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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이슈 [연재] 중앙일보 '김식의 야구노트'

[김식의 야구노트] 갈 곳 없는 푸이그…악평이 재능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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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쿠바 탈출한 야구 천재

기량 안 늘고 말썽 피워 외면당해

FA시장 찬밥, 아메리칸 드림 꺾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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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엘 푸이그.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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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최고의 재능’이라 불렸던 야시엘 푸이그(30)가 길을 잃었다. 야생마처럼 날뛰던 그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지만 불러주는 팀이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해 미국 포브스는 4일 ‘푸이그는 확실한 수퍼스타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기사를 썼다. 과거시제로 시작하는 이 기사는 푸이그의 처량한 현재, 그리고 암울한 미래를 담고 있다.

푸이그는 2013년 6월 LA 다저스에서 데뷔했다. 그의 첫 달은 MLB 역사에 남을 만큼 강렬했다. 6월 타율 0.436, 7홈런, 16타점을 기록하며 이달의 신인상과 최우수선수상을 싹쓸이했다. 데뷔한 달에 두 개의 상을 받은 건 MLB 120년 역사상 푸이그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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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엘 푸이그는 야구 전반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하지만 ‘문제아’로 낙인 찍혀 FA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야구라는 팀 스포츠에 맞지 않아서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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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m90㎝의 키에 떡 벌어진 어깨, 갑옷 같은 근육으로 무장했다. 푸이그가 정확히 때린 타구는 총알처럼 날아갔다. 그가 외야에서 던진 송구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고의 재능들이 모인 MLB에서도 푸이그는 단연 돋보였다.

그러나 푸이그의 타율은 2013년 0.319를 기록한 뒤 매년 떨어졌다. 30홈런을 넘긴 적도 없다. 환상적인 수비를 가끔 하지만, 무리한 송구로 까먹는 점수가 더 많다. 그러는 동안 푸이그는 서른 살이 됐다.

잠재력이 폭발하지 않았어도 푸이그는 여전히 평균을 넘는 선수다. 그가 FA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건 평판이 나빠서다. 포브스는 ‘푸이그는 총액 1억 달러(1150억원)를 받을 것 같은 선수였으나, 지금은 1년 800만 달러(93억원) 정도에 계약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지금은 개선됐지만, 그는 불평꾼이고 까다로운 동료였다. 가르치기 어렵고 집중하지 않는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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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엘 푸이그는 야구 전반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하지만 ‘문제아’로 낙인 찍혀 FA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야구라는 팀 스포츠에 맞지 않아서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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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선 점잖게 표현했지만, 푸이그의 좌충우돌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시즌 다저스에서 신시내티로 트레이드된 푸이그는 두 차례 난투극을 일으켰다. 7월 클리블랜드로 다시 이적했다. 시즌 막판에는 투수 땅볼을 치고 1루가 아닌 더그아웃으로 뛰어가 비난받았다.

다저스 시절에는 더 심했다. 어머니를 옆에 태우고 시속 177㎞의 속도로 과속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몇 차례 폭행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경기 후 구단 버스에 항상 늦게 탑승해 잭 그레인키와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2015년에는 클레이턴 커쇼가 푸이그의 트레이드를 구단에 요청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이 시기 푸이그의 성적도 뚝 떨어졌다. 야구가 잘 풀리지 않으면 그의 행동은 더 삐딱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저스 동료들한테 ‘왕따’ 당한다는 건 비밀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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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엘 푸이그는 야구 전반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하지만 ‘문제아’로 낙인 찍혀 FA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야구라는 팀 스포츠에 맞지 않아서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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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이그는 ‘야구의 나라’ 쿠바의 특급 유망주였다. 네 차례의 목숨 건 탈출 시도 끝에 2012년 쿠바를 빠져나왔다. 망명을 도운 마약 조직에 돈을 주지 않아 감금되기도 했다.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을 극복하고 미국 땅을 밟은 그는 7년 4200만 달러(487억원)를 받고 다저스와 계약했다. 쿠바 선수로는 최고 대우였다. 곧 세계 최고가 될 것 같았다. 부와 인기를 거머쥔 푸이그는 7년간 쉬지 않고 사고를 쳤다. 악평을 뛰어넘을 만한 실력은 키우지 못했다. 게다가 훈련 때 불성실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게 FA 시장 가치로 나타나고 있다.

푸이그가 우사인 볼트(34·자메이카) 같은 스프린터였다면 문제 되지 않았을 것이다. 패트릭 리드(30·미국)처럼 혼자 하는 골퍼였다면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팀 스포츠 야구는 다르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동료 타순에서 때릴 수 없고, 공을 대신 던질 수도 없다. 통제할 수 없는 야생마는 야생으로 쫓겨날지도 모른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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