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이후 정국 전망
5월 30일 임기 시작한 뒤 원 구성 협상
6선 박병석 의원 차기 국회의장에 유력
총선 패배 책임지고 황교안 대표 사퇴
김종인 위원장 추대받으면 당권에 관심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당내 경쟁 시작
8월 전당대회에 이낙연 출마 여부 관심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각 방송사가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 시청 후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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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4·15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두 가지 원인은 코로나 19와 미래통합당의 자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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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출범 이틀 뒤인 2월 19일 황교안 대표가 ‘우한 폐렴 긴급 기자회견’을 연 일이 있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우한 폐렴 사태가 우려했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사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그에 걸맞은 총력 대응에 나서야 한다. 사태를 과소평가하는 정부의 모습이 오히려 국민의 불신과 불안을 키우고 있다”고 문재인 대통령을 혹독하게 비판했습니다.
미래통합당은 정부의 마스크 대책을 공격하며 “국민들 줄 세워 ‘북한식 배급제’까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색깔론까지 들고 나왔습니다. 2월 넷째 주 한국갤럽의 문재인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잘하고 있다’ 42%, ‘잘못하고 있다’ 51%였습니다. 미래통합당 사람들 입에서 “이번 선거 끝났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3월에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코로나 19가 전 세계로 퍼졌고 유럽과 미국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무더기로 쏟아졌습니다. 정부의 초기 방역 정책에 비판적이던 여론이 정반대로 돌아섰습니다. 한국갤럽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뒤집혔고, 4월 둘째 주에는 ‘잘하고 있다’ 57%, ‘잘못하고 있다’ 35%까지 벌어졌습니다.
그사이에 보수 야당 악재가 무더기로 쏟아졌습니다. 미래한국당 공천 파동이 터졌고, 미래통합당 김대호 후보와 차명진 후보의 막말 파문이 일었습니다. 여권에서도 악재가 터졌지만, 보수 야당 악재가 훨씬 더 컸습니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가 15일 국회도서관 강당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개표방송을 시청하던 중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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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당일 아침 투표장을 찾은 수도권의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은 “민주당이 잘한 것은 없지만, 보수 야당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반사이익을 얻는 분위기”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여당 총선 승리의 원인을 구태여 짚는 이유는 선거 이후 정국을 예측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이안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자신들의 실력으로 선거에서 이겼다고 착각하고 오만한 자세로 야당을 압박하면 총선 이후 정국은 꽁꽁 얼어붙고 민심은 싸늘하게 돌아설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지금처럼 낮은 자세로 코로나 19 대책 수립에 몰두하고 야당의 협조를 구하면 정국을 그런대로 풀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공동체와 시스템 붕괴를 우리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여야의 총선 승패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어쩌면 4·15 총선 결과와 총선 이후 정국은 처음부터 별 관련이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범여권 과반땐 국정운영 탄력···보수야권 과반땐 정권교체 발판”
총선 전 대부분의 언론이 총선 이후 정국을 이렇게 전망했습니다. 총선에 대한 언론의 분석과 전망도 경로 의존성이라는 오류와 상투성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집권 여당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국회에서 날치기로 법을 통과시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식의 일방적 국정운영은 이제 불가능합니다.
특히 2012년 국회선진화법 이후 야당과 타협하지 못하면 여당 단독으로는 법안을 거의 통과시킬 수 없게 됐습니다. 180석 이상 다수 연합을 확보하면 신속처리대상(패스트 트랙)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지만, 그것도 거의 1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합니다.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둬도 그 자체로 당장 국정운영에 탄력이 붙지는 않는다는 얘깁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후반 국정을 제대로 끌어가려면 보수 야당의 전면적 협력을 구하거나, 아니면 지난해 ‘4+1’ 협의체처럼 의회 다수 연합세력을 구축해서 개혁 입법을 차례차례 밀고 나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총선 승리가 차기 대선의 발판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사실과 별로 부합하지 않습니다.
총선 결과와 대선 결과가 일치하는 선거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1992년 총선과 대선, 2012 총선과 대선,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이 그런 경우입니다. 총선과 대선 사이의 기간이 매우 짧은 경우에만 성립하는 주장입니다.
