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사다코 전 유엔난민고등판무관. 로이터연합뉴스 |
1990년대 분쟁 지역을 누비며 난민 보호 활동을 펼쳐 ‘난민의 어머니’로도 불린 오가타 사다코(緖方貞子) 전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이 별세했다고 29일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1855~1932년) 전 총리의 증손녀로 192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유소년기를 해외에서 보내고 세이신(聖心)여대를 졸업했다.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석사,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에서 박사를 취득한 뒤 국제정치학자의 길을 걸었다. 1968년 국제정치에 대한 식견과 영어능력을 평가받아 유엔의 일본 정부 대표 고문에 취임한 것을 계기로 유엔 활동에 뛰어들었다. 1976년 일본에선 처음으로 여성 유엔 공사가 됐고, 유엔 인권위원회의 일본 정부 대표 등을 역임했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간 일본인으로는 처음 UNHCR 사무소의 고등판무관을 맡았다. 재임 중 유고슬라비아와 소련 붕괴에 따른 분쟁, 르완다 학살 등으로 많은 난민이 발생하는 사태가 잇따르자 현장을 찾아 난민 지원을 지휘했다. 분쟁 당사자와의 대결도 불사하는 의연한 자세는 폭넓은 지지를 얻어 “민중 시점에 선 평화활동가의 상징적 존재가 됐다”고 마이니치신문은 평가했다.
특히 취임 직후 이라크 북부에서 피난한 쿠르드인 140만명이 터키 입국을 거부당하자 이들의 지원을 결정했다. 그때까지 국가를 탈출한 난민을 지원대상으로 하고 있었던 UNHCR이 국가에 의해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국내 피난민의 지원에도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그는 또 국가 중심 안보의 대안 개념으로 분쟁과 빈곤 등 모든 위협으로부터 사람들의 생존과 존엄을 지키는 ‘인간 안보’의 중요성을 제기했다. 2012년 유엔에서 ‘인간 안보’를 중시하는 결의가 전원일치로 채택됐다.
2001년에는 아프간부흥지원회의 일본 정부 특별 대표, 공동의장을 맡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때인 2002년 경질된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무상 후임 등 두 차례에 걸쳐 외무상 입각을 제의받았으나 모두 고사했다. 2003년에는 그때까지 외무성 출신이 맡았던 일본 국제협력기구(JICA) 이사장에 취임, 2012년까지 역임했다.
고인은 2000년 난민구호 활동을 통해 인도주의를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5회 서울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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