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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5세대 이동통신

5G가 뭐길래… 화웨이 경쟁사 지분까지 매입하겠다는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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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에릭슨·노키아 지분 살 수 있다"... 에릭슨 최대주주 "美 구상 논의 불가피"
5G는 기술패권 위한 4차산업 핵심 인프라… 中 화웨이·ZTE 40% 장악

미국이 중국 통신장비 회사 화웨이를 견제하기 위해 그 뒤를 잇고 있는 노키아(핀란드)나 에릭슨(스웨덴)의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을 거론했다는 소식이 최근 알려졌다.

지난해 5월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화웨이를 블랙리스트(거래제한 명단)에 올리고, 이른바 ‘파이브아이스(Five Eyes,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국)’라 불리는 동맹국들에 화웨이 5G(5세대) 이동통신 장비를 쓰지 말 것을 요구한 미국이 이제는 경쟁업체의 지분 매입까지 운운하고 나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가 되는 5G를 장악해야만 기술패권을 잡을 수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조선비즈

중국 베이징의 화웨이 매장 앞을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 시각) 에릭슨 최대주주 중 하나인 세비안캐피탈의 공동창업자 크리스터 가델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에릭슨을 손에 넣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라며 "에릭슨 이사회로서는 (미국의 에릭슨 지분 인수) 논의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비안캐피탈은 에릭슨 지분 약 9%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앞서 윌리엄 바 미 법무장관이 화웨이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노키아나 에릭슨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긍정적으로 화답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압박은 지난달 28일 영국이 5G 망 구축사업에 화웨이 장비를 제한적으로 허용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분을 산 것이 직접적 원인이 됐다. 영국은 화웨이를 사용하되 민감한 네트워크 핵심 부문에서는 배제하고, 비핵심 부문에 대해서는 화웨이 점유율이 35%가 넘지 않도록 제한을 뒀다. 그럼에도 미국 주도의 파이브아이즈 동맹에서 사실상 탈퇴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파이브아이즈의 동맹국 중 호주, 뉴질랜드는 미국의 ‘반(反)화웨이’ 행보에 힘을 싣고 있지만, 캐나다의 경우 영국 방식으로 화웨이 5G 망을 채택하는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파이브아이즈만의 얘기가 아니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가 집계한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5G 통신장비 점유율을 보면, 화웨이는 31.2%로 전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화웨이는 중국 내수시장은 물론 독일, 러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 65개 글로벌 이동통신 사업자와 계약을 맺었다. 한국에서도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채택하고 있다. 중국의 또 다른 통신장비 업체인 ZTE 점유율(9.7%)과 합치면 중국 통신장비 업체의 글로벌 5G 시장 점유율은 40%를 웃도는 수준으로 올라간다.

화웨이가 미국을 제외한 유럽, 아시아에서 전방위로 깔리고 있는 것은 기존 기지국과의 연동 편이성, 다른 경쟁업체 대비 가성비 측면에서 약간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 작용했다고 업계에서는 말한다.

각 사업자의 기술력이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지만, 이동통신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상용화 시점을 기술력 차이로 판단하고 있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이 발간한 ‘5G 망 구축에 따른 통신장비 도입 방향에 대한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의 5G 기술은 2018년 5월 상용화가 시작됐다. 뒤이어 그해 10월 노키아·삼성전자가, 12월 에릭슨이 각각 상용화를 시작했다. 화웨이의 기술력이 글로벌 경쟁 통신장비업체인 에릭슨이나 노키아, 삼성보다 5~7개월가량 앞서 있다는 것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인 5G를 장악해야 미래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국·중국이 패권 다툼을 하는 것"이라며 "자국 통신장비가 없는 미국은 (정치적 압박, 경쟁사 지분 인수 등을 총동원해) 중국 업체를 제어하려하고, 이것이 실제 효력을 발휘한다면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그래픽=정다운




미국의 주장처럼 정부가 특정 기업 지분을 인수하는 게 가능할까. 업계에서는 노키아의 사례를 통해 불가능한 얘기만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핀란드 국영 투자회사 솔리디움은 지난 2018년 노키아 지분을 약 1조원에 샀다. 당시 솔리디움 측의 지분 매입 사유는 ‘노키아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회사’라는 점이었다. 솔리디움은 현재 지분 3.9%를 보유한 노키아 최대주주다. 즉, 미국이 어떤 지정학적 목적을 내세워 에릭슨이나 노키아 지분을 인수, 지배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 정부의 백도어(Back door·인위적으로 만든 정보 유출 통로)로 악용될 여지를 의심 받는 화웨이는 직원들이 주식을 나눠갖는 종업원지주제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겸 회장이 지분 1.01 %를, 전·현직 임직원이 98.99%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고 회사 측은 밝히고 있다.

핀란드 총리, 대외무역유럽부 장관을 지낸 알렉산데르 스투브는 FT에 "경제패권, 데이터패권을 넘어 보안에 관한 이슈라면 노키아·에릭슨 같은 기업은 이(미국과 맞손)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 통신장비 업계 관계자는 "노키아, 에릭슨은 화웨이나 ZTE 등과 달리 정치적 중립국 장비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를 깨고 어느 업체가 미국과 손잡을 경우 우려가 나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장우정 기자(wo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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