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용하면 시스템 무력화될 수도…비중 큰 경제적 이주민도 과제
이탈리아 섬에 입항하는 스페인 난민 구조선 |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최근 이탈리아와 독일, 프랑스, 몰타 등 4개국 간에 도출된 난민 배분 관련 합의안에 난민 급증에 대비한 '세이프가드'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26일(현지시간) 알려졌다.
해당 국가의 내무장관들은 지난 23일 지중해 섬나라 몰타에서 회의를 열어 이탈리아와 몰타로 유입되는 난민을 유럽연합(EU) 내에 자동 배분하는 시스템을 도입키로 하고 이를 최소 6개월간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역내 회원국별로 미리 수용 가능 쿼터를 정해 유입되는 난민을 그때그때 자동으로 배분하자는 것이다.
내무장관들은 다만, 6개월 사이에 배분된 난민이 급증할 경우 즉시 참여 회원국 간 협의를 위해 회의가 소집되며, 이 기간에는 전체 난민 배분 시스템이 중단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고 라 레푸블리카 등 현지 언론이 이날 보도했다.
언론들은 이에 대해 사실상 '세이프가드' 조건을 붙인 것으로 해석한다.
통상 용어인 세이프가드는 상대국의 특정 수입품이 급증해 국내 산업이 피해를 보거나 또는 피해가 우려될 경우 해당 품목의 수입을 규제하는 긴급 수입 제한 조치를 일컫는다.
합의안엔 '난민 급증'의 구체적인 기준이 명시되지는 않았다. 차후 논의를 위한 여지를 남긴 것인데, 이를 악용하면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 마련된 시스템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몰타의 한 이주민 수용센터에서 거주하는 이주민들이 26일(현지시간) '자유를 달라'며 항의 시위를 하는 모습. [신화=연합뉴스] |
아울러 내무장관들은 군함 등과 같은 국가 소유 선박이 난민을 구조할 경우 자국에 난민을 하선시켜야 한다는 원칙도 합의안에 담았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해상경비함이 몰타 해역에서 난민을 구조하더라도 무조건 이탈리아로 데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이탈리아와 몰타가 지중해에서 구조한 난민을 두고 서로 데려가라며 기 싸움을 한 것과 같은 '떠밀기'식 행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내무장관들은 또 정치적 박해 등을 피하기 위한 경우와 같이 국제적 보호를 받을 자격을 갖춘 이들 외에는 즉시 본국으로 송환하기로 합의했다.
일자리 등을 위해 유럽 대륙으로 오는 '경제적 이주민'에 대해선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리비아·튀니지 등에서 지중해 루트를 통해 오는 아프리카 이주민의 대부분은 경제적 이주민으로 알려져 이에 대한 EU 차원의 합의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몰타 회의에는 이탈리아 등 4개국 외에 EU 순회 의장국인 핀란드 내무장관과 EU 집행위원회도 참여했다.
이들은 내달 8일 룩셈부르크에서 열릴 EU 내무장관 회의에서 회원국들에 이번 합의안의 동의를 구할 예정이다.
다만, 극우 정당이 정권을 잡은 헝가리 등 일부 국가는 합의안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의결에 난항이 예상된다.
이탈리아의 지난 정부에서 내무장관을 맡아 강경 난민 정책을 이끈 극우 정당 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도 이번 합의안을 '사기'로 규정하며 "이탈리아가 다시 난민에 항구를 열어줄 경우 거센 국민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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