 운행을 시작했다. 태블릿PC 단말기를 이용해 승객이 청각장애인 운전자에게 목적지를 알린다. 기사가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택시보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에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기사의 수입은 일반 택시 기사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는 없다고 한다. 법인 택시 회사 신신기업은 청각장애인을 8명 고용해 고요한택시와 협업 중이다. 신신기업 관계자는 "청각장애인 기사도 일반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하루 약 15만원인 사납금을 내야 한다"며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만 해도 보통 하루 10~12시간 일하고 한 달에 200만원 가까이 벌었다"고 말했다.
다만 기사가 소리를 즉각 듣지 못하다 보니 문제도 발생한다. 신신기업 관계자는 "목적지를 바꿔달라고 했는데 기사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엉뚱한 곳으로 왔다며 환불을 요구해 택시비를 돌려주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또 기사가 경적 소리를 듣지 못하다 보니 가끔 차로를 바꾸다가 접촉사고가 나기도 한다.
기사들은 술에 취한 승객이 탈 때가 특히 곤혹스럽다고 했다. 신연옥씨는 "일부 승객은 타자마자 내리기도 하고, 술에 취한 승객이 항의를 세게 하면 파출소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승객이 단말기를 통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네요'라며 칭찬하기도 해 힘이 난다"고 했다.
청각장애인이 택시운전면허를 따는 절차는 일반인과 차이가 없다. 경찰청과 교통안전공단 등에 따르면 청각장애인도 일반인과 같은 과정(2종 보통 기준)을 통해 운전면허를 딸 수 있다. 택시운전면허는 2종 보통 이상 면허가 있다면, 일반인·청각장애인 차별 없이 운전적성 정밀검사와 택시면허시험을 치를 수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청각장애인 1382명이 운전면허시험에 응시했는데, 이 가운데 1054명이 합격했다.
[곽창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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