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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악몽 같던 평양의 2박3일, 북측 책임 물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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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선수단 “안 다치고 복귀 다행”

축구협회, FIFA·AFC에 제소 검토

중앙일보

평양 원정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파울루 벤투 축구 대표팀 감독이 인터뷰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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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이 17일 새벽 귀국했다. 이로써 29년 만에 열린 남자축구 평양 남북대결 일정이 모두 마무리됐다. 2박3일간 대표팀과 동행했던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악몽 같았다”고 했다. 선수들도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선수단이 털어놓은 평양 체류기간 뒷얘기는 황당무계 그 자체다. 14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입국신고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선수단은 북측 공항 관계자로부터 “소지품 종류와 수량까지 빠짐 없이 적어서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로 인해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만 3시간이 걸렸다. 선수단 버스는 시속 50㎞ 안팎으로 저속주행하며 시간을 끌었다.

평양 남북대결이 ‘깜깜이 경기’가 된 건 북측이 선수단의 인터넷 사용을 일부러 제한했기 때문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주최 대회의 경우 홈팀은 경기장에 국제 전송이 가능한 속도의 인터넷 회선을 설치해야 한다. 북한은 이 규정을 어겼다. 김일성 경기장 미디어 센터에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컴퓨터는 단 한 대였다. 그나마 송수신 속도가 느려 이메일을 보내기에도 벅찼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숙소(고려호텔)에 돌아와서야 국내에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북측 관계자가 지켜보며 내용을 감시했다.

훈련이나 경기를 마치고 숙소 호텔에 돌아온 이후 대표팀은 사실상 감금 상태였다. 호텔 주변 산책도 허용되지 않았고, 지하층의 기념품 매장도 이용할 수 없었다. 남측에서 대표팀과 연락이 두절돼 당황하던 시간, 대표팀도 평양에서 육체적·심리적 스트레스를 견디고 있었던 셈이다. 대표팀 주장 손흥민(27·토트넘)은 “무승부(0-0)는 아쉬운 결과지만,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경기는 거칠었고, 북측 선수들은 예민했다”고 말했다.

축구협회는 국제축구연맹(FIFA) 또는 아시아축구연맹(AFC)에 북측의 이번 일련의 조치를 제소할지 검토 중이다. 평양 체류 중의 여러 불편함부터 응원단·취재진 방북 불허, 무관중 경기까지, 북측의 비상식적 조치를 짚어보겠다는 것이다. 선수단장 자격으로 평양에 다녀온 최영일(53) 축구협회 부회장은 “협회 차원의 회의를 열어 (제소와 관련한) 규정을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응에 소극적인 분위기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경기는 남북한 합의에 의한 스포츠 교류가 아니라 월드컵 예선전이었다”며 “(북측이) 경기 관련 규정을 위반한 게 있다면 축구협회 차원에서 제소하는 절차가 있다”고 말했다. 북측 책임을 따지는 데 정부가 앞장 서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과연 제재 요구가 가능할까. 핵심 쟁점을 짚어봤다.

Q : FIFA 또는 AFC에 북한축구협회 제재를 요구할 수 있는 사안은 어떤 것인가.

A : “크게 두 가지다. 취재진·응원단·중계진의 방북 비자 발급에 협조하지 않은 부분과 경기장에서 미디어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은 부분이다. 무관중 경기도 특이한 일이지만, 입장권 판매는 홈 경기 개최권을 가진 쪽 고유 권한이다. 예고 없이 포기해도 제재 대상은 아니다.”

Q : 제재를 요청할 수 있는 근거는.

A : “AFC 경기 운영 매뉴얼 33조 2항에 의하면 ‘홈 경기 개최권자는 AFC의 사업 파트너(중계권자 포함)와 공식 상품화권자, 미디어 및 원정 서포터즈의 비자 발급을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돼 있다. FIFA 월드컵 예선 규정 26조 5항에는 ‘홈 경기를 개최하는 축구협회는 취재진을 위해 전원과 인터넷 연결을 지원해야한다’는 조항이 있다.”

Q : 실제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은.

A : “엄밀히 말해 높지 않다. 비자 관련 조항은 의무가 아니라 권고 사항이다. 인터넷 부분은 추후 FIFA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해당 사항 위반 시의 처벌 규정이 따로 없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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