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 사퇴한 고양 오리온 추일승 감독 (사진 오른쪽) [사진=KBL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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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주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부끄럽지 않게 노력한다면 죽을 때까지 우승을 못하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6년 3월30일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을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끈 뒤 추일승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남긴 말은 농구계에 깊은 울림을 줬다.
농구인 출신들은 흔히 농구 명문고, 농구 명문대 출신의 주류와 주류에 섞이지 못한 비주류로 나뉜다. 주류에 속하면 선후배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다.
추일승 감독은 농구계에서 대표적인 '농구 흙수저'로 불렸다. 지금은 농구부가 없는 홍익대 출신이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주변 관계자가 많지 않았다. 오로지 실력 하나로 승부했다. 그는 코트의 학구파다. 누구보다 열심히 농구를 연구했고 공부했다.
1999년 상무(국군체육부대) 감독 시절부터 지도력을 인정받은 추일승 감독은 코리아텐더, KTF 감독을 거쳐 2011년 오리온의 지휘봉을 잡았다.
추일승 감독에게는 늘 두 가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비주류 그리고 프로 우승 경험이 없는 감독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최선을 다했다.
오리온 부임 당시 팀은 침체기에 빠져있었다. 추일승 감독은 부임 두 시즌 만에 팀을 플레이오프 무대로 끌어올렸다. 6시즌 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이었다.
마침내 2015-2016시즌 무관의 한을 풀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안드레 에밋이라는 강력한 외국인선수를 보유한 전주 KCC를 4승2패로 눌렀다.
오리온은 우승 시즌 때 폭발적인 공격 농구로 주목받았다.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 전술과 적극적인 3점슛 시도는 당시 세계 농구의 트렌드와 잘 맞아 떨어졌다.
추일승 감독은 당시 오리온을 "공격을 위해 수비를 하는 팀"이라고 묘사했다. "수비가 잘 돼야 공격에도 무리가 없다. 수비가 안되면 선수들의 공격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그것을 빨리 만회하려고 무리하게 공격을 펼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팀을 구성하는 선수들의 특성과 최근 세계 농구에서 유행하는 트렌드의 조화를 잘 만들어냈다. '학구파' 추일승 감독의 지도력이 빛을 발했던 시즌이다.
이후 오리온은 주축 선수들의 군 입대와 같은 여러가지 변수 속에서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정규리그 도중 10경기 연속 패배를 당한 팀으로는 최초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2018-2019시즌의 인상도 강렬했다.
추일승 감독은 온화하고 따뜻한 지도자로 잘 알려져 있다.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겼다. 선수들과 장난섞인 '톡'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훈련을 독려하고 격려하기도 했다.
오리온은 2019-2020시즌 출발부터 꼬였다. 외국인선수 마커스 랜드리가 시즌 초반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면서 전체적인 구상이 틀어졌다. 추일승 감독은 19일 올시즌 12승29패로 최하위 10위에 머물러 있는 팀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프로스포츠에서 자진 사퇴를 하는 감독은 드물다. 구단이 경질하고 자진 사퇴한 것처럼 발표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에 오리온 구단 관계자는 추일승 감독이 자진 사퇴를 결심한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추일승 감독은 팀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여러차례 해왔고 자신의 이른 사퇴가 변화의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추일승 감독은 평소 김병철 수석코치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할 것 같다는 늬앙스의 말을 종종 했다. 오리온에서 쌓은 명성이 대단했기에 감독직 연임에 욕심을 부릴 법도 했지만 그는 달랐다. 시기가 예상보다 앞당겨졌을 뿐이다.
추일승 감독은 이날 오전 체육관에 선수단을 불러모아 사퇴 소식을 전했고 감독대행을 맡게 되는 김병철 수석코치를 많이 도와달라는 당부의 말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추일승 감독은 구단을 통해 "시즌 도중 사퇴하게 돼 구단과 선수단에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후배들에 길을 열어주고자 결심했다. 그동안 응원해주신 팬들과 묵묵히 따라와 준 선수단, 아낌없이 지원해준 구단 관계자 모두에게 감사하고 앞으로도 오리온의 선전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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