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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광주'의 드넓은 뜻 수묵화로 담다, 하성흡 '일이관지'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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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광주'의 드넓은 뜻 수묵화로 담다, 하성흡 '일이관지'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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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 분관에서 개인전 ‘하성흡-일이관지’ 전을 열고 있는 하성흡의 ‘1980. 5. 21일 발포’, 176×143㎝,  한지에 수묵담채,  2017.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 분관에서 개인전 ‘하성흡-일이관지’ 전을 열고 있는 하성흡의 ‘1980. 5. 21일 발포’, 176×143㎝, 한지에 수묵담채, 2017.


감각이 예민한 작가들에게 개인적 경험은 작업을 숙성시키고 거듭나게 한다. 그 특별한 경험을 계기로 더 깊고 넓은 사유를 하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사회적, 국가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라면 더 그렇다. 사유는 작가로 하여금 작업에서 도전과 연구·실험을 하게 만들고, 연구와 실험은 주제든 기법이든 작업세계의 확장을 이끌고 이는 결국 작품으로 드러난다.

한국화가 하성흡(57)은 고교 3년 때 엄청난 경험을 해야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다. 그해 5월 그는 광주 한복판에 있었다. “역사 한 가운데에 있었죠. 사람들이 맞아죽고 총소리가 들리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것을 목도했죠. 국가폭력에 가치들이 유린될 수 있음을 봤죠.” 그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며 “그때 사회에 눈을 뜨고,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자면 의식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하성흡의 ‘그날 새벽’, 21×30㎝, 한지에 수묵.

하성흡의 ‘그날 새벽’, 21×30㎝, 한지에 수묵.


하 작가에게 ‘광주의 오월’은 거듭남의 계기를 훌쩍 넘어 아예 작업의 흔들리지 않는 근원이 됐다. 예술적 뿌리이자 작가로서의 존재 이유다. ‘오월’의 생생한 현장을, 시민들의 숭고한 뜻과 의지를, 나아가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먹과 붓으로 되새김질 한다. 5·18의 역사와 정신을 그림으로 기록한 역사화다. 광주의 오월을 중심에 둔 작가의 작업은 줄기를 뻗어 동시대 사람들의 삶과 그 삶의 풍경, 무등산·소쇄원 등 남도의 역사적 현장과 풍광의 재해석, 미적 감동을 주는 주변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다. 그 바탕에는 작품 2000여점에 이르는 성실함과 끈질김, 전통 화법에 대한 연구·실험을 통한 자신의 수묵화법이 자리한다.

그동안 은둔자처럼 작업하던 하 작가의 작품세계를 볼 자리가 마련됐다. 26일 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 분관에서 개막한 개인전 ‘하성흡, 一以貫之(일이관지) 전’이다.

하성흡의 ‘구례 들길’, 85×224㎝, 한지에 수묵담채, 2015.

하성흡의 ‘구례 들길’, 85×224㎝, 한지에 수묵담채, 2015.


작품전에는 광주의 오월을 다룬 작품을 중심으로 남도의 풍광이나 사람들의 땀 냄새나는 생생한 삶 등을 담은 90여점이 나왔다. 올해 초 그의 개인전을 마련하기도 한 이승미 행촌미술관장은 “작가는 그동안 방대한 작업을 하면서도 전시보다 여전히 옛 그림의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며 “이번 전시는 드러나지 않은 그의 화업을 감상하는 귀한 기회”라고 말했다.

시인 황지우(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는 전시문을 통해 “광주 오월에서 불끈 치솟은 그의 수묵 정신은 리좀(Rhisome)처럼 이 땅 곳곳에 뿌리를 내려 번지고 엉키고 있다. 우리 역사에 불현듯 융기한 ‘천개의 고원’들을 수묵 특유의 번짐과 엉킴을 통해 재역사화시키고 있다”며 “세태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수묵으로 일이관지해 먹을 갈고 붓을 빨고 있다”고 밝혔다.


하성흡의 ‘공재와 녹우당’, 116×85㎝, 한지에 수묵채색, 2016.

하성흡의 ‘공재와 녹우당’, 116×85㎝, 한지에 수묵채색, 2016.


이번 전시를 계기로 도록 ‘하성흡(한국현대미술선 43)’과 작품 1000여점의 실은 전작도록이 발간돼 작가의 작품세계가 중간 정리되는 성과도 낳았다.

광주민주화운동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의 일대기를 작업 중인 하 작가는 “‘나는 무슨무슨 작가다’라는 식의 규정을 하고 싶지 않다”며 “역사를 그리고 싶으면 역사를, 인물을 그리고 싶으면 인물을 그린다. 그리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1월8일까지.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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