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사가 개발한 개 형태의 로봇 ‘스폿(SPOT)’. 등에 달린 집게발로 문을 열 수 있고, 네 발로 걸으며 계단이나 평지 등을 자유자재로 이동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사 제공 |
‘지능을 갖춘 로봇이 인간을 공격한다’는 스토리는 매력적인 공상과학영화의 소재다. 1980년대에 시작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존재가 그것을 증명한다. 30년간 ‘로봇의 배신’이라는 한 가지 주제 의식으로 전 세계 관객의 호응을 얻어왔다.
1991년 개봉한 <터미네이터2>는 그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힌다. 전 세계적으로 5억달러를 벌어들였는데 당시로서는 엄청난 흥행 수익이었다. 원동력 중 하나는 높은 수준의 볼거리다.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연기한 ‘T-800’이 피부를 닮은 외피를 벗겨내 팔뚝의 금속 골격을 드러내는 장면은 지금 봐도 흥미롭다. 총탄을 맞아도 금세 구멍이 메워지는 금속 로봇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터미네이터2>가 인기를 얻은 가장 큰 이유는 ‘T-800’이 인간과 유사한 로봇이었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완벽하게 건강한 성인 남성인 데다 사람과 원활히 대화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을 갖췄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선 자신의 몸에 들어간 첨단 기술을 파괴해 인간과 전쟁을 벌일 인공지능 로봇의 출현을 근본적으로 막아야 한다며 용광로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기까지 한다. 뛰어난 신체 능력에 사람의 감성까지 더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로봇은 모두 ‘상상’이다. 과학기술의 발달 속도가 매우 빠르다고는 하지만 시민의 일상에 ‘똑똑한 로봇’이 개입돼 운영되는 사회는 지금까지 지구상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매사추세츠 주경찰은 올해 8월부터 11월까지 보스턴 다이내믹스사가 만든 네 발로 걷는 지능형 로봇 ‘스폿(SPOT)’을 임차해 사용했다. 이 사실이 주목을 끄는 건 생물의 움직임과 모양새를 흉내 낸 로봇이 인터넷 동영상이나 실험실을 빠져나와 시민이 돌아다니는 길거리로 나온 사실상의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스폿은 개와 비슷하게 생겼다. 키는 성인 남성의 무릎 높이인데 막대형 몸통에 네 발이 달렸다. 날씬한 생김새 때문에 전체적인 느낌은 탄탄하게 근육이 붙은 개 품종 도베르만과 비슷하다. 보행 속도는 초당 1.6m로 사람이 살짝 빠르게 걷는 수준이다. 동력은 모터에서 나오는데 한 번 충전하면 90분을 움직인다. 방수 기능이 있는 데다 영하 20도~영상 45도 사이에서 운영할 수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사가 공개한 동영상에선 이런 조건을 바탕으로 한 스폿의 전천후 운영 능력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작업자가 자리를 뜨자 스폿이 몸을 벌떡 일으켜 공장 내 순찰을 시작한다. 잔해가 어지럽게 흩어진 현장의 비탈면을 걸어 올라가더니 어두운 창고에서 조명을 켠 채 돌아다니고, 닫힌 문을 등에 달린 집게손으로 잡아 열어젖힌다. 다른 작업자와 충돌할 뻔하자 주춤거리며 걷는 속도를 줄이기까지 한다.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 주경찰
보스턴 다이내믹스사 로봇 임차
폭탄 처리반 배속해 임무 수행
매사추세츠 주경찰은 스폿을 임차해 폭탄 처리반에 배속했다고 밝혔다. 임차한 3개월 동안 사고 현장에 두 번 출동해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이 들어가기에는 위험한 현장에 초기 진입하는 역할을 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민첩한 이족보행 로봇도 개발 중
로봇 병사 현실화는 시간문제
어느 수준까지 활용할지 등을
명확히 설정, 규제 필요성 지적
이족보행 로봇 ‘아틀라스(Atlas)’. |
보스턴 다이내믹스사는 두 발로 걷고 팔도 움직이는 로봇 ‘아틀라스(Atlas)’도 개발 중이다. 최근 공개한 동영상에선 인간의 몸을 닮은 키 1.5m짜리 로봇이 앞구르기를 하거나 다리를 벌려 펄쩍 뛰어오르는가 하면 몸을 360도 휙 돌리는 모습도 담겼다. 웬만한 보통 사람보다 훨씬 민첩하다. 유범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이런 형태와 움직임을 보이는 이족보행 로봇이 민간시장에 진입할지에 대해서 “지금까지 보스턴 다이내믹스사가 공개한 영상을 놓고 보면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과학계에선 “보스턴 다이내믹스사의 로봇에는 ‘지능제어’ 기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다. 사람이 일단 목표 지점을 정해주면 무릎을 들어 장애물을 피하고 몸의 중심을 잡아 이동하는 ‘동작 중심’의 지적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사람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인데, 자주적인 판단을 내려 알아서 움직이는 높은 수준의 인공지능은 갖추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기술의 추세를 봤을 때 지금보다 똑똑한 로봇의 출현은 시간문제라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이 때문에 로봇과 관련한 법적 지위의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사추세츠 주경찰이 현장에서 로봇을 활용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미국시민자유연맹 케이드 크록포드 대표는 최근 성명에서 “정부는 새 기술을 적용하려는 계획에 대해 대중에게 더 투명해야 한다”며 “인공지능 시대에는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 같은 국가기관이 로봇을 활용한다면 어떤 임무에 어느 수준까지 활용할지 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더 큰 걱정은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로봇 병사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다. 일선 전투 현장에선 초보적인 로봇이 이미 정찰용이나 제한적인 방어용으로 활용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사 측은 “로봇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활용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후쿠시마 원전 같은 재난 현장에서 쓰이기를 바란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국제 현실에서 인명 손실을 줄이기 위해 ‘로봇 병사’를 투입하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에서 만든 로봇 병사가 개발도상국의 인간 병사와 맞부딪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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