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주들 "살처분으로 가격 폭등…보상금 시세보다 높아야"
살처분 작업하는 방역당국 관계자들 |
(인천·김포=연합뉴스) 윤태현 기자 = "살처분한 돼지들 보상받으면 뭐 합니까. 졸지에 실직자 됐는데요. 돼지농장 다시 하려 해도 약도 없는 돼지열병 때문에 겁나서 못합니다."
국내 세 번째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한 양돈농장의 농장주 이모(75)씨는 26일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이씨는 지난 23일 오전 6시 40분께 모돈(어미돼지) 4마리가 유산 증상을 보여 김포시에 ASF 의심신고를 했다가 같은 날 방역당국으로부터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살처분한 돼지만 모돈 180마리를 포함해 1천800여마리. 1년간 정성스레 사육해 곧 출하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는 "지난해 구제역 때문에 돼지 2천여마리를 살처분·매몰했다. 다행히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아 다시 돼지 사육을 해 수익이 날 시점이었는데 이런 사태가 터졌다"며 "아들네 세 손주를 어떻게 먹여 살릴지 걱정"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씨는 ASF 확산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ASF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SF로부터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다시 농장을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20∼30년 돼지농장을 운영하던 사람들이 졸지에 실직자가 되면 뭘 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며 "구제역 때는 돼지들을 살처분했어도 예방접종이 있어서 다시 농장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ASF는 약도 없고 다시 발병 안 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농장을 다시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땅을 빌려서 농장을 하는 농장주들은 임대료는 임대료대로 내고 돼지들도 다 잃어버려서 다시 회복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정부가 보상금과는 별도로 생활비를 지원해줬으면 한다"고 소망을 밝혔다.
돼지열병 확진된 인천 강화 양돈농장 |
ASF로 피해를 본 인천 강화지역 양돈농장 농장주 나모(74)씨는 정부가 살처분한 돼지에 대해 시세보다 더 높은 금액으로 보상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제역 때 돼지를 살처분해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았지만, 구제역을 피한 농장들은 돼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큰 이득을 봐 결과적으로 손해를 본 셈이 됐다"며 "내 잘못으로 ASF가 걸린 것도 아닌데 시세대로 돼지를 보상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돼지들을 살처분해 일이 모두 사라졌지만, 이동제한까지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ASF 피해 농장주들이 최소한의 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배려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편 김포시는 ASF가 확진된 양돈농장과 반경 3㎞에 포함된 다른 농장 4곳의 돼지 3천380마리를 살처분했다. 이는 김포지역에서 사육되는 돼지 3천6천400여마리의 9.2%에 해당한다.
인천 강화에는 ASF가 확산하면서 이날까지 8천738마리의 돼지가 살처분 대상에 올랐다. 이는 인천 전체 사육 돼지 4만3천108마리의 20.3%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축재해보험에는 돼지열병을 담보하는 상품이 없어 농가가 보험금으로 보상을 받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살처분한 농가는 정부에서 산지 가격의 100%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tomato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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