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경제적 이성의 광기>
데이비드 하비 지음 | 김성호 옮김 | 창비 펴냄 | 2만8천원
데이비드 하비는 1935년 영국에서 태어난 지리학자이자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다. 살아 있는 가장 중요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꼽힌다. 연구 분야는 지리학에서 시작해(1961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켄트 지방 농업과 농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치경제학적 공간 분석을 중심으로 세계화와 도시·환경 문제, 사회정의, 근대-탈근대 논의, 신자유주의 등 사회과학의 여러 영역에 이른다. 그러면서 펴낸 서른 권 남짓한 저서가 세계 각국에 소개됐다(한국어로는 열댓 권 번역됐다).
기존 분과학문 질서를 넘나드는 광폭 행보는 그의 학문·사상적 뿌리인 카를 마르크스를 닮았다. 마르크스가 그랬듯, 하비의 목표는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가져온 혁명적 변화와 이에 동반한 모순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다. 하비의 전공인 지리학은 이런 비전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기 위한 캔버스에 비유할 수 있겠다. 물론 지리학 분야에 한정해서도 그는 세계적 석학으로 꼽힌다. 이런 종류의 ‘르네상스형 지식인’으로 에릭 홉스봄, 놈 촘스키, 에드워드 사이드 등이 떠오른다.
하비는 마르크스의 자본 연구에 각별히 공들여왔다. 그뿐 아니라 40여 년 동안 대중을 위한 <자본> 강독을 이어오고 있다. 강의는 모두 온라인에 동영상(davidharvey.org)으로 공개됐다. 연구와 강연을 정리한 단행본도 꾸준히 출간해왔다.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자본이라는 수수께끼> <자본의 17가지 모순> 등이 나와 있다. <자본주의와 경제적 이성의 광기>(원제: Marx, Capital and the Madness of Economic Reason)는 2017년에 나온 최신작이다.
편집자로서 먼저 내세우고 싶은 것은 마르크스 <자본> 개설서 가운데 단연 잘 읽히는 점이다. 복잡한 논의를 꿰뚫는 통찰이나 필력에 더해 강단을 넘어 실천해온 대중교육 경험 덕분이리라. 번역자(김성호 서울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의 정확하고 유려한 문장도 큰 몫을 했다. 학창 시절 <자본>을 비롯해 마르크스주의 여러 저작, 그중에서도 정치경제학 책 속에서 헤매본 사람이라면 이 책만큼은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도 괜찮을 듯하다.
이 책의 미덕이 훌륭한 개설서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엔 마르크스 이론을 충실히 설명하면서도 하비의 독창적인 해석과 논평이 결합해 있다. 그 핵심 논지는 ‘운동하는 가치’로서 자본이 순환(저 유명한 공식 M(자본)-C(상품)-P(생산과정)-C(상품)-M(자본 재투자))해 무한 축적을 이루려 하나 ‘이윤을 낳는 자본’의 본성 때문에 오히려 가치에 반하는 움직임을 불러일으키고 이것이 지속해 위기가 폭발한다는 것이다. 하비는 이른바 ‘이윤율 저하 경향과 자본주의 생산양식 위기’를 가치-반가치의 변증법적 관계로서 재해석하고 자산투기로 집중, 과학기술 물신주의, 국가-금융 연계, 위기의 ‘공간적 해결’ 등 마르크스가 미처 예견하지 못했거나 충분히 이론화하지 못한 상황을 해명함으로써 이 순환운동을 보완 설명한다.
마르크스 가치이론 성립부터 차근차근 풀어가는 서술 덕분에 <자본>을 (1권만이라도) 넘겨본 경험이 있다면 꽤 수월하게 읽어낼 수 있다. 그렇다고 “거봐라, 마르크스가 다 옳았다”라고 강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르크스 여러 저서에 흩어져 있는 난점이나 (의도적인 또는 불가피한) 한계를 가려내주는 덕분에 방대한 논의에 깃든 ‘합리적 핵심’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중반부터는 현재 금융시스템이나 기술혁신, 국제경제기구를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한층 실감 나게 넘어간다. 하비가 위기의 극적 국면으로 강조하는 2007~2008년 경제 붕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궁금한 분은 9장을 먼저 읽어도 좋다.
자본주의 체제를 그 근본법칙에서 시작해 총체적·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 미래를 그려내려던 마르크스의 비전은 그로부터 아주 멀리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지난 세기 끄트머리에서 멈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2010년을 지나며 세계 곳곳에서 목격하는 정치·경제적 현실은 그의 지적 유산에 다시 주목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하비는 마르크스가 남긴 것이 우리가 따라가야 할 유일한 길이 아니며 열고 들어갈 ‘문’에 불과하며, 그 문을 열고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우리 몫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강영규 창비 인문사회출판부 편집자 iwejam@chang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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