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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계 저니맨 황동일을 일으킨 '아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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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1일 천안 한국전력전에서 속공 토스를 올리는 황동일(왼쪽). [사진 현대캐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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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니맨(journey man). 여행을 다니듯 여러 팀을 뛰는 선수를 일컫는다. V리그 대표 저니맨은 세터 황동일(34)이다. 세 번의 트레이드를 겪었고, 방출의 아픔도 한 차례 겪었다. 현대캐피탈에서 다섯 번째 유니폼을 입은 황동일이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21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전력과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0(25-17, 25-18, 25-19) 완승을 거뒀다. 이날 현대캐피탈은 지난 18일 대한항공전(3-1 승)에 이어 주전 이승원(27) 대신 황동일이 선발로 출전했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은 "최근 황동일의 흐름이 좋다. 생각보다 빨리 팀에 적응해 기회를 주려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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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손해보험에서 뛰던 시절 항동일. [사진 LIG손해보험]


최 감독의 기대대로 황동일은 이날 뛰어난 경기력을 보였다. 주포 다우디 오켈로에게 가는 높은 패스는 완벽에 가까웠다. 대학 동기인 신영석과의 호흡도 찰떡같았다. 레프트 박주형에게 쏴주는 퀵토스도 흠잡을 데 없었다. 장신을 살린 유효블로킹으로 공격 기회도 여러 차례 만들었다. 최 감독은 경기 뒤 "황동일이 잘 해줬다"며 흡족해했다.

황동일은 “두 경기 다 선발로 나서서 승리했다. 당연히 기분 좋다. 하지만 슬슬 부담도 온다. 더 준비를 해야 할 때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어 "현대캐피탈에 온 뒤 나를 바꿨다. 배구도 배구지만, 문화적 차이가 있다. 삼성화재는 굉장히 진지한 분위기다. 현대캐피탈은 감독님께서 밝고 신나는 분위기를 강조한다"고 했다. 그는 "삼성에서 하던 대로 했더니, 감독님이 ‘혼자 배구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 점이 처음엔 어려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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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에서 뛰었던 황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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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대 시절 황동일은 각광받는 세터였다. 1m94㎝ 장신에 왼손잡이, 공격력까지 갖춰 유망주로 꼽혔다. 2008-09시즌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신생팀 드림식스(우리카드 전신)에 지명됐다. 하지만 황동일은 며칠 뒤 3대1 트레이드로 LIG손해보험에 입단했다. '3'이 아니라 '1'이 황동일이었다. 그만큼 그의 가치는 높았다. 첫 시즌부터 코트를 누빈 황동일은 전경기에 출전하며 신인왕까지 차지했다.

하지만 첫 시즌 이후 하락세를 걸었다. 높이에다 공격력까지 갖췄지만 세터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인 토스가 흔들려서였다. 고교 때까지 라이트였기 때문에 경기 운영 측면에서도 아쉬운 부분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결국 그는 2011년 11월 대한항공으로 트레이드됐고, 3년 뒤엔 다시 삼성화재로 이적했다. 그러나 세터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서 잠시 라이트로 포지션을 바꾸기도 했다. 절치부심한 황동일은 2017~18시즌 삼성화재의 11연승 행진을 이끌며 한때 주전을 꿰찼지만, 결국 지난 시즌 뒤 방출의 아픔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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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에서 뛰었던 시절 황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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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시간이었다. 6살 난 아들 서율이는 아빠가 배구선수란 걸 안다. 어느 날은 "아빠, 왜 배구하러 안 가"란 질문을 던졌다. 황동일은 “아무 말도 못하고 천장만 바라봤다. 아내가 ‘아빠는 방학 중이야’라고 설명했다. 다시 마음을 잡고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세터 출신 최태웅 감독이 기회를 줬다. 테스트를 거쳐 입단한 황동일은 시즌 초반엔 원포인트 블로커, 백업 등으로 나섰다. 황동일은 "욕심을 부렸다면 지금까지도 적응을 못 했을 것이다. 이 팀에 오기 전 ‘0에서 시작하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감독님께서도 그걸 원했다. 다 내려놓고 임했기 때문에 조금 빨리 적응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황동일은 "삼성화재 시절부터 외국인선수에게 주는 높은 토스를 많이 연습해 다우디에게 올리는 건 자신있다. 조금 더 호흡을 맞춰야겠지만 타점이 좋은 선수라 잘 처리해준다"고 말했다. 이어 "(신)영석이는 최고의 선수라 아무렇게나 올려도 잘 처리한다"며 친구를 칭찬했다. 황동일 특유의 '공격본능'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최근엔 공격보다 토스에 집중하면서 그런 모습도 줄었다. 이날 경기에서도 2단 때 공격 대신 속공 토스를 올리자 상대가 완전히 속았다. 황동일은 "감독님도 공격은 내 장점이니까 살리라고 하신다. 오히려 내가 공격을 안 하면 상대가 속는 것 같다"고 웃으며 "감독님이 일러준 토스 폼과 타이밍으로 내 머리 속이 가득차 있다. 그래서 공격을 저절로 안 하는 듯 하다"고 설명했다.

경기장에서 활발하게 뛰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황동일은 행복하다고 했다. 황동일은 "아들이 배구 경기 보는 걸 좋아하고, 경기장에도 자주 온다. '아빠는 왜 경기를 안 뛰어'라고 대답했는데 요즘엔 자주 나가게 되어 아내와 아들도 좋아할 것 같다"고 미소지었다. 물론 여기서 만족할 생각은 아니다. 황동일은 “이제 진짜 시작이다. 다른 팀도 나에 대한 분석을 시작할 것이다. 수 싸움을 펼쳐야 한다.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자만할 실력도 아니다. 감독님과 이야기하면 다음을 준비하겠다”라고 했다.

천안=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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