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프로게이머 서진혁(닉네임 카나비) 선수가 ‘노예 계약’에 놓여 있었다는 일명 ‘카나비 사태’가 일파만파다. 사건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 27일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답변 대상’이 됐다. 지난 20일 청원이 시작된지 1주일만이다.
지난 20일 시작된 ‘카나비 사태’ 재조사 국민청원은 20만명 이상이 참여해 청와대 답변 대상이 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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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 반발이 이어지자, LOL을 제작·서비스하는 라이엇 게임즈는 지난 27일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서 선수의 계약은 무효화해 자유계약(FA)으로 풀어줬다. 서 선수의 원 소속팀인 ‘그리핀’ 모기업 ‘스틸에잇’에겐 경영진 사퇴를 요구했다. 또 사건을 처음 폭로한 김대호(닉네임 씨맥) 그리핀 전 감독에 대한 징계를 유예하고, 사법 기관 등 외부 기관을 통한 재조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김 전 감독은 그리핀 전 대표 조규남이 ‘갑질’을 해왔고, 서 선수 등이 불공정 계약에 시달렸다고 폭로한 인물이다. 하지만 불공정 계약과 별개로, 최성원(닉네임 소드) 등 일부 선수들은 김 전 감독에게 폭언·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지난 20일 LCK(한국 롤 e스포츠 리그) 운영위원회는 자체 조사를 통해 조규남 전 대표와 김 전 감독에게 무기한 출전 정지 조치를 내렸다.
징계는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사건을 폭로한 김 전 감독과, 불공정 계약을 주도한 조 전 대표의 징계 수위가 같을 수 없다는 반발이다. 게이머들 사이에선 "내부고발자인 김 전 감독이 보복성 징계를 받았고, 폭언·폭행을 당했다는 일부 선수 주장은 거짓·과장"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라이엇의 재조사 선언은 이런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다.
◇ 하태경 의원 불공정 계약서 공개... 게이머 ‘미성년자 인신매매’라며 분노
사건의 또다른 주인공은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다. 하 의원실이 공개한 서 선수의 계약서에는 ‘30일 이상 입원하거나 중대한 질병·상해로 선수활동을 지속할 수 없을 경우’,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소속팀이 계약을 즉시 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겼다. ‘연락이 두절되면 계약을 해지하고 그간 지급한 모든 돈에 5000만원을 더한 금액을 선수에게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과 함께, 임대 기간은 계약기간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었다.
LCK 리그 내 최대 계약기간은 3년이지만, 그리핀은 서 선수와 4년 계약을 맺은 후 1년 6개월간 중국에 임대를 보냈다. ‘꼼수’를 부려 계약 기간을 늘리고, 팀은 임대료를 챙긴 정황이다. 임대 당시 미성년자이던 서 선수를 조 전 대표가 협박한 정황도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게이머들은 그리핀 전속 법률자문로펌 ‘비트’와 서진혁 에이전시인 ‘키앤파트너스’가 같은 곳임을 밝혀냈다. 선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할 에이전시가 소속팀 법률자문을 함께 맡은 것이다. 이는 변호사법 제31조 '쌍방대리금지법'에 위배된다.
불공정 계약 사실이 밝혀진 ‘카나비’ 서진혁. /그리핀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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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키앤파트너스 소속 최모 변호사가 그리핀 소유주인 스틸에잇의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린 점도 확인했다. 상법에 따르면 ‘회사와 거래관계 등 중요한 이해관계에 있는 법인의 이사·감사·집행임원 및 피용자’는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 게이머들은 "미성년자거나 20대 초반인 선수들을 소속팀과 로펌이 불공정 계약으로 착취한 정황"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 미성년자 대다수인 프로게이머… e스포츠 계약관행 변해야
게이머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e스포츠 계약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프로게이머는 데뷔 기회가 한정돼 있고, 대다수가 10대에 선수 생활을 시작해 불공정 계약에 취약하다. 한국e스포츠협회(KeSPA)가 마련한 e스포츠 표준 계약서가 있지만, 실제 이 계약서가 활용되는 일은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엇게임즈는 재발 방지를 위해 LCK 내 계약서를 전수조사하고 표준계약서를 마련할 계획이다. 또 공정성 확보 및 선수 권익보호를 위한 후속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폭언·폭행을 두고 김 전 감독과 선수들간의 진실공방도 남아 있다. 양측 주장이 갈리지만, 게이머들은 김 전 감독 주장을 신뢰하는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선수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도 이어지고 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김 전 감독에 대한 최초 징계가 보복성으로 해석될 만큼 과했고, 결과적으로 선수와 소속팀, 라이엇이 ‘한몸’으로 비쳐졌다"며 "감독과 선수는 갑·을 관계인 만큼, 사법기관 조사에서 폭언·폭행 사실이 확인된다면 김 전 감독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봤다.
윤민혁 기자(behereno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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