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아테네 올림픽서 한국 경영 사상 첫 결승 진출
올림픽 4번 겪은 베테랑…"지도자로서 후배들 돕고 싶어"
남유선의 은퇴식 |
(서울=연합뉴스) 박재현 기자 = "시원섭섭한 기분이에요. 그래도 뛰어난 후배들이 있어서 든든합니다."
한국 수영의 간판인 박태환(30·인천시체육회)이 이름을 알리기 전,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결승에 오른 선수가 있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개인혼영 200m에서 결승에 진출해 7위를 기록한 남유선(34·광주시체육회)이다.
이후 10년이 넘도록 선수 생활을 이어오던 남유선은 8일 경북 김천실내스포츠수영장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개인혼영 200m 경기를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 경기에서도 남유선은 2분17초07을 기록해 4위에 올랐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기록은 메달권에 근접했다.
길었던 현역 생활을 마친 남유선은 9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시원섭섭한 기분"이라고 전했다.
2017년부터 선수와 해설자를 병행하기 시작한 남유선은 서서히 은퇴를 준비했다. 수십년간 물속에서 수영을 해왔던 그였지만, 물 밖에서 보는 수영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남유선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경기를 보다 보니, 외적인 부분에서 수영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이 보였다"며 "32살 이후 기록 단축도 되지 않아서 그때부터 은퇴를 생각했다"고 전했다.
수영장에서 포즈를 취한 남유선 |
남유선은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주저 없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꼽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19살에 불과했지만, 남유선은 아테네 대회가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나섰다고 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수영 선수 생명이 길지 않았다. 여자들은 대학에 진학하면 대부분 국가대표를 그만두는 분위기였다"며 "학업도 병행하고 있던 터라 큰 기대 없이 나섰는데 예상 이상의 결과가 나와 정말 기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아테네 올림픽은 시작이었다. 아테네 이후 남유선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15세이던 2000년 시드니 대회에 출전한 것을 포함해 총 4번의 올림픽에서 물살을 갈랐다.
한국 수영에서 올림픽에 4번이나 출전한 선수는 남유선과 박태환 둘뿐이다.
남유선은 "아테네 올림픽을 계기로 깨달은 것이 많았다"며 "코치의 지도를 선수가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고, 선수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개인혼영이라는 종목을 선택한 것도 도움이 많이 됐다"며 "4가지 영법을 모두 구사하는 만큼 발전할 부분도 많고, 경험이 쌓일수록 기록이 계속 나아졌다"고 전했다.
남유선 이후 한국 수영은 박태환이라는 스타의 등장과 함께 전성기를 맞이했다.
박태환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며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했다.
이후 개인혼영의 김서영과 접영의 안세현이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메달권에 근접했다.
남유선은 "뛰어난 후배들이 많이 나와 든든하고 고맙다"며 "특히 최근 들어 전 종목에서 꾸준히 기록 발전이 이어지고 있어 뿌듯하다"고 전했다.
김서영(가운데)과 함께 시상대에 선 남유선(왼쪽) |
자신과 같은 개인혼영 종목 선수인 후배 김서영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남유선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해설을 하며 김서영이 금메달을 따내는 장면을 봤다"며 "나는 늘 아시안게임에서 도전자의 입장이었는데 후배가 정상에 서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뻤다"고 전했다.
선수 생활은 끝났지만, 남유선은 지도자로서 앞으로 계속 한국 수영 발전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오랜 현역 생활을 통해 배운 것이 참 많다"며 "지도자 생활을 하며 이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traum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