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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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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 판사의 자진교체, 법조계 "여론에 법관 독립성 흔들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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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청원 여론에 판사가 교체 희망

법조계 "판사 제척, 기피 제도 유명무실"

조선일보

서울중앙지법/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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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의 주요 피고인 ‘태평양’ 이모(16)군 사건의 재판장이 30일 오덕식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서 박현숙 판사로 교체됐다. 이 재배당 결정은 “해당 재판을 맡기에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있다”는 오 부장판사의 ‘자진교체’에 따른 것인데, 법조계에서는 “사법부의 기본원칙으로 삼는 ‘법관의 독립성’에 위배된 전례가 만들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성계와 시민단체 등은 오 부장판사가 n번방 사건을 맡게 된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 게시판에 ‘n번방 담당판사 오덕식을 판사자리에 반대, 자격박탈을 청원합니다’라는 국민청원을 올리고 오 부장판사의 교체를 요구했다. 지난 27일 시작된 이 청원은 31일 오전 11시 기준 약 42만명이 참여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여론에도 재판장 교체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사법부가 기본 원칙으로 정한 ‘법관(판사)의 독립성’ 때문이다.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 사건 재판장 교체 이후 법조계에서는 “그간 엄격히 적용했던 법관 제척·기피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법원은 사건을 맡은 판사와 사건 당사자 사이 이해관계 등 객관적인 사정이 드러나는 경우에 한해 재판장을 바꿀 수 있는 ‘제척·기피·회피’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그간 이 제도에 따라 재판장을 교체하는 것을 엄격히 판단해왔다.

‘2019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전국 고등법원 형사사건 관련 접수된 법관 제척·기피·회피 신청 가운데 인용은 단 1건에 그쳤다. 지방법원의 경우 225건 중 단 2건 인용됐다. 2008~2017년 10년간 민·형사 재판에서 접수된 관련 신청은 총 6496건에 달했지만 인용된 것은 총 5건으로, 전체 신청건수 중 0.07%다.

이 때문에 이번 사례가 앞으로 재판의 독립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정 재판에 대해 여론이 갈리는 경우 비슷한 방식으로 법원을 압박하는 방식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오 부장판사가 여론에 부담을 느껴 선택했겠지만, 법관의 독립성에 영향을 미치는 전례를 만든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이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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