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바른미래당에서 탈당한 유승민 의원 등 현역 의원 8명이 참여한 새보수당 창당식이 열리고 있다. / 이준헌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정당 이름에 ‘보수’를 넣어줘서 오히려 우리가 고맙죠.”
바른미래연구원 정두환 부원장(바른미래당 서울 금천 지역위원장)은 “바른미래당에서 탈당한 의원들이 당명에 새로운보수당(새보수당)이라고 ‘보수’를 넣는 순간, 그대로 남아 있는 바른미래당의 입지가 ‘중도’로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에게 바른미래당이 중도 정당으로의 이미지가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보수’라는 이념을 당명에 넣은 새보수당 쪽은 어땠을까. 당명을 정할 때 새보수당 내부에서는 일부의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혜훈 새보수당 의원(서울 서초갑)은 “보수라는 명칭을 넣을 경우 안철수계 의원들이 합류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면서 “중도를 표방하는 안철수계를 끌어안기 위해 넣지 말자는 주장이 있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보수의 선명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보수’ 명칭을 넣자고 적극 주장했고, 대다수의 의원들이 이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보수’라는 명칭에 대한 반대 의견은 새보수당이 청년·수도권 정당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수도권 유권자와 청년들이 낡은 보수를 싫어하는데, ‘보수’라는 용어가 들어갈 경우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의원은 “낡은 보수를 싫어하는 것이지 새 보수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선거를 앞두게 되면 각 정당은 자신의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한국 정치에서는 이념보다 더 분명한 색깔은 없다. 정책보다 더 확실하게 유권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정당 이름에 ‘보수’라는 이념 성향을 집어넣으면서 새보수당은 색깔을 분명히 했다. 구상찬 전 의원(새보수당·서울 강서갑)은 “총선에서 득표를 더 하겠다는 계산에서 보수란 명칭을 집어넣은 것이 아니라 중도로의 확장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보수의 선명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낫다는 차원에서 ‘보수’라는 명칭을 넣었다”고 말했다.
이혜훈 의원 “보수·중도 결합은 환상”
정치권에서는 새보수당이라는 명칭은 자유한국당이라는 제1야당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석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하기 직전 새보수당 의원들은 개혁보수신당이라는 가칭을 사용했다”면서 “당시 개혁보수신당은 새누리당과의 보수경쟁에서 우위를 지키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새보수당도 한국당과의 보수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새보수당의 명칭에 대해 “보수라는 명칭에서 보수대통합의 신호를 읽을 수 있다”면서 “새보수당이 각 지역구에서 열세인 상황에서 결국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합에서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새보수당의 ‘보수’라는 명칭은 바른미래당에서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혜훈 의원은 “바른미래당을 통해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중도가 결합하려는 시도는 환상이었다”며 “중도라는 막연한 호감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지지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보수의 색깔을 분명히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정당의 덩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순도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때문에 이물질이 섞이지 않는 선명한 보수를 지향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에 참여했지만 바른미래당으로 가지 않았던 이상돈 의원은 “우리나라와 같은 양당체제에서 중도가 제대로 자리 잡기 힘들다”면서 “개혁적 보수인 바른정당과 합리적 중도인 국민의당의 결합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합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무결점 중도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민주당과 가까운 중도 정당, 한국당과 가까운 중도 정당이 있는 4당 체제가 우리나라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새보수당의 창당은 총선을 앞두고 본래 색깔을 드러내야 유권자들의 표를 많이 얻을 수 있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총선을 앞둔 ‘진영본색’이라 할 수 있다. 새보수당의 ‘진영본색’에 대해 엄경영 소장은 “새보수당이라는 명칭이 보수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지지율이 어느 정도 확보되면 중도로의 확장성에는 하나의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의 실패→바른정당 출신 의원의 바른미래당 탈당→새보수당의 창당’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보수와 중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알게 된다. 바른미래당 내부에서 끊임없이 북한 핵 문제와 경제적·사회적 이슈를 놓고 논쟁을 벌인 이면에는 바른정당 계열의 의원과 국민의당 계열의 의원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었다. 결국 갈라질 때에도 바른정당계 의원들만이 탈당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국민의당에 있던 권은희 의원의 경우 ‘변화와 혁신을 통한 비상행동(변혁)’에서 신당 창당추진에까지 함께했지만 결국 새보수당 창당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바른미래당 내부의 양 세력의 결별은 보수와 중도라는 ‘정치적 DNA’가 서로 다름을 확인한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정현 의원은 탈진영으로 가닥
진영본색과 다르게 탈(脫)진영으로 방향을 튼 정치인도 있다. 한때 새누리당 대표를 맡았던 이정현 의원(무소속)은 새로운 정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이 의원은 “지금 시대에 보수냐, 진보냐라는 진영논리를 뛰어넘어야 한다”면서 “그래서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정당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겪으면서 보수와 진보 진영은 줄어들고, 이를 뛰어넘자는 중도세력이 더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정치복귀 선언 이후 일성은 ‘기득권 정치 타파’였다. 민주당과 한국당이라는 양대 정당을 싸잡아 비판한 것이다. 한국당의 보수, 민주당의 진보라는 진영을 뛰어넘는 ‘중도’를 표방한 셈이다. 정두환 바른미래연구원 부원장은 “지금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지지율이 40%, 한국당이 30%를 차지하고 있고, 바른미래당과 정의당이 10% 미만의 지지율을 갖고 있다”면서 “하지만 대안이 있다면 이를 지켜보겠다는 20∼30%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 부원장은 “총선에서는 늘 제3세력이 있어서 이인제·박찬종·정몽준·안철수 현상의 바탕이 됐다”면서 “지금까지는 대안이라는 선택지가 없을 뿐이지 안 전 대표가 정치에 복귀하면 새로운 제3의 표심이 움직이게 된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가 복귀함에 따라 4월 총선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 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안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중도가 맞붙는 형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 진영 간의 대격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장성철 연구소장은 “우리나라 정치에서 중도 정당은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2016년 총선은 국민의당이 호남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성공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중도 정당의 부각이 아닌 진영 간의 대결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총선에서 보수와 진보 진영 이외의 틈새시장은 좁다고 봐야 한다”면서 “결국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신문 최신기사
▶ 기사 제보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