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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종합] 美 압박 속 끌어낸 지소미아 중단 유예...불씨는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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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 한 숨 돌리지만 일본 예상 외 '냉담'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한일 경제전쟁이 여전히 격렬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청와대가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의 종료를 유예하며 정국은 다시 요동치고 있다. 22일 오전만해도 문재인 대통령은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는 업체를 찾아 일본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였으나, 오후들어 청와대 내부 기류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 가운데 극적 반전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표면적으로는 사태를 관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미국의 압박에 한국과 일본 모두 한 발 물러섰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는 일단 "다행"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지소미아 중단을 유예하며 조건을 내걸었으며, 일본은 징용공 문제와 경제전쟁은 별개의 사태라고 선을 긋는 등 두 나라의 엇박자는 여전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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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적 결단, 지소미아 중단 유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인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춘추관에서 지소미아 중단 유예 사실을 밝히며 "우리 정부는 언제든지 한일 군사 비밀정보보호 협정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 1차장은 이어 "한일 간 수출 관리 대화가 정상 진행되는 동안 일본측의 3대 품목 수출규제에 대해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절차를 정지시키기로 했다"고 부연했다.

극적인 반전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오전 충남 천안 MEMC코리아에서 열린 ‘실리콘 웨이퍼 2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우리 반도체 산업 경쟁력에 소재ㆍ부품ㆍ장비(소부장) 공급이 안정적으로 뒷받침된다면 누구도 대한민국을 흔들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일본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현재의 강공모드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지난 8월 15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침략과 분쟁의 시간이 없지 않았지만, 동아시아에는 이보다 훨씬 긴 교류와 교역의 역사가 있다"고 언급한 문 대통령 의지의 연장선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황 대표에게 "지소미아 문제가 잘 정리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계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국익을 위한 원칙 있는 외교의 승리”라며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수용한 정부의 결단을 환영한다”고 밝혔으며 자유한국당도 "우리가 요구해온 지소미아 유지가 받아들여졌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정부의 행보가 지나치게 강경했고, 유연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환영의 목소리는 재계도 마찬가지다. 지소미아 중단 결정이 유예됨에 따라 경색된 한일관계가 일부 풀려 새로운 활력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지난 15일 도쿄에서 일본 경제단체연합회와 만난 뒤 "일본에서도 지소미아 문제가 원만하게 풀리기를 바란다"며 에둘러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극적인 지소미아 중단 유예 결정의 배경에는 미국의 역할이 결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미국은 한국이 지소미아 중단을 선언했을 당시 직접적인 개입의사를 밝히지 않은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며 사안에 거리를 두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미국은 외교 라인을 총동원해 그동안 한국과 일본 정부를 지속적으로 압박했고, 그 결과 두 나라가 한 발 물러서는 성과를 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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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는 미묘하네

극적인 지소미아 중단 유예 결정이 내려졌으나, 한일 두 나라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이 조건부 지소미아 중단 유예를 선언한 장면에 시선이 집중된다. 이는 일본의 수출규제와 지소미아 현안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지소미아 카드를 통해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된 양보를 받겠다는 의지가 깔렸다는 것이 중론이다. 두 사안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 셈이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수출규제가 동일선상에 있다는 인식의 연장선이다.

반면 일본은 지소미아와 수출규제를 분리하고 있다. 실제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은 지소미아 중단 유예 결정이 난 후 "당연히 지소미아와 수출관리 문제는 별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이 WTO 제소 중단을 꺼내든 장면도 해석이 엇갈린다. 한국은 WTO 제소 중단을 말 그대로 잠정적인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만약 일본이 계속 수출규제를 유지할 경우 언제든 WTO 제소에 다시 나선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일본은 협의를 시작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이이다 요이치(飯田陽一) 경산성 무역관리부장은 "과장급 준비를 거쳐 국장급 협의를 실시해 수출관리에 대해 재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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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떻게 될까

지소미아 중단 유예가 결정되며 한일 두 나라의 충돌은 일단 진정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김정민 동북아네트워크 연구소 부소장은 "지소이마 중단 유예는 방식이 어떻든 두 나라의 출구전략이 될 수 있다"면서 "최소한의 완충지대가 생긴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부소장은 이어 "국가와 국가의 신경전에는 명분이 필요하며, 한국의 지소미아 중단 유예로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으로 펼쳐질 지소미아 중단 유예 정국을 미국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구정휘 국제리더십인사이트포럼 수석연구원은 "미국은 중국과 무역전쟁은 물론 세계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으며, 그 연장선에서 한국과 일본이 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미국이 전방위적인 압박으로 한일 두 나라를 물러나게 만들었으며, 앞으로의 상황 전개도 이를 기점으로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만약 한일 두 나라의 관계가 악화되어 한국이 다시 지소미아 중단 카드를 시사한다면, 미국이 한국을 대상으로 관세 규제에 돌입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미국의 시각으로 지소미아 사태를 보는 자세의 연장선이다. 아직은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미국 중심의 사태파악에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지소미아 중단 유예 결정으로 희망섞인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일본이 WTO에 있어 최소한의 협상 창구를 가동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기체 불화수소(에칭가스)에 이어 액체 불화수소까지 수출길을 열어준 상태에서 일본도 자국 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해 조금씩 협상장으로 나오고 있다는 기대감이다. 인천에서 화공수출 사업을 하는 A 대표는 지소미아 중단 유예 결정에 따른 일본의 WTO 채널 가동을 두고 "일본이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있다는 뜻 아니냐"고 반문하며 "오랜만에 기분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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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국내 4대그룹 관계자는 "사실 일본의 경제제재로 인해 엄청난 공포가 번졌으나 이후 생각보다 큰 혼란은 없었다. 일부 소재 국산화 성과가 나오며 리스크를 상쇄하기도 했다"면서 "다만 일본이 수출길을 마음대로 제어하는 상황에서 국내 경제계의 불확실성이 컸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번 지소미아 중단 유예로 이러한 불확실성이 일부 걷혔다는 것은 고무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부 내부에서는 일본이 지소미아 중단 유예를 기점으로 수출 절차를 다시 개정해 몇몇 품목을 포괄허가로 돌릴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다만 일본이 여전히 지소미아와 수출규제를 엄격하게 분리된 사안으로 지목하는 장면은 불안요소다. 김정민 부소장은 "일본은 징용공 문제와 수출규제, 그리고 지소미아와 수출규제를 모두 분리하고 있으나 한국은 이를 하나로 보고 있다"면서 "서로 보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지금이야 말로 냉정한 자세로 외교적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진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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