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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성착취물 실태와 수사

‘n번방’ 성착취물 본 유료 회원들도 “성폭력 공범 처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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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기록 지워도 “주범 전화에 내용 남아 처벌 못 피해”

경찰, 유료 회원 전원 수사…주범 ‘박사’ 신상공개 검토

전문가들 “미성년자 성착취물 단순 소지해도 엄단해야”

경향신문

22일 경향신문 기자가 ‘n번방 회원’을 가장해 텔레그램 활동 기록을 지우는 ‘디지털 장의사’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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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여성들의 성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조모씨(25)가 구속되자 텔레그램 활동 기록을 지워주겠다는 이들이 다수 등장했다. 주범 조씨와 ‘n번방 회원’의 신상공개를 요청하는 여론도 높다. 일각에선 일부 회원을 성폭력 공범으로 의율할 수 있다고 본다.

■ ‘활동 기록 삭제해 드립니다’

22일 경향신문은 ‘n번방 회원’을 가장해 ‘n번방’ 활동 기록을 지워주겠다는 카카오톡 오픈채팅 대화방 운영자에게 접촉했다. 운영자는 ‘업계 10년 종사자’라고 광고했다. 운영자는 “이름, 법정생년월일, 전화번호, 거주지를 보내면 즉시 작업 시작한다”고 답했다.

개인정보를 넘기는 것에 대해 걱정하자 운영자는 “정보가 없으면 접근이 어렵고 삭제가 불가능하다. 거주지를 알아야 아이피(IP) 확인이 된다. 저희 업체는 프로그램에 의해 작업이 끝난 즉시 개인정보는 모두 폐기한다”고 말했다. 사기가 아닌지 의심하자 운영자는 한 IT 보안업체의 홈페이지 주소를 올리며 “저희 업체 사이트다. 둘러보고 결정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이들은 이른바 ‘디지털 장의사’라고 불리는 업체들이다. 이날 카카오톡 오픈채팅 검색 결과 이 같은 일대일 대화방은 100여개가 나왔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디지털 장의사에게 함부로 개인정보를 넘겨줬다가 거꾸로 협박당할 수도 있어 아주 어리석은 행위”라며 “텔레그램의 암호화 기술은 미국 국가안보국(NSA) 등 초일류 정보기관만이 뚫고 들어갈 수 있다. 국내 업체가 개인정보 몇 개로 텔레그램 서버에서 기록을 삭제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설사 기록 삭제에 성공하더라도 조씨의 휴대전화에는 회원들과의 대화와 거래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n번방’ 증거를 삭제해준다고 광고하는 디지털 장의사도 처벌받을 수 있다. 법조계는 허위 광고로 돈만 챙긴다면 사기죄, 실제 범죄 증거를 지웠다면 증거인멸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은의 변호사는 “n번방 회원의 중요한 범죄 행위가 들어 있는 대화 내용을 지운다면 증거인멸이나 범인도피 혐의를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 ‘회원’도 처벌할 수 있을까

조씨는 회원에게 20만~150만원의 입장료를 받고 다수의 대화방에서 성착취 영상을 유포해왔다. 피해 여성 74명 중 16명은 미성년자였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수개월 동안 대화방 60여개의 접속자를 단순 취합한 숫자는 26만여명에 달한다. 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지난 20일 기준 ‘n번방’ 등 텔레그램을 통해 성착취 영상을 제작·유포·소지한 피의자 124명을 검거하고 이 중 18명을 구속했다. 경찰은 제보와 아이피·계좌 내역 등으로 ‘n번방’을 최초로 만든 운영자 ‘갓갓’을 추적하고 있다.

조씨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한 시민은 이날 오후 9시까지 역대 최다인 200만명을 넘어섰다. ‘n번방’에 가입한 회원 전원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원에도 130만명이 서명했다. 경찰은 조씨의 신상공개 여부만 검토 중이다. 회원 전원의 신상이 공개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들의 신상공개는 주로 살인 등 강력범죄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실제 성폭력처벌법으로 신상이 공개된 사람은 현재까지 없다.

경찰은 조씨에게 돈을 입금하고 성착취 영상을 다운로드한 회원 전부를 수사 대상에 올렸다. 지금까지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유포하거나 소지한 이들에 대한 처벌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5~2018년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의 제작·배포 등 혐의로 총 3439명이 검거됐지만 기소된 경우는 479건(13.9%)에 그쳤다.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은 경우는 80건(2.3%)뿐이었다.

경향신문

이번 사건을 계기로, 회원들 역시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집단 성폭력의 공범으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피해 여성이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장면을 돈을 주고 소비하는 이들에게도 합당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폭력처벌법은 피해자가 스스로 촬영한 영상이라도 제3자가 동의 없이 유포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박사’ 조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방에 들어오려면 성착취 영상을 공유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며 가입자들의 범행 가담을 유도했다. 이를 위해 피해자 영상이나 캡처본을 공유했다면 비동의 유포로 처벌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성년자가 등장하는 성착취 영상의 경우 소지만으로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서혜진 변호사는 “회원들의 구매 내역을 분석해 회원들이 소지나 유포 행위에 가담했는지를 적극적으로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법리를 적용하면 회원들을 조씨의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은의 변호사는 “n번방의 일부 회원은 피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요구해 공범 수준으로 의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무·심윤지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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