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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이슈 선거제 개혁

‘문죄인 끝장’ 현수막 버젓… 선관위 “선거법 위반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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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등 선거운동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선거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내용의 현수막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지만, 사실상 이를 제재하기가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엄격한 선거법 해석 기준 및 절차상의 문제 등으로 선거기간 내에 문제 현수막을 제재하거나 처벌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 곳곳에 ‘흑색선전 현수막’ 내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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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을 우리공화당 김동우 후보 현수막.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공식 선거 운동 첫날부터 현수막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 2일 제21대 총선에 출마한 몇몇 우리공화당 후보가 자신의 홍보 현수막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하하는 문구를 넣은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10일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에 따르면 제주시갑에 출마한 우리공화당 문대탄 후보는 ‘문대탄 찍으면 문죄인 끝장낸다’는 문구를 넣은 선거 현수막을 자신이 출마하는 지역구 거리 18곳에 게시했다. 진주시을 우리공화당 김동우 후보도 비슷한 내용으로 시내 곳곳에 ‘김동우 찍으면 문죄인 끝장낸다’는 선거 현수막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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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갑 우리공화당 문대탄 후보 현수막. 민주당 제주도당 제공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 제주도당은 “문 후보가 문 대통령을 비하하는 문구를 넣은 저질 현수막을 게시해 도민을 분노에 빠뜨리고 있다”며 제주선거관리위원회에 이의 제기서를 제출하고 현수막 철거를 요청했다고 알렸다.

그런가 하면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한 민중당 이대진 후보는 “찍지 말자 김도읍”, “n번방 국민 청원 무시한 김도읍을 찍지 맙시다”라는 내용의 피켓과 현수막을 걸어 논란이 됐다. 통합당 김도읍 후보는 “선거 방해 행위가 도를 넘었다”며 “악의적이고 조직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선거를 방해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이 후보는 현재의 선거운동 방식을 고수하겠다고 강조하겠다고 밝혔으며 부산 강서구 선관위는 이대진 후보 측에 선거운동 문구와 주장에 대해 소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 선거캠프는 허위사실을 담은 현수막을 철거하고 만약 이를 어길 시 1개당 100만원씩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과 가처분신청을 최근 법원에 제기한 상태다.

그런가 하면 충남 서산시 태안군의 민주당 조한기 후보 현수막 아래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음주운전 근절’ 캠페인 현수막이 걸려 논란이 됐다. 조 후보가 과거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일자 경찰에 의해 하루 만에 모든 현수막이 철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마크 등이 도용됐고 경찰서 명의로 하려면 경찰서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현재 경찰마크를 넣은 현수막을 게시하게 된 경위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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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시 태안군 더불어민주당 조한기 후보 현수막 아래에 음주운전 근절 캠페인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선관위 관계자도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 후보자의 선거용 현수막과 겹치게 게시해 후보자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켜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지 않았는지 개연성을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선관위 “후보에 내용 수정 ‘제안’만 가능”

문제는 본격적인 선거운동 기간이 약 2주 정도로 짧은 탓에 비방 현수막을 막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상대 후보가 철거 요청을 하더라도 선거법 위반 여부 등을 판단하고 후속조치를 취하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다 선관위 측이 부작용을 우려해 판단 기준을 무척 엄격히 적용하고 있어 철거 결정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직선거법 110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선거운동을 위하여 정당, 후보자, 후보자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와 관련하여 특정 지역·지역인 또는 성별을 공연히 비하·모욕해서는 안 된다. 앞서 문대탄 후보와 김동우 후보가 내건 현수막에서 문 대통령은 후보자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공직선거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실제 민주당에서 선관위에 문제를 제기한 후에도 문대탄 후보의 ‘문죄인’ 현수막은 아직도 제주시내에 버젓이 걸려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시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선거법상 문제가 되지 않아 철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선관위 관계자는 “만약 허위사실, 비방 내용이 들어간 경우 당한 후보 쪽에서 이의제기 신고를 한다. 바로 철거하라고 할 순 없고 문구 내용을 엄격히 따져 비방, 허위사실 적시인지 다 확인을 해봐야 한다”고 절차를 설명했다.

공보나 선거벽보는 사전심의를 받는 게 보통이지만 현수막은 후보가 원하는 경우에만 내용상 문제가 없는지 검토를 해준다고도 했다. 관계자는 “만약 현수막에 민감한 내용이 들어가면 ‘순화시키는 게 어떤가’라고 제안을 할 순 있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쓰고 싶다고 하면 강제로 수정하진 못한다”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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