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공천 중간점검]
현역 교체비율 높았던 정당이 지난 세번의 총선 모두 승리
與, 논란 후보 미리 차단했지만 靑출신·친문인사 대거 공천
통합당, 탄핵 찬반 양쪽세력 정리… 안철수·유승민계 의원들 약진
전문가 "與 운동권 세대교체 실패, 통합당은 새 인물 수혈 못해 한계"
이동훈 논설위원 |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총선 공천이 막바지다. 11일 현재 민주당이 80%, 통합당이 60%가량 지역구 후보를 확정했다. 정당의 과거가 응축돼 발현되는 총선 공천은 그 정당의 미래도 함께 보여준다. 역대 총선은 공천 파동의 역사이기도 했다. 선거 때마다 공천을 둘러싼 파열음이 나고 탈당, 폭력 사태도 벌어졌다. 역대 총선을 보면 대체로 물갈이 폭이 크고 외연 확대에 적극적인 쪽이 이겼다. 2000년 이회창 주도 한나라당 공천이나 2016년 김종인 전 대표 주도 민주당 공천이 대표적이다. 또 청와대 권력이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공천 파동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면 국민은 심판했다. 2016년 새누리당 진박 공천은 후자의 대표격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여야 공천 결과만을 놓고도 과거 잣대를 들이대면서 승패 예측이 무성하다.
◇단일 컬러 짙어진 與, 여러 색깔 더해진 野
지금까지 진행된 여야 공천 결과에서 가장 선명한 대비는 '주류'의 성적표다. 민주당 주류는 더욱 득세했고 통합당 주류는 뒤로 나앉았다.
민주당은 친문 현역들이 거의 다시 공천받았고 청와대 출신들이 대거 후보가 됐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 70여 명이 공천에 뛰어들어 11일 현재 26명이 공천받았다. 승률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처음부터 많은 수가 뛰어들었기에 곳곳에 포진했다. 대통령 심복이라는 윤건영 전 국정상황실장을 비롯해 윤영찬·정태호·한병도·이용선 전 수석 등이 알토란 같은 지역구를 꿰찼다. 진성준·김영배·신정훈 전 비서관 등도 공천받았다. 윤호중·최재성·전해철·박범계 등 친문 현역 의원 대부분 자기 지역구를 지켰다. 컷오프(공천 배제)되거나 경선 탈락한 면면에서 친문을 찾기가 어렵다. 이석현·이종걸·유승희 등 경선 탈락 중진은 모두 비문(非文)이었다. "민주당이 했다는 '시스템 공천'은 친문 권리 당원을 호루라기 불어 결집시킨 친문 공천의 다른 말"이란 비아냥까지 나왔다.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여야의 공천 작업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원혜영(왼쪽 사진 가운데) 공천관리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공천관리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미래통합당 김형오 (오른쪽 사진 가운데) 공천관리위원장이 국회에서 공천 심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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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은 황교안 대표가 공천에서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친황계로 분류되던 유기준·김재원·이진복·김도읍·민경욱·윤상직·정종섭 의원 등이 공천을 못 받거나 불출마했다. 대신 굴러온 돌, 유승민·안철수계는 약진했다. 유승민계 7명 중 5명, 안철수계 5명의 현역 의원이 대부분 경선 기회를 보장받았다. 과거 주류인 친박·비박은 퇴조하는데 신주류 친황은 제대로 서지 못한 통합당의 역학 관계가 낳은 결과라는 게 당 안팎 평가다. "역대 공천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공천"이란 말도 나왔다. 결국 민주당은 '친문계 단일 정당 완성'이란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친문 색채가 짙어졌고 통합당은 다양한 색깔로 채워졌다. 이런 색깔 차이가 총선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
◇탄핵 도려낸 野, 갈등 잠재운 與
경선 탈락, 컷오프, 불출마 등을 아우른 민주당의 현역 교체율은 현재 27%, 통합당은 40%다. 수치로만 보면 통합당이 높다. 물갈이의 질은 어떨까.