총선 흐름과 대선 결과가 반대로 나타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1985년 총선 신민당 돌풍과 1987년 대선 민정당 노태우 대통령 당선, 1996년 총선 신한국당 승리와 1997년 대선 김대중 대통령 당선, 2000년 총선 한나라당 승리와 2002년 대선 노무현 대통령 당선, 2004년 총선 열린우리당 승리와 2007년 대선 이명박 대통령 당선 등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2022년 대통령 선거까지는 2년 정도 시간이 남았습니다. 따라서 이번 총선 결과와 다음 대통령 선거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4·15 총선 결과가 당장 정국에 미칠 정치적 영향은 세 가지 정도를 짚을 수 있습니다.
첫째, 원 구성입니다.
지난해 선거법과 검찰개혁법 국회 처리 과정에서 국회의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 입증됐습니다. 여당 승리로 국회의장 자리는 더불어민주당이 무난히 차지하게 됐습니다. 2년 전 문희상 국회의장과의 당내 경선에서 패배했지만 이번에 6선 고지에 오른 박병석 의원이 차기 국회의장 자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것 같습니다.
원 구성 협상은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되는 5월 30일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국회의장 이외에 국회 부의장, 상임위원장 배분 협상을 해야 합니다. 국회의장과 부의장 선출은 무기명 투표로 하며 재적 과반수의 득표로 당선됩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회의장 선출은 1988년 13대 국회만 임기 첫날인 5월 30일에 이뤄졌을 뿐, 대부분 6월이나 7월에 이뤄졌습니다. 가장 늦은 것은 2008년 18대 국회의 7월 10일이었습니다.
진통이 극심했던 사례는 1998년 15대 후반기 원 구성이었습니다. 디제이피 공동정부로 집권한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국회의장을 여당이 맡아야 한다”며 자민련 소속 박준규 의원을 국회의장에 내정했습니다.
원내 1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반대했습니다. 8월 3일 본회의에서 3차 투표까지 간 끝에 박준규 의원이 오세응 의원을 149 대 139로 누르고 국회의장에 당선됐습니다. 21대에는 여당의 승리로 그런 장면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둘째, 미래통합당 당권입니다.
황교안 대표는 총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곧바로 대표에서 물러났습니다. 무주공산이 된 미래통합당 당권과 관련해 당장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선거 전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총선에서 기회를 주신다면 이 정당을 유능한 야당으로 개조하는 일도 거침없이 임하겠다. 품격 있고 실력 있는 정당으로 바꿔서 차기 정부를 책임질만하게 만들어 놓을 것을 약속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자들이 총선 이후의 역할에 대해 질문하자 “선거 끝남과 동시에 나는 원래의 나의 위치로 돌아갈 것이라는 걸 분명히 말한다”고 했습니다. 어느 쪽이 진심일까요?
당내 인사들의 대체적인 의견은 선거 이후 의원들이 추대해주면 대표를 맡아서 보수 야당 재건을 주도해 보려는 생각인 것 같다는 쪽입니다.
실제로 미래통합당 당권의 향배는 우리나라 보수 세력 재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선거 막판에 터진 차명진 후보 막말 파동은 우리나라 보수 세력이 극우 ‘태극기 부대’, ‘아스팔트 보수’와 결별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참담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 보수가 극우와 결별하지 못하면 2022년 대선에서도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 전 대표가 언제 어떤 절차를 밟아 미래통합당에 복당할 것인지, 대선주자로 재기할 수 있을 것인지도 관심입니다.
셋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입니다.
이번 총선으로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여권 차기 대선주자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습니다. 보수 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황교안 대표를 꺾고 당선된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장으로 활약하고, 상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 승리를 이끈 공이 더 크다고 봐야 합니다.
당장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출마할 것인지 관심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당헌·당규는 대선 후보가 1년 전부터 당직을 맡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헌·당규대로 하려면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일단 대표를 맡아서 당을 이끌며 대선주자로서 당내 입지를 굳혀야 한다는 의견도 꽤 있습니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이낙연 전 총리의 선택이 궁금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제각각 존재감을 보였던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들의 경쟁도 총선 이후 본격화할 전망입니다. 김부겸 김영춘 김두관 의원 등이 당내 대선 후보 경쟁에 뛰어들 것인지도 관심을 끌 것입니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끝났지만 2022년 대선 경쟁은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도래한 것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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