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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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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의 심플라이프] 고통·시간을 견디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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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유럽이 아프다. 이탈리아가 아프다. 그토록 아름답던 도시, 베네치아 밀라노 로마가 썰렁하게 버려진 모습을 보노라면 나라도 달려가 구해주고 싶다. 코로나바이러스에 정답은 없다. 각 나라가 자신에 맞는 방식으로 대처하면 된다. 그 많은 호텔과 수도원을 두고 병상이 없다니. 내가 이탈리아 총리라면 이렇게 한다. 간호사 보조 단기 양성 코스를 만들어 1주간 교육한 뒤 검체 현장에 배치한다. 수도원을 임시 격리시설로 지정해 경미한 환자들은 신부와 수녀들이 간병하고 (기도만 한다고 하느님이 기뻐하지 않아요) 병원은 중증 환자만 받는다. 이탈리아 코로나가 진정되기를 빌며 좀 참견해봤다.

2월부터 강의와 서점 행사가 줄줄이 취소돼 답답하고 불안하다. 오는 7월에 호주의 멜버른대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학회에 대담자로 초대받았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가는 김에 시드니와 다른 도시를 돌며 낭독회도 하고 호주여행의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학회가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번 기회에 한국을 탈출하려 했는데 살맛이 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 1년이 아니라 6개월이라도 살아보는 건 나의 오랜 꿈이었다.

코로나 쓰나미가 오는 줄도 모르고 출간한 ‘돼지들에게’ 개정증보판은 지난 2월 초에 반짝 팔리다가 3월 들어 주춤하다.

3월 거래 현황을 집계하고 서점들에 계산서를 발행해야 하는데, 훌쩍 줄어든 매출을 확인하기가 겁나서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다. 1인 출판사를 경영하기 전에는 IMF니 금융위기니 언론에서 떠들어대도 그런가 보다, 위기가 실감 나지 않았는데 사업자가 되니 경제 뉴스도 경청하고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 발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긴급 재난생계비로 1인당 몇십만원을 지원한다고 하는데, 나는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수습하려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고…. 차라리 세금을 감면하거나 건강보험료를 경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 바란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자영업자, 소상공인,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비정규직 노동자, 일정한 수입이 없는 예술가 등 저소득층이다. 종합소득세를 내야 하는 5월이 바이러스보다 더 두렵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인 나는 그동안 수입의 10%가량을 보험료로 내왔다. 소득이 줄어든 요즘은 10만원이 넘는 건강보험료도 부담스럽다.

이런 걱정, 저런 두려움을 잊으려 노래를 듣는다. 이탈리아인들이 발코니에서 노래하며 악기와 냄비를 두드리는 모습에 나는 반했다. ‘얘네들은 이렇게 고통을 견디는구나.’ 고통과 시간을 잊게 하는 음악의 힘, 예술의 힘을 새삼 확인했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발코니 공연’은 그 어떤 비싼 연주회에서도 느끼지 못한 감동을 내게 주었다. 새로운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그린 막대그래프를 보고 무거워진 마음을 음악으로 달랜다.

독일인들이 ‘힘내라’며 이탈리아 노래를 부르는 동영상. 악보를 들고 서툴지만 이탈리아어로 “Bella Ciao(안녕 내 사랑!)”을 따라 하는 아이들, 리듬에 맞춰 쓰레기통을 두드리는 아저씨가 재밌다. 음악을 멀리하던 내가 노래에 꽂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곧 코로나가 지고 선거가 피어날 텐데. 귀를 때리는 구호와 시끄러운 유세 노래를 어떻게 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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