통합당 공천을 앞두고 과연 '탄핵 사태'를 잘 정리할지 우려가 컸다. 탄핵을 잘못 헤집으면 공천이 엉망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통합도 날아간다. 공천위 칼날은 뜻밖에 탄핵을 두고 갈라졌던 양쪽 모두를 정면 겨냥했다. 박근혜 정부 핵심에 있었던 진박 인사들, 그 반대편에서 탄핵에 적극적이었던 인사들이 거의 모두 날아갔다.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은 대상 의원들을 조용히 접촉해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하게 하는 초식도 구사했다. 박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도 한몫했다. 총선에서 통합당을 중심으로 결집하라는 메시지는 탈락한 친박의 발목을 잡았다. 통합당은 거물급을 험지로 내몰았고, 그 과정에 홍준표 전 대표, 김태호 전 지사가 컷오프되면서 작지 않은 파동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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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 대해선 86운동권 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을 어떻게 정리할지가 관건이란 얘기가 많았다. '운동권 정치는 이제 청산하자'는 주장이 쏟아졌다. 임종석 불출마 등으로 불이 붙는 듯했다. 그러나 공천에 들어가자 흔적 없이 꺼져버렸다. 이인영·우상호·송영길·안민석·김태년 등이 그대로 공천받았다. 대신 민주당은 오제세·민병두·정재호 의원 등 비주류를 컷오프했다. 민주당은 철저하게 안전·보신 공천을 진행했다. 논란이 될 사안은 미리미리 잠재웠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부동산 투기 논란)이나 정봉주 전 의원(미투 논란) 등이 일찌감치 공천 배제됐다. 김남국 변호사가 금태섭 의원 지역구에 도전장을 던지면서 조국 사태가 소환될 조짐을 보이자 그를 경기 안산으로 돌렸다. '여당답게 안정감 있고 질서 있는 공천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지만 '무감동에 임팩트 없는 공천'이란 반론도 나온다.
◇전문가 "통합당 일단 판정승"
지금까지의 공천 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은 통합당 판정승이다. 그러나 새 인물 수혈이란 측면에선 모두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미래통합당이 보수 분열을 어떻게든 극복해보려 했다는 점에선 점수를 받아야 한다"며 "하지만 새 인물을 수혈 못 한 점 등 현실적인 한계는 분명히 있다"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여당에선 진문 공천이 이뤄지고 야당에선 강성 친박을 배제하는 공천이 이뤄졌다"며 "2016년 공천이 여야를 뒤바꿔 되풀이됐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민주당은 친문, 투쟁력이란 목적에 집착해 공천했다"며 "친정체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지난 새누리당 공천에서 배우지 못했다"고 했다. 신 교수는 "통합당 공천은 주류를 바꾸려는 공천이었고 그러다 보니 교체 비율이 높았는데 교체 비율이 높은 쪽이 승리 가능성도 높았다"고 했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는 "민주당은 86운동권 세대를 교체하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았고 청와대 인사 다수가 공천받았다"며 "'조국 대 반조국' 프레임이 덧씌워진 김남국 변호사를 그대로 공천한 것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홍 교수는 "인적쇄신 면에선 통합당이 잘했다고 할 수 있지만 새로운 인물이 안 보이고 돌려막기가 이뤄졌다"며 "이리저리 사람을 바꾸기는 했는데 잘된 것이냐고 고개를 갸웃대는 형국"이라고 했다.
김형오 "비운다는 목표엔 부합, 새로 채운 인물에 대한 평가는 엇갈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총선 이래 미래통합당 계열의 공천은 친이·친박 계파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공천마다 실패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2016년 공천은 최악의 선거 참패로 이어졌다. 그런 면에서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 주도 이번 공천은 계파 공천을 탈각한 것만으로도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속에 공천 메스를 잡은 김 위원장은 상처를 헤집지 않으며 단호하게 도려낼 곳을 도려냈다. 사심(私心) 공천, 일부 지역의 부실 후보 공천 등 뒷말이 없지 않지만 전반적으로 '잘했다'는 얘기가 많다.
김 위원장은 부산 영도에서 5선을 했고 18대서 국회의장을 지냈다. 현역 시절 계파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정치인이었다. 그 때문인지 매번 공천장을 어렵게 받았다고 한다. 이런 경력이 섬세한 외과수술식 공천을 하는 밑바탕이 됐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그는 지난 1월 위원장에 취임하면서 "한국당을 확 바꾸겠다. 좋은 사람들이 와야 구닥다리들을 쓸어낼 수 있다"고 했다. '목표를 달성했느냐'는 질문에 "비운다는 목표엔 어느 정도 부합한 것 같은데 새로 채운 인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고 했다.
그는 "야당이란 한계 속에서 갑론을박하며 새 사람들을 고르고 골랐다. 커리어가 떨어져 보일 수는 있지만 아예 감조차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변화하고 쇄신하겠나. 자원 많은 여당은 오히려 변화 폭이 훨씬 좁다. 우리는 12척 배로 어떻게든 승리하기 위한 전략을 짜고자 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사심 공천 논란에 대해선 "내가 정치를 다시 할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며 "공천하고 나니 양아들, 양딸들이 갑자기 생기는데 모두 엉터리"라고 했다. 임명장을 받을 때부터 다시 정치하지 않는다고 했던 김 위원장은 "공천 끝나면 귀거래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공천 탈락자들에 대해 "여당이라면 자리 주고 감싸 안아 줄 텐데 그런 기능이 없다"며 "한 사람 한 사람 생각하면 가슴 아프지만 나라가 살고 당이 살아야 미래가 주어진다"고 했다.
[이동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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