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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난 사회 안전망 - 빚에 갇힌 서민들] [2] 가족이 때로는 '수렁'… 빚더미 앉은 사람들 절반이상이 가족 빚 탓

조선일보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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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난 사회 안전망 - 빚에 갇힌 서민들] [2] 가족이 때로는 '수렁'… 빚더미 앉은 사람들 절반이상이 가족 빚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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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이재용 무죄 확정으로 검찰 기소 4년10개월만에 마무리
[최근 3년동안 개인회생·파산 인가받은 56명 분석해보니]

부모때문에… 알바 전전 대학생 - 아버지 사업 부도로 억대 빚
입학하자마자 운전대 잡아… 생활비까지 벌어야하는 처지

자식때문에… 50대 일용직노동자 - 月100만원 벌이도 힘들지만
考試아들 등에 270만원 들어… 빌린 돈 5000만원으로 불어

지난달 28일 아침 7시 40분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촌동 농공단지 인근 2차선 도로. 공단에 출근하는 인파로 어수선한 도로변에서 이준우(24·가명)씨는 9.5t 대형 트럭 운전대를 고쳐 잡았다. 조수석에는 아침거리인 빵 2개와 졸음을 쫓기 위한 박카스 2병이 놓여 있다. 하도급업체에서 만든 부품을 싣고 대기업 공장 문을 넘자, 다른 기사들이 알은체를 했다. "학교 안 가느냐?"

그는 모 지방대 공대 3학년이다. 2008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운수업체 통근 버스 운전으로 월 100만원 정도를 받고 4~5개월간 일했고, 군 제대 후인 2011년 6월부터 트럭 운전을 시작했다. 복학을 미루고 작년 2월까지 8개월간 월 160만원을 받고 계약직 직원으로 일했다.

이준우씨가 지난달 28일 오후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도로변에 트럭을 세워놓고 좁은 운전석 안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다. 이씨는 12시간 일하고 일당 7만원을 받아 자신의 학자금과 가족이 진 빚의 이자를 낸다. /김영근 기자

이준우씨가 지난달 28일 오후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도로변에 트럭을 세워놓고 좁은 운전석 안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다. 이씨는 12시간 일하고 일당 7만원을 받아 자신의 학자금과 가족이 진 빚의 이자를 낸다. /김영근 기자


그때 1300만원쯤 벌었는데 아버지의 빚 300만원 정도를 갚았고, 학자금 대출 330만원을 상환했다. 작년 3월 복학하면서 등록금(220만원)에도 돈이 들어갔다. 할머니의 암 진단비, 집 수리비 등으로 이리저리 돈이 나가다 보니 정작 이씨는 번 돈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

그는 작년 3월 복학한 뒤에도 일당 7만원(12시간 근무)의 아르바이트 기사로 일한다. 한 달에 3번 정도 일거리가 들어와 20만원 정도를 번다. 등록금으로 쓰려고 모으고 있지만, 뻔한 집안 살림을 알기에 생활비를 보태게 된다.

이씨는 아르바이트 인생 9년째다. 외환위기로 아버지(55) 사업이 부도나 6억원의 빚을 지는 바람에 그는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전단 배포, 음식 배달 등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현재 작은 회사의 운전사로 일하는 아버지와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52)는 한 달에 300만원 정도를 버는데 이 중 절반을 빚 갚는 데 쓰고 있다. 이씨 이름으로 된 학자금 대출은 550만원이 남아 있다.

그는 대학 졸업 때까지 얼마나 더 빚을 지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간혹 아침도 못 먹고 여기서 컵라면 먹고 있을 때면 착잡하죠. 교복 입고 등교하는 애들이 쳐다봐요. '저 형은 뭐 하는 사람인데 여기서 아침에 컵라면을 먹나'하는 시선을 받으면 처량한 생각이 들어요."

이씨는 친하게 지내는 과(科) 친구 중에 한 명이 "장학금을 받으면 될 것을 뭐 하러 그렇게 일을 하고 다니느냐"고 한 적이 있다는 말을 꺼냈다. "누구는 학비를 벌려고 아르바이트한다고 하지만 저처럼 생활비까지 벌어야 하는 처지에서는 그들이 부러워요."

부모 때문에…

가족의 빚에 치여 힘겨워하는 자녀나 부모가 늘어나고 있다. 사회 안전망을 대체해 온 전통의 안전망인 가족이 점점 울타리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안전망은커녕 빚의 늪으로 다른 가족을 끌어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본지가 최근 3년 동안 지방 A 변호사 사무실을 통해 개인회생·파산 인가를 받은 50대 이하 56명의 사연을 분석한 결과 59%인 33명이 '가족 빚'이 굴레의 시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이 자신의 빚이 아닌, 가족의 빚으로 결국 파산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A 변호사 사무실 관계자는 "가족 때문에 진 빚을 지고 찾아온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얼마나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빚 갚으라는 금융회사 독촉장이 집으로 날아와도 한숨만 쉬다가 계속 빚을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가족 빚에 갇힌 33명 중 24명이 여성이었는데, 대부분 남편에게 대출 명의를 빌려주거나 신용카드를 내줬다가 빚을 떠안았다.

자식들 때문에…

반대로 자식 때문에 빚더미에 앉고,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 안전망까지 받지 못하는 슬픈 부모들의 사연도 부지기수다.

서울 강북에 사는 일용직 노동자인 손모(58)씨는 고시 공부를 하는 둘째 아들에게 3년째 매달 200만원을 보낸다. 아파트 임차료와 관리비 20만원, 생활비 50만원까지 더하면 매달 270만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드문드문 일감이 들어오는 건설 현장 일로는 매달 100만원 벌이도 힘겨울 때가 많다. 이러니 매달 170만원씩 빚더미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은행 2곳, 3명의 친구 등에게서 빌린 돈은 5000만원에 달한다. 손씨의 장남은 집을 나가 몇 해째 소식이 없다. 손씨는 경제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아들들 때문에 기초수급대상자로도 지정되지 못하고 있다. 손씨는 "자식이 도와달라는데 부모가 외면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더 이상 못 버티겠다"면서 "둘째도 내년에는 고시 때려치우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삼식 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전략연구소 소장은 "가족의 안전망 역할이 약해지고 있어 사회 안전망을 더 촘촘하게 만드는 것이 시급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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