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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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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인삼이 맵다, KGC인삼공사 고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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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프로 데뷔 후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는 KGC인삼공사 고민지.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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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후반기를 뜨겁게 달군 팀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KGC인삼공사다. 전반기 부진을 딛고, 후반기 치열한 순위 다툼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달라진 인삼공사에서도 '핫'한 선수를 꼽으라면 4년차 레프트 고민지(22)다. 173㎝의 단신이지만 점프력을 활용한 매서운 스파이크로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달 28일 신탄진 클럽하우스에서 고민지를 만났다.

2016년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로 IBK기업은행에 입단한 고민지는 2017년 12월 채선아, 이솔아와 함께 KGC인삼공사로 트레이드됐다. 하지만 원포인트 서버 및 후위 수비를 담당하는 역할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런 고민지에게 기회가 왔다. 이영택 감독이 고민지의 출전시간을 점차 늘린 것이다. 선발 출전이 많진 않지만 투입되기만 하면 활력을 불어넣었다. 데뷔 후 처음으로 100득점 돌파도 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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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지의 표정도 밝았다. 그는 "어렵지 않게 생각하려고 한다. 편안하게 하는 게 내 임무"라며 "(출전시간이 늘어)시즌 막바지가 될수록 부담감이 커지긴 한다. 나가는 경기수가 점점 늘어나고, 팬들도 응원이나 경기 전 응원도 늘었다. '다음엔 더 잘 해야지'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늘어난다"고 했다.

대구여고를 졸업했지만 고민지의 고향은 제주도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배구를 시작한 그는 중·고 배구부가 없는 제주도를 떠나 혼자서 대구에서 생활했다. 고민지는 "초등학교 코치님이 대구로 전학을 주선해주셨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구일중 숙소에서 언니들과 함께 지냈다"며 "아직도 가끔 대구 말투가 나올 때가 있다"고 했다. 최근 코로나 19로 인해 제주도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했다는 고민지는 "선수들 모두 숙소에서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를 하던 날에도 일부 선수들은 오후에 체육관에 나와 자율 훈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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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웜업존을 더 많이 지켰다. 선수로서 편할 리는 없다. 그래도 고민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솔직히 말해 4년차까진 시합을 못 뛰어도 아쉬울 건 없다고 생각했다. 10년 넘게 빛을 못 보는 선수도 있으니까"라며 "스트레스 받지 않고, '내가 할 일을 하면 기회가 오겠지'라고 생각했다. 같이 배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올시즌 출발은 좋지 않았다. 컵대회 첫 경기 전날 발목을 다쳤다. 고민지는 "흥국생명과 경기 전날 컨디션이 정말 좋았다. 전날 무릎이 아파서 하루 쉬었더니 몸이 가벼웠다. 그런데 연습을 하다 블로킹하고 떨어지면서 발을 밟았고, 발목이 돌아갔다. '몸이 좋을 때 다친다'는 말을 체감했다"고 떠올렸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었지만 당시엔 꽤 심각했다. 고민지는 "이대로 시즌을 통째로 날리는 줄 알았다"고 했다. 다행히 회복이 빨라 정규시즌 3라운드부터는 정상적으로 출전이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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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중반엔 서남원 감독이 자진 사퇴 형태로 팀을 떠나는 악재도 있었다. 고민지는 "이미 일어난 일인데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다. 그래도 시즌 중이고 프로 선수니까 "다 같이 받아들이고. 남은 경기들을 잘 하자'고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인삼공사는 그대로 무너지지 않고, 이영택 대행 체제에서 후반기를 잘 치러냈다.

이번 시즌 눈에 띄게 좋아진 점은 서브다. IBK 시절에도 원포인트 서버로 자주 나섰지만 올해는 더욱 매서워졌다. 지난해까지 3년간 서브 에이스율이 5.79%였는데 올해는 8.13%로 크게 향상됐다. 고민지는 "인삼공사에 온 뒤 스파이크 서브로 바꿨는데 솔직히 서툴렀다. 자신감도 없었고,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면 어떡하지'란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이영택 감독님은 두려워하는 걸 싫어하신다. 작전시간이 연습 때도 항상 '실수하면 또 때리면 되지'라는 마음을 강조하신다. 그게 힘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고민지의 또다른 강점은 상대 블로킹을 활용하는 공격이다. 서전트 점프(50㎝)와 런닝 점프(56㎝) 모두 뛰어난 고민지는 이른바 '쳐내기 공격'에 능수능란하다. 팬들이 '블록아웃의 마술사'란 근사한 별명도 붙여줬다. 고민지는 "어차피 내 키로는 상대 블로킹 위에서 때릴 수 없다는 걸 인정한다. 그래서 상대 블로킹을 이용해야 한다. 솔직히 내가 작아서 블로커 팔을 때리는 건 더 수월하기도 하다"고 했다.

인삼공사엔 지민경, 하효림, 이솔아 등 고민지의 동기생들도 많다. 그래서 빠르게 팀에 녹아들 수 있었다. 고민지는 "친구들이 많아서 참 편하다. 넷 성격이 다 다르다. 나는 말을 많이 하고, 민경이는 가만히 듣는다. 솔아는 장난을 많이 치고, 효림이가 리액션을 한다"며 "민경이와는 대화를 많이 하고, 효림이는 정보를 알려준다. 솔아랑은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최근 팬들 사이에선 고민지의 '윙크 짤'이 한동안 화제였다. 고민지는 "사실 민망하다"며 "현대건설은 아무래도 블로킹이 높아 버거운데, 공격하기 전에 세터 (염)혜선 언니와 '상대 머리 사이로 때려볼까'란 의논을 했는데 그대로 됐다. 그래서 혜선 언니에게 윙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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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을 성공시킨 뒤 윙크를 하는 고민지. [KBS N 중계화면 캡처]



후반기 돌풍을 일으켰지만 인삼공사의 봄 배구는 조금 힘들어졌다. 5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이재영이 복귀한 흥국생명에게 패한 게 뼈아팠다. 1-1로 맞선 3세트와 4세트에서 모두 듀스접전을 펼쳤으나 지고 말았다. 고민지는 "선수들 컨디션도 좋았고. 5연승중이라 분위기도 좋았다. 미팅 때 감독님이 '이 경기가 결승처럼 주목받지만 정규시즌 30경기 중 하나'라고 얘기했다. 경기를 잘 풀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너무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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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지는 "지난 시즌엔 19연패도 했고, 어떻게 보면 안쓰러운 팀이었다. 이젠 져도 쉽게 지지 않고, 끝날때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며 "그냥 시즌이 끝날 뻔 했는데 우리가 여자 배구 인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 것 같고, 주목받게 되어 좋다"고 했다. 고민지는 "4경기 남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뚜렷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신장이 작은데 배구를 하고 있잖아요. 어린 선수들 중에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사실 드래프트 때도 키가 작은 선수는 뽑히기 어려워요. 하지만 저를 보면서 힘을 내는 선수들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대전=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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