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관계자들은 문 대통령의 주문이 512조원 규모인 올해 예산의 조속한 집행을 주문한 것이라며 추경 편성과 선긋기에 나섰지만, 국민의 불안 심리를 달래기 위해서는 추경 편성 등 적극적인 정부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추경 편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나왔고, 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서도 우한 폐렴 대응을 위한 재정 투입을 주문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추경을 검토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문 대통령이 ‘미세먼지 대응을 위한 추경 검토’ 지시가 나오자마자 입장을 바꾼 작년의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성동구 보건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관련 시찰 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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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 ‘신속한 재정투자’ 주문…홍 부총리 "추경 검토 안해"
5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는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대한 후속 조치를 준비 중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 우리 경제가 받을 충격과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면서 "이번 사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업종별, 파급 경로별로 신속히 점검, 선제적으로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재정 집행부터 계획대로 신속하게 해주기 바란다. 민간이 어려울수록 정부가 신속한 재정 투자로 경제에 힘을 불어넣어 줘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세종시 경제부처에서는 문 대통령의 주문이 추경 편성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1월은 올해 연간 예산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데, 추경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추경에 부정적인 인식을 나타냈다. 우한 폐렴의 경제적 여파 등을 확인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게 홍 부총리의 생각이다.
그러나 홍 부총리가 이런 인식을 계속 고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국회에서는 여권을 중심으로 추경 편성을 통해 정부의 경기 방어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 제3정책조정위원장인 최운열 의원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추경 등 모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우한 폐렴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소상공인과 관광업계, 부품 조달을 못 하는 제조 업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야당인 한국당도 우한 폐렴 대응을 위한 재정 투입에 협조하겠다는 분위기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마냥 이번 사태가 멈추기만을 기다릴 수 없다. 그 사이 우리 경제 체력이 급격히 손상될 것"이라면서 "일시적 규제 완화와 재정 투입 등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현황점검 겸 전라남도 목포 연안여객터미널을 방문 체온을 검사하는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기재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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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결심 따라 추경 카드 조기 등판할 수도
세종시 관가에서는 문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 추경에 부정적이었던 기재부 입장이 바뀐 작년 사례가 반복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홍 부총리는 작년에도 2월말까지는 "추경 편성을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3월초 미세먼지 대응 추경을 긴급 편성하라고 지시한 이후 입장을 바꿔 4월말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안을 발표했다.
오는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 일정이 추경 편성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선거를 앞두고 정상적인 국회 가동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 추경 편성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추경을 편성하기 위해서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예산 심의를 해야 하는데, 선거운동으로 바쁜 국회의원들이 예산 심의에 매달리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다.
우한 폐렴으로 인한 경기 하강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기재부 실무진이 추경 편성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의도로 추경을 편성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부담스러운 지점이다. 기재부 안팎에서는 총선 전 추경보다는 예비비 지출이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 이날 청와대와 민주당은 고위 당정청 협의를 열고 우한폐렴 대처에 예비비 3조4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한 폐렴 확산 속도가 현재보다 빨라지면 청와대가 추경 카드를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한 폐렴으로 인한 체감 경기 악화가 빠르게 진행되는데,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경제정책을 이끌고 있는 청와대의 판단에 따라 추경 카드가 예상보다 빨리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종=정원석 기자(lllp@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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