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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커크 더글러스. 위키피디아 |
할리우드 황금기를 빛낸 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5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103세.
고인의 아들인 할리우드 스타 마이클 더글러스(76)는 이날 페이스북에 성명을 내고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구체적 사인은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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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크 더글러스(왼쪽). 위키피디아 |
마이클은 아버지에 대해 “그는 영화의 황금기를 경험한 전설이자 배우이며 정의와 대의에 대한 헌신을 통해 우리 모두가 우러러볼 기준을 세운 인도주의자”라고 밝혔다. 이어 “아버지는 좋은 인생을 살았고, 앞으로도 오랜 세대에 걸쳐 지속될 유산을 남겼으며, 지구에 평화를 가져오고 타인을 돕기 한 박애주의자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글러스는 1916년 미국 뉴욕에서 가난한 유대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드라마 예술아카데미에 진학해 배우의 꿈을 키우던 그는 1946년 <마사 아이버스의 위험한 사랑>으로 데뷔했다. 이어 1949년 영화 <챔피언>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고 <해저 2만리>(1954), <열정의 랩소디>(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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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파르타쿠스>의 한 장면 |
더글러스는 178㎝의 키에 레슬링으로 다져진 몸으로 남성미를 발산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강철 같은 푸른 눈과 날카로운 인상, 거친 목소리로 반체제적 영웅이나 반사회적 주인공에 적격이었다. 생전의 그는 “나는 개자식들을 연기해 성공했다”고 말한 바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원초적인 육체적 강인함을 바탕으로 자신의 역할에 지성과 강렬함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7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9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한 더글러스는 1991년 미국영화연구소(AFI)와 1999년 미국영화배우조합(SAG)으로부터 각기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세 차례 올랐으나 수상하지는 못했다. 아카데미는 1996년 더글러스에게 평생공로상을 안겨줬다. 당시 시상자는 아들 마이클이었다.
더글러스는 미국 사회에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1950년대에 자신이 세운 영화 제작사를 통해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작가 돌턴 트럼보를 고용하고 <스파르타쿠스>의 시나리오를 맡겼다. 영화가 성공하면서 트럼보는 작가 조합에 재가입할 수 있었다. 더글러스는 당시 블랙리스트를 끝장내는 데 기여한 것을 자신의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꼽았다.
더글러스는 전 세계 분쟁 지역에 학교와 공원을 세우는 등 자선활동도 활발히 했다. 영화 제작 및 감독을 했고 소설과 어린이책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1991년 헬기 사고로 척추수술을 받았고 1995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는 언어장애를 겪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앤 바이든스와 세 자녀가 있다. 할리우드 스타 캐서린 제타 존스가 첫째 아들 마이클의 아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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