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정보유출 의혹 관련 증언…"구체적 지시는 아니었다"
"헌재에서도 역할 인식해 '스파이'라 부르기도…모호한 상황"
법정 향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헌법재판소에 파견돼 헌재 내부 동향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법관이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과 박병대 법원행정처장 등이 발령 인사 자리에서 '중요한 일이 있으면 바로 알려달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2015∼2018년 헌재에 연구관으로 파견돼 일한 최모 부장판사는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렇게 증언했다.
그는 헌재에 파견돼 근무하는 동안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통해 심리 중인 사건의 진행 상황과 헌재 구성원들의 동향 등을 수집·보고했다.
그가 보고한 내용 가운데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과 관련된 서류들과 고영태씨의 녹취록 등도 포함됐다.
최 부장판사는 2015년 3월 파견 법관들이 발령 인사를 하러 가자,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법원행정처장 등이 "헌재 파견 법관들이 최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바로 알려달라는 취지로 당부했다"고 했다.
박 전 처장이 "파견 나온 검사들은 친정인 법무부나 대검을 위해서 노력한다는데, 헌재 파견 판사들은 한정위헌 보고도 하고 그런다더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최 부장판사는 증언했다.
최 부장판사는 "지금 생각하면 (사건을) 미리 좀 알려달라는 취지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면서도 "다만 당시 분위기는 구체적인 지시를 한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또 자신으로부터 헌재 내부 정보를 직접 보고받았던 이 전 상임위원으로부터 누구의 지시가 있었는지, 누구에게 이를 보고하는지 등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이 전 상임위원이 자신에게 "행정처 차장이 인사평정권자임을 잊지 말라"며 "민감한 정보가 있으면 바로 전달해달라"고 강압적인 요구도 받았다고 했다.
당시 상황을 두고 "당시 당황할 정도로 혼이 났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다만 최 부장판사는 자신이 법원행정처에 헌재 내부 정보를 알려준 것이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불확실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의 변호인이 "법원행정처 수뇌부가 판사에게 '헌재에 간다고 헌재 편이 되지 말라'고 한 것은 양 기관의 재판권 충돌 문제를 슬기롭게 극복하자고 강조한 것을 나이브하게(순진하게) 표현한 것 아니냐"고 묻자 최 부장판사는 "그런 뜻이 아닌가 한다"고 답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자신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사이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헌법재판소 측에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시 헌재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대법원에 의견을 전하거나 구해야 할 일이 있으면 자신을 불러 전하고픈 내용을 알려주곤 했던 사례 등을 거론했다.
최 부장판사는 "헌법재판관들도 저를 '법원 스파이'라고 많이 놀리긴 했다"며 "제가 참 모호한 상황 속에 놓였던 사람"이라고 난감한 처지를 설명했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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