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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K-POP] 대서사 이루는 세계관…K팝 성공 비결, 어벤져스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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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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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헐크, 스파이더맨, 토르, 블랙위도, 캡틴마블. 마블유니버스의 수많은 히어로들은 '어벤져스'라는 이름으로 한데 뭉친다. 이들의 목표는 악당을 물리치고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 영웅들을 하나의 무대로 끌어들이는 세계관이기도 하다. 각각 '씨줄'로만 존재했던 히어로들의 개별 이야기들은 세계관이라는 '날줄'을 만나 전체 시리즈의 유기성을 강화했다. 팬들은 아이언맨, 토르, 헐크 등 콘텐츠에서 연결고리를 찾아 'N차 관람(여러번 보기)'을 이어갔다. 이 세계관 전략 덕분에 어벤져스 시리즈는 200억달러(약 23조600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 '스토리는 일시적이지만 세계관은 영원하다'는 명제가 콘텐츠 업계의 진리로 통하게 만들었다.

K팝 성공 신화도 '어벤져스'와 통한다. 아이돌만의 세계관에 칼군무와 중독적인 사운드를 덧대 기존 팬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음악을 창조했다. 세계관에 빠진 팬들은 뮤직비디오 속 '떡밥(흥미 있는 주제와 상황을 속되게 이르는 말)'들을 해석하고 다음 앨범 콘셉트를 예측한다. 마블 영화 끝자락의 쿠키 영상을 해석하며 다음 콘텐츠를 기대하는 어벤져스 팬들과 똑 닮았다. 대중문화 평론가 문용민(필명 미묘)은 "음악에 서사적인 구조를 구축함으로써 청취자의 감상 폭을 대폭 넓혔다"고 분석했다.

◆ '세계관 아이돌' 시대 연 엑소

'세계관 아이돌' 시초는 SM엔터테인먼트 보이밴드 엑소(EXO)다. 판타지적 요소를 과감히 차용해 세계관 아이돌의 첫 장을 열었다. 그룹명은 태양계 외행성을 뜻하는 엑소플래닛에서 따왔다. 미지의 세계에서 온 새로운 스타라는 의미다. 기억을 잃은 채 지구에 떨어진 엑소 멤버들이 초능력을 되찾고 적을 물리치는 스토리가 중심이다.

이를 해석할 만한 장치를 뮤직비디오에 배치하면 팬들은 이를 토대로 2차 창작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콘서트 이름도 세계관을 연상케 하는 '엑소 플래닛'이다. 일부 팬들은 '엑소학(學)'이 필요하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한동윤 대중음악 평론가는 "세계관 콘셉트의 장점은 다음 앨범의 콘셉트를 기대하게 만든다는 것"이라면서 "특히 한국말이 어려운 외국인에게는 이런 시각적인 요소를 기반으로 세계관을 해석하는 재미가 더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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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 아이돌' 전성기 만든 BTS

엑소가 세계관 아이돌의 시작이라면, 방탄소년단(BTS)는 세계관 아이돌의 최전성기를 연 주역이다. BTS 세계관은 각각 아픔을 가진 소년 7명이 함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낸 후 펼쳐지는 이별 이야기가 중심이다. 다시 만나려고 해도 운명은 얄궂게 그들 중 한 명을 죽음으로 이끈다. 맏형 석진은 우연히 얻게 된 시간여행 능력으로 그들만의 행복한 과거로 돌아가려 하지만 매 순간 새로운 비극이 찾아온다.

팬들은 뮤직비디오를 수없이 반복해 보면서 숨겨진 떡밥을 찾아 헤매며, 다른 팬들과 자신의 해석을 비교분석하기도 한다. 이 세계관 구축으로 팬클럽 '아미'는 세계에서 가장 큰 팬덤으로 성장했다. BTS가 '21세기 비틀스'(영국 BBC) '세계에서 가장 큰 보이밴드'(영국 가디언)로 수식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BTS 세계관은 다양한 콘텐츠 판매로도 이어졌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월 BTS 세계관을 다룬 웹툰 '화양연화 Pt.0 세이브 미'를 출시한 데 이어 3월에는 소설 '화양연화 더 노트'까지 발매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글로벌 팬들은 과거 출시된 뮤직비디오를 재학습(?)하는 등 BTS 세계관에 다시 한 번 푹 빠져 들었다.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지난 8월 기자간담회에서 "BTS 세계관을 구현한 드라마를 선보일 계획"이라면서 다양한 콘텐츠 제작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뉴이스트도 빼놓을 수 없는 세계관 아이돌이다. 뉴이스트는 데뷔부터 '여왕의 기사'라는 콘셉트를 잡았다. 여왕을 구하기 위해 다섯 기사들이 여정을 펼치는 이야기다. 데뷔 이후에 부진한 성적으로 이 세계관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2017년 엠넷 '프로듀스101' 출연 이후 뉴이스트가 톱 밴드 중 하나로 부상하면서 세계관 역시 다시 주목받았다. 21일 컴백을 앞둔 뉴이스트가 이번 앨범에서 어떤 서사를 이어갈지 팬들 관심도 커지고 있다. 문용민 평론가는 "엑소와 뉴이스트가 데뷔했던 2012년 만해도 세계관 전략이 아직 설익은 부분도 있었는데, 최근 들어 구현 방식이 세련되면서 팬들의 선호도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 마블식 무한 확장도 꿈꿀 수 있을까

아이돌 세계관의 또 다른 매력은 그 잠재력에 있다. 각 그룹이 구축한 세계관이 하나로 융합되면서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내비치기 때문이다. SM엔터테인먼트가 최근 결성한 '케이팝 어벤져스' 슈퍼엠은 팬들 사이에서 엑소와 NCT의 세계관 융합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BTS 동생 그룹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도 세계관 구축에 성공적인 한발을 내디뎠다. 빅히트가 최근 공개한 TXT 1집 정규앨범 트레일러 영상에는 대형 고래가 멤버들과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BTS '하트비트' 뮤직비디오의 고래 영상과 유사하다. 음악, 안무, 뮤직비디오 연출 등 다양한 부분에서 연결성도 엿보인다. BTS 세계관과 TXT 세계관이 하나로 확장되리라는 해석의 여지가 열린 것이다. 이 같은 세계관의 공유는 BTS 팬들의 호기심을 TXT로 이어지게 만든다. 세계 최대 팬덤을 자랑하는 BTS 팬덤 아미가 세계관과 스토리를 공유하는 TXT의 세계관에 접속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소속사 내에서 융합을 넘어 회사 간 세계관 융합도 기대할 수 있을까. 최근 마블유니버스를 소유한 디즈니가 21세기폭스를 인수하면서, '데드풀'과 '엑스맨'이 어벤져스에 합류할 지 관심이 쏠리는 것처럼.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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