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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채니까 안전하고, 독일이 망하지 않으면 절대 손해는 안 봅니다”
DLF 판매 당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의 프라이빗뱅커(PB)들이 가입자에게 판매하며 건넨 말입니다. 1등급 공격투자군에 속했던 고위험상품은 안전상품으로 탈바꿈해 개인에게 절찬리 판매됐고 액수만 무려 8,224억원에 달합니다. 19일과 26일 만기 도래한 우리은행 DLF 최종 수익률이 -60.1%, -98.1%인 점으로 볼 때 위의 말은 일종의 ‘사기’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평생 모아온 돈을 순식간에 잃은 안타까운 사연들이 연일 금융가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파생결합증권 ‘DLF’ 이야기인데요. 19일 만기 도래한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11월까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합쳐 1,699억 규모의 DLF 만기가 줄지어 서있어 가입자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제2의 키코’라 불리는 DLS 사태,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리고 과거와 겹쳐 보이는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DLS는 기초자산의 변동성에 의해 수익과 손실이 결정되는 파생결합증권입니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ELS, ELD, ELF, ELN 모두 형제들입니다. 이런 상품들의 공통점은 모두 ‘L’자, 즉 ‘linked’가 들어있단 점입니다. ‘E(Equity)’를 의미하는 주식·주가지수와 ‘F(fund)’ 펀드, ‘N(note)’ 채권의 수익률이 ‘연동된다’는 뜻입니다. ‘D(derivative)’는 파생품으로 ‘DLS’는 ELS(주가연계증권)에서 확장해 이자율, 통화, 실물자산 등 기초자산으로 하는 금융상품입니다. ‘DLF’는 DLS를 펀드 형태로 만든 파생결합상품이죠.
이 상품들은 기초자산이 정해진 조건을 충족하면 약정한 수익률을 지급합니다. 사전에 정해진 방식으로 수익률이 결정되기 때문에 기초자산이 일정기간 정해진 구간을 벗어나지 않으면 약속된 수익률을 지급하고, 구간을 벗어나게 되면 원금 손실을 보는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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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DLS는 각종 투자사들이 설계·발행해 자산운용사들이 사모펀드 포트폴리오에 담아 DLF를 구성했고 은행에서 이 DLF를 가져다 판매했습니다. 은행 창구를 통한 고객들은 “더 나은 수익률의 상품이 있다”는 안내를 받아 ‘예·적금보다는 수익이 좋은’ 펀드에 가입을 한 겁니다. 한 은행 직원은 “DLS 상품을 팔지 못하면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며 당시 상품 인기를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국채 연계 DLF는 기초자산이 영국·독일·미국 국채 금리로, 해당 금리가 오르면 일정 수준(연 3.5%~4%)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품입니다. 우리은행의 경우 9월 손익이 확정되는 3월 DLS 판매 당시 기초자산인 독일 국채(10년)금리가 마이너스 영역에 진입해 금리가 더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상품부의 판단이 개입된 것이죠. 하지만 독일과 영국 국채 금리가 유례없는 하락 국면을 보이며 6월 독일 국채금리는 사상 최저인 -0.3%까지 추락했습니다. 영국 국채(10년)도 7월 전저점인 0.64%로 떨어지며 ‘만에 하나’로 여겼던 가정들이 현실화 됐습니다. 19일 만기된 우리은행 1회차 DLF 규모는 134억원으로 최종 수익률이 -60.1%를 기록했습니다. 1회차 투자자들이 본 손실액은 약 80억여원으로 파악됩니다. 만일 가입자가 1억원을 투자했다면 4,000만원만 남게 된 셈입니다. 26일 만기를 맞는 우리은행 ‘KB독일금리연계전문사모증권투자신탁제7호’ 상품은 4개월 초단기 만기로 원금 손실 100%가 확정됐지만 금리 쿠폰 수익금과 일부 조정으로 최종 손실률이 98.1%입니다. 1억 투자했다면 190만원만 손에 쥐게 되는 꼴입니다.
그럼 이번 사태를 만든 장본인은 누구일까요.
상품 판매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비이자수익 목표 달성을 위해 과도한 판매 드라이브 건 ‘은행’, 고객 이익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불완전판매를 감행해서라도 판매 목표치를 달성하려한 ‘PB’, 투자 상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투자한 ‘가입자’ 모두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불행한 점은 불완전판매로 대규모 피해를 입힌 2008년 키코(KIKO) 사태, 2013년 동양그룹 기업어음(CP)사태와 그 원인이 무척 닮아있단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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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KIKO) 사태는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환율 하락을 대비해 은행과 맺은 옵션형 계약이었습니다.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일 때 미리 정한 환율에 달러를 팔아 이익을 내거나 손실을 방지할 수 있는 구조였죠. 문제는 환율이 예상 구간 이상으로 오를 때였습니다. 당시 환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환율이 급등해 다수의 기업들은 수조원 대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피해기업 919개, 피해금액만 3조1,588억원이었고 피해기업 중 235곳은 폐업이나 워크아웃, 기업회생절차를 감행해야 했습니다. 당시 사태와 지금 다른 점이 있다면 키코가 중소형 기업이 피해 대상이었다며 이번 사태는 노후자금을 투자한 개인도 포함됐단 점입니다.
동양그룹 기업어음 사태는 2013년 동양그룹이 부실 계열사 기업어음(CP)과 회사채 1조7,000억원 어치를 발행해 팔다 투자자 4만여명에게 손실을 입힌 사건입니다. 당시 동양그룹이 갖고 있던 대규모 부채들은 CP와 회사채 형태로 계열사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고, 더 이상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운 나머지 동양그룹은 부도를 맞이하게 됐죠. 그 결과 동양CP에 투자했던 개인투자자들은 약 7,000억 원 이상의 손해를 입게 됐습니다. 금감원은 “불완전 판매로 원금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은행이 판매하기에 위험 수준이 높은 경우였다”며 “투자를 권유했다면 배임, 모르고 판매했다면 과실이 되는 셈”이라 지적했습니다.
그동안 일련의 사태들을 경험하면서 금융당국은 판매 규정을 촘촘히 강화해왔습니다. 하지만 불완전판매로 인한 대규모 손실 사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고령투자자 보호 방안이 마련됐지만 판매 과정에서 작성해야 할 서류가 추가되는 수준에 그쳤을 뿐입니다. 금감원이 이번 사태를 두고 상품 설계 과정부터 제조, 판매 실태를 점검하겠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서 파생결합상품 시장만 축소시키는 데서 끝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금융당국은 판매 과정에서의 법규 위반 등을 상세하게 조사하고 투자자 교육과 보호 장치를 꼼꼼하게 설계해 다신 비슷한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더불어 개인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주는 곳은 ‘다 그만한 위험 부담’이 있단 점을 명심하고 투자하는 모든 상품에 항상 경계하는 시선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정수현기자 valu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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